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3 10:30

렛 미 인, 2008 대여점 (구작)


12월을 여는 첫 영화는 다름 아닌 <렛 미 인>. 다시 보기로는 거의 10년 만.

원작에서의 언급이야 어떻든, 영화만 보았을 때 결국 이엘리 옆의 남자는 미래의 오스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비극성이 더해진다. 오스칼도 사랑에 빠져 훗날 저런 행동들을 하게 되겠지. 저런 최후를 맞게 되겠지. 그럼 이엘리는 흔히 말하는 썅년인가? 얼굴만 열두살이지, 살아온 나날로 따지면 이미 중년일지도 모를 이 여성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소년을 데리고 다니기 위해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것인가? 그런데 그건 또 아니라고 본다. 이엘리는 뱀파이어 꽃뱀이 아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다. 그녀도 정말로 오스칼을 사랑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그래서인지 나는, 이 영화가 사랑의 유통기한과 그 변질 과정을 상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는 점에서 씁쓸했다.

그렇게 감성적인 호소력은 지닌 반면, 영화적인 구성력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쓸쓸히 내리는 눈과, 단단하게 얼어붙은 호수 표면처럼 마음 속을 파고드는 영화이지만, 굳이 하나 둘씩 따져보면 영 말이 안 되는 이상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엘리를 지켜주던 남자는 그녀를 먹여 살리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하지만 살인의 계획과 그 과정이 하나같이 다 어설프다. 어설퍼서 더 슬프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건. 어설픔에도 정도가 있지, 살인 한 번 해보기는 커녕 생각조차 하기 싫은 나로서도 그 장면들 보며 '너무 허술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정도인데. 이엘리를 따라 오랫동안 살인을 저질렀던 남자의 설정이든, 아니면 이엘리와 계약을 맺은 소아성애자 설정이든 간에 하여튼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감당해내지 못할 살인 계획과 실행이다. 

영화의 결말부 역시 지나치게 편의적이고 또 전형적이다. 수영장에서 클라이막스 그런 식으로 가져가는 게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삼삼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또 뻔하고 별 거 없는 것처럼 보이거든. 뭔 택시 지나가는 거 한 번 창 밖으로 눈여겨 보았다고 해서 이엘리가 영화에서 진짜로 퇴장 하겠냐고. 수영장에 왕따 가해자 새끼들 들어올 때부터 이엘리의 재등장은 거의 확정적인 사실인데.

그런 자잘한 구성력 저하 때문인지는 몰라도, 10년 전쯤 처음 봤을 때보다 개인적으로는 그 가치가 좀 훼손된 느낌이었다고 해야할까. 어릴 적에는 이런 씁쓸한 감성이 좋았었는데, 어쩌면 이젠 내성이 생겨버린 걸지도.

덧글

  • 로그온티어 2019/12/03 13:39 # 답글

    '사랑을 위해 목숨과 위험도 감수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거는 위험이 살인과 같은 천인공노할 일이라면?' 이라는... 고전적인 사랑서사와 그 서사가 이야기하는 가치에 질문을 드는 점이 좋았어요. 그 이상으로는 오스칼에 이입하면서 봤던 기억이 나네요. 언더독 캐릭터를 좋아해서요. 고독하고 아픈 말단의 존재에게는 사탄(?)조차 구세주였던 겁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고르 같기도 하네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뱀파이어는 늙지 않아 남자만 늙는 게 당연하지만... 늙음이라는 게 성숙 혹은 지침, 고갈의 의미로도 해석되잖아요. 생각해보면, 같은 뱀파이어로 동등해지는 상태가 될 수 있다면 뱀파이어 헌터가 쳐들어오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허나 뱀파이어로서의 패널티 때문에 한 명은 인간으로 남아 수발을 들어야 하죠.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인생의 고행 끝에 나머지 사람이 홀로 늙다 지치는 모양새를 그리는 느낌도 들었어요.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측면을 거둬내면, 뱀파이어는 피가 아닌 타인의 사랑과 인생을 쪽쪽 빨아먹는 존재처럼 보이는 겁니다. 괴물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그게 인상깊었어요.
  • CINEKOON 2019/12/11 19:12 #

    '고독하고 아픈 말단의 존재에게는 사탄조차 구세주였던 겁니다.' -> 이거 진짜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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