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1 19:51

좀비랜드, 2009 대여점 (구작)


가끔, 장르에 찬물을 끼얹는 영화들이 있다. 나쁜 질과 흥행 실적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장르의 판타지에 찬물을 끼얹고 아주 현실적인 측면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판타지가 없다곤 할 수 없겠으나, 내겐 <좀비랜드>가 바로 그런 영화였다. 

이미 좀비라는 소재로 써먹을 건 다 써먹었다고 생각된다. 10년 전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도 그랬다. 호러와 스릴러의 소재로 이미 단물 다 빠진 건 물론이었고, 심지어는 좀비 소재의 코미디도 없었던 것이 아니니. 심지어는 이 영화가 나온 이후의 일이긴 했지만, <월드 워 Z>를 통해 어쨌든 블록버스터 소재로써도 나아 갔으니 이제 더 할 건 없다고 봐야겠지. 때문에 <좀비랜드>의 설정이나 묘사는 아주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좀비 장르 역사에 찬물을 끼얹게 된 건 그 태도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할 때가 있다. 액션 영화 보면서는, '왜 주인공의 총알은 떨어지지 않는 걸까?' 아니면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 보면서는, '전 우주의 외계인들은 어째서 영어에 다 능통한 걸까?' 다 영화적 허용으로 봐야겠지만, 하여튼 지워지지 않던 그 의문들. <좀비랜드>는 바로 그런 현실적인 점들을 조금이나마 긁어줬던 영화다. 예컨대 이런 거다. 숱한 좀비 영화들이, 좀비 떼를 피해 대형 마트에 숨어든 주인공들의 모습은 보여주지만 그들 중 변비에 시달리는 이들이 어떻게 그 생리적 욕구를 해소 하는지에 대해서는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좀비랜드>에서는 간접적으로 나마 보여 준다. 애초 코미디니까 더 능란 했겠지만, 자신만의 생존 규칙을 나열하며 시작되는 오프닝의 재기발랄함이 진짜 깨방정이라 좋다. 그리고 진짜 좀비 아포칼립스 상태가 되면 저거 다 써먹어야겠다 싶어지는 거지.

그런데 또 그러다보니, 좀비 장르로써의 매력은 좀 옅은 편이다. 아니, 애초에 꼭 '좀비랜드'라는 제목을 갖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생각한다. 좀비든, 뱀파이어든, 괴수든, 외계인이든. 영화는 사실 좀비에 별로 관심이 없다. 좀비란 그저, 주인공들을 헐레벌떡 뛰게 만들고 좀 더 급하게 만들 뿐. 맞아, 이 영화는 좀비 영화가 아닌 대안 가족에 대한 영화인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혈연에 의한 가족을 잃은 사람들. 콜럼버스는 정황상 부모 둘을 모두 잃은 것처럼 보이고, 탤러해시는 어린 아들을 명백하게 잃었다. 위치타와 리틀록 자매의 가족사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녀들의 성격과 생활 양식을 보고 있노라면 예상이 안 되는 건 또 아니고. 하여튼 넷 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 넷은 결국 가족으로 묶이게 된다. 피는 나누지 않았지만.

어릴 때, 성난 아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서로 생각들이 안 맞아서야 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냐'고.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피를 나눈 가족이기 전에, 어쨌든 각자 다른 개성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 아닌가? 단순히 핏줄로 묶여있다 뿐이지, 실상은 다 다른 개인들의 합집합인 거 아니냐고. 가족이기 때문에 모두의 생각이 일치되어야 한다-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만 가족이기에 뭉칠 수 있는 것. 그것이 가족의 정의 아닐까. 적어도 내가 생각한 가족의 정의는 그랬다. 뭐, 이렇게 과거 이야기 꺼내 들추었다고 해서 우리 아빠가 나쁜 아빠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에 신고할만한 가정 폭력이나 폭언 따위는 없었음. 오해들 하지 마시길.

하여간에 그런 가치관을 갖고 있던 나이다 보니, 이 영화 속 가족이 정말로 온전하게 느껴졌다. 때때로 가족은, 선택된다. 그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같은 핏줄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 순수하게 선택하고 선택된 가족. 핏줄의 유무를 떠나서 나는 그런 가족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그런 가족을 보여주는 것 같아 신이 났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좀비 영화로써는 그저 그런데, 딱 그 점 하나와 캐릭터들의 매력 때문에 길이 길이 남은 영화 아닌가- 싶어진다. 

뱀발 1 - 좀비 떼가 창궐한 상황에서 놀이공원이라고? 너네 정말 미친 거 아니냐?
뱀발 2 - 406호 여자가 앰버 허드였네. 워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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