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1 18:49

에너미 앳 더 게이트, 2001 대여점 (구작)


제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치열 했던 전투 중 하나인 레닌그라드 공방전. 볼가 강 유역의 레닌그라드라는 도시 하나를 두고 나치 독일군과 소련의 붉은 군대가 지지고 볶으며 두 계절을 지냈던 전투다. 각 국 최고 지도자였던 히틀러와 스탈린, 그 둘 사이 희대의 자존심 대결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적의 폭격을 막기 위해 적과 더 가까운 위치를 고수하며 싸우는 새로운 양상의 시가전이 발생한 전투이기도.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에서 적과 근접거리에서 싸웠던 전투이다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잔해 속에 몸을 숨긴 채 적들을 사살하는 저격수의 역할이 꽤나 컸을 것이다. 그리고 <에너미 앳 더 게이트>가 바로 그 저격수들의 삶을 제대로 조명한 영화. 더불어 주드 로의 빛나게 잘생겼던 시절을 회고해 볼 수도 있는 영화다.

사실 전쟁 영화로써 장르적 재미가 그리 썩 크지는 않다. 큰 규모의 전투 스펙터클도 없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보았던 신들린 연속 저격 액션 같은 것도 없거든. 애초 역사 속에서 큰 스펙터클을 꺼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컨셉 상 화려하고 거대한 전투라기 보다, 처절하고 무거운 전투로 묘사되어야 하는 게 맞거든. 그래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규모의 스펙터클을 기대하면 안 됨.

때문에 액션성보다, 오히려 캐릭터들 간의 관계. 그리고 그들을 연기하는 배우들. 여기서 이 영화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실제로 쏘고 죽이는 전투보다 더 피 튀기는 건 프로파간다 이념 뻥튀기 전쟁이고, 옆에 서 있던 전우는 우정을 쌓을 새도 없이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그나마 자신을 인정해주고 치켜세워주던 동지와도 여자 문제로 얽히고 설키는 걸 보고 있자니, 총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마저 제일 미운 건 연적이로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심히 심란 해진다. 

존나 섹시해서 인상적인 섹스 씬을 갖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보여주는 거 1도 없는데 엉덩이는 보여주잖아 그게 섹시함. 어떻게 해야 야한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감독이라고 밖에 생각 안 된다. 근데 그 장면의 섹슈얼함을 떠나서, 주인공 남녀보다 바로 옆에 누워있는 엑스트라한테 더 이입하게 된다는 게 함정. 그 새끼 분명 안 자고 있었을 걸? 등 뒤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을 걸?

처참했던 스탈린그라드를 재현해낸 프로덕션 디자인이 좋고, 그 사이를 활보하는 배우들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주드 로는 정말 빛났고, 레이첼 와이즈가 맞는 건지 레이첼 바이스가 맞는 건지 이제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려면 어때. 레이첼의 매력이 정말 제대로 드러난 영화. 마지막에 살아나 어찌나 반가웠던지. 이 밖에도 조셉 파인즈나 밥 호스킨스, 론 펄먼 등이 나오긴 하지만... 역시 제일 간지는 에드 해리스 아니야? 하여간 이 형은 이런 멋진 거 참 잘한다니까. 사연있는 강직한 군인. 나치 전범이든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미사일 날리려 드는 미친 테러리스트이든 간에 하여간 에드 해리스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 그냥 존나 멋진 거야. 

좋은 영화이기는 하지만, 지금 기준에서 봤을 때 장르적으로 재미있는 영화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예전 어릴 때 봤을 때는 분명 쩌는 영화였는데 왜 이러지, 이거? 뭐긴 뭐야, 그냥 그 사이에 존나 쩌는 영화들이 많이 나와서 눈이 올라간 거지, 뭐. 하여튼 그럼에도, 제 2차 세계대전 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전투를 가장 잘 다루는 영화이니 만큼 그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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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IOTA옹 2019/12/09 09:39 # 답글

    거사씬이 인상적이긴 했지요^^
    남,여군 단체 숙소다보니 주인공 이전에도 그런 커플이 있었고... 다들 그려러니 하고 이해해주고 넘어가는거 같네요.
  • CINEKOON 2019/12/11 19:13 #

    하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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