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8 16:36

허슬러 극장전 (신작)


한국 마케팅 업계가 이뤄낸 또 하나의 낚시. 국내 포스터만 놓고 보면 무슨 여성 중심 하이스트 영화 같잖아. 'HOT'이나 'HIP' 같은 단어들 덧발라 놨길래 좀 더 힙합스러운 <오션스 8>인가 싶었는데, 정작 영화는 하이스트 영화의 리듬과 플로우만 갖다 썼을 뿐 내용물은 느와르에 더 가까운 인상이다.

느와르란 단어를 언급 했다고 해서 영화에 마피아나 살인 청부 업자들이 난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외양적인, 소재적인 측면에서의 느와르 느낌이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 나는 언제나 느와르가, '조직 내에서 느끼는 한 인간의 불안함' 내지는 '틀어지는 인간 관계 속에서 방황하는 한 인간'을 다루는 장르라 생각해왔다. 바로 그 점에서, <허슬러>는 느와르의 풍미를 지닌다. 그리고 원래 내가 이런 거 좋아해. 생면부지였던 두 인물이 서로를 알게 되고 또 함께 좋은 시간 내지는 실적 좋은 작업 등을 함께 해나가다가 막판에 관계 틀어지고 깨판나는 스토리. 관계 몰락의 스토리 같은 건 언제나 재미있지. 그 점에서 <허슬러>는 전형적이면서도 모범적인 스토리라인을 보여준다.

리듬감과 특유의 플로우가 좋은 영화이기도 한데, 본격 하이스트 영화들처럼 대단한 볼거리의 범죄가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흡입력과 텐션을 잘 유지한다. 물론 영화의 2/3가 흐르면 그 리듬감이 다소 무너져 덜컹 거리지만, 내가 봤을 때 그건 이 이야기가 갖는 어쩔 수 없는 '전형성'이 돌출되기 때문에 피할 수 없었던 결과라고 본다. 어쨌든 은행을 털거나 자동차 추격전 같은 것도 없이 순전히 술집에서 남자들 등쳐먹는 이야기일 뿐인 건데 그럼에도 술술 넘어가는 영화처럼 느껴진다면 리듬감이 진짜 좋다는 거지. 

제니퍼 로페즈 영화를 진짜 오랜만에 보는데, 작심하고 나온 듯 영화에서 대단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이토록 뻔한 이야기에 저토록 빤한 캐릭터인데, 제니퍼 로페즈의 능수능란한 연기가 그 모든 걸 상쇄시키는 느낌. 배우진들 중 제일 원숙해보여 흡사 구렁이 같이 느껴짐. 그리고, 그 옆에 콘스탄스 우가 있다. 이 영화에서 그녀가 좀 대단하게 느껴진 것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속 그녀와 완전 판이하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거든. 작품마다 달라지는 배우들의 연기 변신 이야기야 하루 이틀 듣는 게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콘스탄스 우는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외적인 변신에서부터 연기적인 부분까지 모두 합격점.

느와르의 풍미에, 하이스트의 리듬감. 여기에 배우들의 호연까지. 죄다 좋은 말들 뿐인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결국 평범하게 느껴지는 건 결정적 한 방이 없기 때문이다. 목구멍 뒤로 술술 잘 넘어 가긴 하는데, 분명 맛도 있고 향도 좋은데, 뭐랄까 '톡!' 쏘는 맛 하나가 부족한 느낌이랄까? 문제는 그 결정적 한 방의 부재가 나머지 장점들을 죄다 깎아먹는다는 거다. 현상 유지를 한다거나 단 2% 정도가 부족한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결정적 한 방이 없음으로 인해 영화 전체가 좀 하향평준화 될 정도로 심각하다. 화려하고 재미있긴 한데, 두 시간 내내 똑같은 장면들을 연이어 보는 느낌. 훗날 이 영화를 돌이켜보았을 때 구체적인 장면이나 좋았던 순간이 별로 구분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 한 방이 없어 아쉬운 정도에서 끝나는 영화들이 있지만, 그 한 방이 없어 그냥 무난하고 평범 해져버리는 영화들도 있다. 그리고 <허슬러>는 바로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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