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4 15:27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 극장전 (신작)


이 영화는 과연 전편으로부터 28년만에 돌아온 영화인가? 아니면 그냥 4년만에 돌아온 영화인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였던 <터미네이터2 - 심판의 날>.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는 그 영화의 직계이자 적통임을 천명한다. 근데 왜 이러냐. 암만 봐도 난 <심판의 날>은 커녕 그 이후 나와 흑역사 취급받고 있는 영화들 보다도 더 못하게 느껴지던데.

스포일러의 날!

<스타워즈 에피소드 8 - 라스트 제다이>를 개인적으로 좋게 봤음에도, 그 영화에 실망한 코어 팬들의 감정에도 역시 공감한다. 그들의 실망감은 타당하다. 지금까지 사랑해왔던 인물들과 설정들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라는 미명 하에 싸그리 갈려나가는 꼴을 봤으니 빡칠 만도 하지. 근데 딱 <다크 페이트>가 그렇다. 더 웃긴 건 이 세계를 낳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이가 돌아와 이 꼴을 만들었다는 거임. <라스트 제다이>로 치면 감독이 라이언 존슨이었던 게 아니라 조지 루카스였던 셈.

영화 시작하자마자 에드워드 펄롱의 얼굴을 한 존 코너를 죽여버리는 충공깽한 전개. 근데 이 아이디어를 제임스 카메론이 낸 거라며? 이 양반은 <에이리언3>에서 영화 시작하자마자 전편의 히로인인 뉴트 죽여버리는 설정 당시에 엄청 반대 했다던데 왜 <다크 페이트>에선 그딴 아이디어를 낸거지? 

거기서부터 정이 그냥 확 떨어졌다. 간신히 지켜낸 존 코너를 초장부터 그렇게 죽여? 아, 물론 충격요법도 있었고 나름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냥 정 떨어져버려서 그 이후 전개는 어떻게 되든 별 관심 없게 되어버림. <라스트 제다이>는 그나마 무언가 새로운 걸 보여주기라도 했었다. 욕을 먹었을지언정, 새로운 시도를 했고 새로운 전개를 꾸려내려 노력을 했었다. 허나 <다크 페이트>는 초반에 존 코너를 죽여버린 것이 무색하게도, 이후 전개가 <심판의 날>과 똑같다. 존 코너라는 이름을 가진 캐릭터를 죽인 것일 뿐, 결국 그 존 코너 역할을 대신할 대니 라모스를 그냥 만든 것 아닌가. 초장부터 존 코너 죽였으면 이후로는 그냥 앗싸리 초월전개 해버렸어야지. 결국은 에드워드 펄롱의 자리를 나탈리아 레이즈라는 배우가 대신한 것 뿐.

각본의 문제가 있다. 뻔한 건 둘째치더라도, 너무 못 쓴 각본이다. 너저분하다. 필요없는 게 무척 많고, 개연성 없이 작위적으로 설정된 부분 역시 다수다. "우린 이제 꼼짝 없이 죽게 생겼군!" "걱정 마!"라고 하며 생면부지의 사라 코너 등장. /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 해야하는데 어떡하지?" "걱정 마! 우리 삼촌이 밀입국 브로커라구!" / "놈이 너무 강해. 강력한 에너지 무기가 필요하다구!" "걱정 마,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거 갖고 있는 장교 있음." / "우리가 무단탈취한 수송기 주변에 전투기가 떴어!" "걱정 마! 감히 우리를 격추 시키지는 못 할테니까." / "이런 젠장! 내 주사기를 폭발한 비행기에 두고 왔어! 그거 없으면 난 끝장인데!" "걱정 마, 칼이 챙겨 왔다구!" / "소령한테 뜯은 에너지 무기가 박살났어!" "걱정 마! 내 몸 안에 그거에 필적하는 에너지체가 있다구!" 시발 영화가 내내 이런 식이다. 존나 작위적이고 편리한 각본이다. 이 정도면 각본가들 태업한 거 아니냐고. 뭔 전개가 필요할 때마다 원래 그런 거 있었어!-로 떼울 각본이면 결코 잘 쓴 각본이 아닌 거라고.

각본은 그렇다쳐도, 오락 영화로써 액션 시퀀스에도 문제가 크다. 영화의 첫 카체이스. 시리즈의 전통을 계승하긴 했다. 거대한 중장비로 펼치는 자동차 추격전이라는 점에서. 허나 그 박력감과 실재감은 심지어 <터미네이터3>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한다. 가장 돈을 많이 들인 듯한 추락하는 수송기 내부 액션 시퀀스. 그것 역시도 최근 많이 본 그림들 아닌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이미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 <미이라>, <램페이지>에서 다 했던 것들이잖아. 심지어 그 영화들이 더 잘했음.

