
내용적인 측면에서, 볼품없는 데다가 기시감도 쩐다. 친딸처럼 애지중지 키우며 유사부녀 관계를 형성하던 소녀가 멕시코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되고, 그런 그녀를 구하고자 람보가 동분서주한다는 내용. 그리고 막판 최후의 라운드는 람보의 농장에서 벌어지는데, 홈그라운드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여러가지 부비트랩으로 적들을 해치우는 게 포인트. 전체적인 형식면에서 보자면 <레옹>이나 <아저씨>, <테이큰> 같은 영화들이 떠오르고 배경은 <시카리오>, 여기에 마지막 대결전은 <나홀로 집에>와 <스카이폴>이 떠오르는 실정이다. 그 어느 것 하나 새로울 만한 게 없다.
전형적이고 뻔하다는 것 외에도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야기된다. 이것이 과연 이 시리즈에 어울리는 이야기인가- 하는 것. 지금까지의 시리즈들에서, 타인과 람보가 맺는 관계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시리즈 고유의 NPC인 트라우만 대령은 차치하고, 각 편마다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이 모두 단발 소모성 캐릭터들이였던지라 람보랑 아주 큰 감정적인 교류까진 엮어내지 못 했거든. 근데 이번 영화는 대놓고 유사부녀 관계를 위시해 람보에게 가족을 만들어준다. 바로 그 점에서, 시리즈 전체의 맥락과는 아주 이질적인 동시에 야심찬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리즈는 원래 대쪽같은 쾌속 전개가 일품인 영화들 아니었나? 내가 세어보기로는 이전 영화들 모두 람보가 작전지에 투입되기까지 15분을 안 넘겼던 것 같은데. 특히 2편은 영화 시작 후 거의 10분 만에 베트남 드랍할 걸? 허나 이 영화는 람보와 그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를 다지고 쌓는데 초반 시간을 할애한다. 때문에 액션 폭주 기관차였던 2편에 비해서는 전체적인 액션의 양이 많이 줄어든 건 사실. 허나 막판 몰아주기를 위해 이 모든 관계와 감정을 설명한 것이었단 점에서 썩 나쁘지 만은 않게 보이는 선택과 집중이다.
결국엔, 람보 버전의 <로건>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한 소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인의 모습. 참회와 속죄, 그리고 다시 불붙는 분노와 복수. 영화를 아주 재밌게 본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4편 같은 영화로 시리즈를 마무리하기 보다는 이 영화로 시리즈가 마무리되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고나 할까.
영화의 클라이막스 액션 씬은 괜찮다. 사실 액션 묘사가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점, 무언가를 다양하고 재미있게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 등은 분명 단점이다. 그렇지만 감정 하나만큼은 잘 쌓았다고 본다. 그 감정조차도 되게 투박하고 본능적인 분노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고구마 100개 먹여놓고 사이다로 마무리하는 기분이라 괜찮았다. 다만 악당 보스와의 결전은 좀 더 길게 다뤄져야지 않았을까. 살아있는 상태에서 심장 뽑는 것보다 어떻게 더 하드할 수 있겠는가- 싶지만, 그럼에도 그 새끼는 좀 뒤질 때까지 괴롭히고 싶었단 말이지.
역시 썩 훌륭한 영화는 아니다. 1편만한 시리즈가 또 없지. 허나 여기서 더 길어지면 분명 더 추해질 것이다. 딱 여기까지가 바람직하다. 스탤론 형, 수고 많았어. 이 정도면 우리 그냥 만족하고 람보를 놓아주자. 그래도 될 것 같아.
덧글
로그온티어 2019/10/29 23:16 # 답글
의사가 읽어주는 신문을 통해 망상에 점점 더 현실성이 더해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