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1 17:48

킹콩, 2005 대여점 (구작)


피터 잭슨 필생의 프로젝트. 청출어람 리메이크. 그리고 롤러코스터 위 궁극의 낭만을 보여주는 영화. 이번 관람 버전은 확장판.

마틴 스콜세지가 <휴고>에서 그랬듯, 팀 버튼이 <에드우드>에서 그랬듯, 피터 잭슨의 <킹콩>은 역시 '영화에 대한 영화'로 시작된다. 이는 이 리메이크의 원작이라 할 수 있을 1933년작 <킹콩>을 보며 피터 잭슨이 영화 감독의 꿈을 꾸었기 때문이리라. 결과적으로는 그 때문에, 영화 속에서 잭 블랙이 연기하는 칼 던햄을 흡사 피터 잭슨의 오너캐로 보이게 한다.

전체적인 구성은 해골섬으로 가기까지가 한 시간 정도, 해골섬에서의 모험이 또 한 시간을 좀 넘고, 마지막 뉴욕에서의 대난장 파티와 비극적 결말이 나머지 한 시간을 차지하고 있다. 요즘엔 피터 잭슨이 연출하거나 제작하는 모든 영화들에 런닝타임을 30분 정도씩만 덜어 보게끔 처방 내리고 싶어지지만, 이 때만 해도 피터 잭슨은 그 긴 런닝타임을 늘어지지 않게끔 변주해내며 그 밀도 역시 꽉꽉 채워넣는 인심 좋은 주방장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킹콩>은 정말이지 긴 영화지만, 그럼에도 정말이지 대단하게 재밌는 영화였다는 것. 

다만 그것은 극장판 기준이었다. 확장판은 이번에 처음 보게 되었는데, 여러가지 스펙터클한 볼거리들과 더불어 캐릭터들의 드라마를 좀 더 보강 시켜줄만한 분량들이 모조리 삽입되어 있다. 문제는 그 때문에 런닝타임이 3시간 하고도 20분 더 길다는 것. 때문에 확장판은 확실히 극장판에 비해 밀도와 속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좀 든다. 이 정도면 극장판을 참 잘 잘라냈다 싶다.

인물들의 드라마가 가끔씩 급발진하는 듯한 느낌이 들긴한다. 칼 던햄이 잭 드리스콜을 붙잡으려 하는 선상에서의 함정 아닌 함정, 그것도 영 설득력 없고. 무엇보다 잭 드리스콜과 앤 대로우의 로맨스가 맥락은 있되 좀 빠른 느낌. 서로가 서로에게 빠져든다- 라는 내용의 방법적 묘사도 영 뻔하고 느끼하다. 웃통 벗은 남자와 좁은 복도에서 조우한 걸로 멜로 기류 만들려 했던 건 좀 너무하지 않냐.

그럼에도 그런 부분들만 빼고 본다면, 영화는 굉장한 구경거리를 연이어서 선사한다. 그린 스크린 앞에서 허우적 대는 배우들의 모습이 왠지 보이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다. CG나 특수효과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게 아니다. 아니, 물론 훌륭하지. 그러나 그런 기술적인 거 빼고, 그냥 액션 구성력이 쩐다. '이보다 더한 게 나올까?' 싶었는데 1,2분 뒤에 더 대단한 게 또 나온다. 용각류 초식 공룡들과 벨로시랩터 짝퉁들이 줄지어서 그 좁은 협곡으로 들이닥칠 때는 정말이지 엄청났다. 근데 거기서 액션 아이디어를 끝내는 게 아니라, 이들을 낭떠러지 쪽으로 몰거나 그들끼리 넘어져 부대끼느라 위험한 상황 등을 잘 만들어냈다. 하지만 역시 최고는 콩과 브이렉스 3인방 결투겠지. 처음엔 1vs1로 시작했다가 이내 1vs2가 되고, 여기에 또 한 마리가 추가되어 1vs3 구성으로 변주된다. 근데 단순히 상대편의 숫자만 올린 게 또 아니고, 정글에서 싸우다가 낭떠러지로, 낭떠러지에서 이번엔 절벽 사이로, 또 그 절벽 사이에서 개활지로 이어지는 구성이 대단한 거. 피터 잭슨의 진짜 진가는 CGI의 물량공세가 아니고 잘 짜여진 액션의 합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엄청나게 화려한 액션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마지막이 황홀해 좋았던 영화. 조금 유치하고 느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콩과 앤이 센트럴 파크 한 가운데의 빙판에서 벌였던 춤사위를 난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정도면 진짜, 꿈을 이뤄도 그냥 이룬 게 아니라 아주 대차게 이룬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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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포스21 2019/11/21 20:55 # 답글

    개봉당시 극장에서 재밋게 본 작품이죠. 그런데 그거 때문에 나중에 나온 스컬 아일랜드가 좀 지나치게 까이는 느낌이었습니다.
  • CINEKOON 2019/12/03 10:35 #

    너무 이 작품이 압도적이라, <스컬 아일랜드> 입장에서는 부담이 많이 됐을 듯...
  • 잠본이 2019/12/01 01:45 # 답글

    '남의 돈으로 덕질하니 좋냐?'라고 감독에게 물어보고 싶어지는 영화였죠(...)
  • CINEKOON 2019/12/03 10:35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예술은 남의 돈으로 해야 제 맛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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