악역은 문제가 무척이나 큰데, 일단 이번 터미네이터의 가장 큰 특징은 다름 아닌 친절하다는 것. 재밌는 접근법이긴 하지만, 그다지 재미있게 살려내지도 못했고 배우의 서글서글하고 착한 외모 때문에 카리스마 역시 증발 됐다. 등장할 때마다 모습도 똑같음. 영화의 배경이 이동하면 몇몇 경비들이 죽어있고, 그 옆에서 이 터미네이터가 컴퓨터하고 있는 모습으로 반복. 캐릭터의 액션 설계도 그다지. 사실 이미 나올 건 다 나왔었지. <심판의 날>에서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3>에서는 조금이라도 차이를 주고자 외형을 여성형으로 변경 했었고, <미래 전쟁의 시작>은 제목 그대로 미래 전쟁을 다루다보니 각양각색의 터미네이터들이 몰려 나왔었다. 심지어 <제네시스>에선 나노 터미네이터도 나왔잖나. 때문에 제작진 측에서도 아마 골머리를 싸맸을 것이다. 어떤 새로움을 추가해야하나- 하고. 결국 그들이 가지고 나온 건,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이되 분신술 기능이 있다!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것 역시 효과적으로 사용 되었는가는 의문.

오랜만에 시리즈로 복귀한 사라 코너 역의 린다 해밀턴. 마케팅의 중심이 되어 있는 것 치고는 별다른 활약이나 인상적인 뉘앙스가 별로 없다. 주지사님의 T-800의 설정엔 실소만 나옴. 이제서야 존을 죽인 것을 후회 한다고? 아니, 막말로 그 말도 안 되는 심경적 변화 설명하려고 T-800 가족 붙여준 거 아니냐? 그 아들과 아내에게 무슨 캐릭터성이 있냐. 조연도 아니고 단역이던데, 그냥. 알고보니 T-800이 후회하고 있어-라는 거 하나 전달하려고 그 두 캐릭터 막 집어넣은 거지. 봐 봐, 잘 쓴 각본 아니라니까.

말은 무슨 적통이네 뭐네 하는데, 정작 창조주가 돌아와도 결과물이 이렇다면... 솔직히 까놓고 말해 <터미네이터3>, <미래 전쟁의 시작>, <제네시스>가 아주 근소한 차이로 더 재미있었다. 최소한 킬링타임은 해주는 영화들이었으니까. 근데 이 영화는 보느내내 힘들기만 했음. '우린 메이저리그다!'하며 만들어진 영화인데, 어째 만듦새는 여전히 마이너리그. 원작자가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너저분한 팬픽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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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9/11/04 22:07 # 답글

    터미네이터1과 2사이에는 어떤 회의주의적 흐름이 있었어요. 1편의 생각에서, 만일 이렇게 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좋았거든요. 1편에서의 악역이 2편에서 선역으로 나온다는 초반 반전을 저는 무척 좋아했습니다. 일단 충격적인데 신랄하고 긍정적인 충격이잖아요. 제가 터미네이터에서 기대한 건 그런 회의주의적인 기대였어요. 그것은 터미네이터3의 절망엔딩에도 반영되었고, 터미네이터4는 뭐가 뭔 지 잘 모르겠지만, 제니시스에서 존 코너가 흑화한 장면을 통해 우상에 대한 회의를 그려내면서 전작에 대한 회의감을 심어주려고 했죠. 시도는 확실히 나이스해요.

    관객을 납득시킬 생각은 전혀없이 폭주기관차처럼 몰아붙여서 그렇지
  • CINEKOON 2019/12/03 10:41 #

    저도 일련의 그런 흐름들은 너무 좋아했습니다만... 이번 영화는 어째...
  • 天照帝 2019/11/05 07:34 # 답글

    가족을 꾸리고 인간성을 확득한 터미네이터를 그린다고 ‘개를 키우고’(극장에서 1차 단체 실소) ‘생면부지 여자애랑 남의 집 커튼 얘기로 아줌마 수다를 떠는’(2차 실소) 칼 아재를 보고 할 말을 잃었습니다.

    ...기계 주제에 갱년기 호르몬 문제라도 온 거야 뭐야;
  • CINEKOON 2019/12/03 10:41 #

    갱년기 호르몬 문젴ㅋㅋㅋ 엔진 오일이라고 고갈 된 건가 보죠
  • 나눔팁 2019/11/05 14:11 # 삭제 답글

    영화비가 아깝지 않아요. 액션 대박. 초장부터 끝날때까지 하드 액션 폭발.
  • CINEKOON 2019/12/03 10:41 #

    좋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만...
  • 잠본이 2019/12/01 01:54 # 답글

    존코너를 죽인 이유야 뭐 뻔하죠. 그동안 시리즈 전개되면서 별별 용도로 존코너를 써먹었는데 이제 어떻게 할지 감을 못잡게 된거 아닌가 싶은. (1에선 배경, 2에선 헤로인, 3에선 찌질이, 4에선 대영웅, 5에선 최종보스...)
  • CINEKOON 2019/12/03 10:42 #

    5편에서 최종 보스로 쓴 건 암만 봐도 너무해요.
  • 잠본이 2019/12/07 02:15 #

    달리 생각하면 대니가 존코너 역할 이어받은거니 죽였다기보다 여체화(!)라고 해석할수도 있겠네요(대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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