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5 16:14

포드 v 페라리 극장전 (신작)


제임스 맨골드는 언제나, 남자들이라면 좋아할 만한 정서가 무엇인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만약 제목대로 포드 차를 타는 남자와 페라리 차를 타는 남자, 이렇게 두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이미 론 하워드의 <러시 - 더 라이벌>가 보여줬던 것처럼, 그거라면 그거대로 또 멋진 우정과 질투의 드라마가 만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가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결과물을 위해 힘을 모아야만 하는 팀내 두 명을 주인공으로 삼음으로써, 단순한 경쟁의 이야기로 끝내지 않고 결말부 켄 마일스가 내리는 선택에도 방점을 찍어준다. 

남자들이 갖고 있는 본성 중 좋은 것들도 분명 있다. 우정이나 의리. 집념. 물론 여자들도 충분히 갖고 있는 덕목들이지만, 이상하게도 남자들은 저런 거에 대놓고 환장 하거든. 나도 그렇고. 그리고 이 영화 속 캐롤과 켄의 관계에서 바로 그 남자의 본성들이 폭발한다. 문제는, 좋은 것들만 터져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 남자들의 본성 중 어이없는 것들도 꽤 많잖아. 무모함이라든가 집요함, 유치함이나 맹렬함. 이런 부분들 역시도 함께 폭발해 나온다. 캐롤과 켄이 집 앞 공터에서 웃기는 포즈로 벌이는 싸움이 대표적. 서로를 진짜로 다치게 할 맘은 없다는 듯, 딱딱한 통조림 통을 들어 가격 하려다 이내 내려놓고 서로를 꼬집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런 게 남자지- 싶어진다. 

사운드 특화 상영관에서 관람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영화이기도. 자동차 배기음과 타이어 마찰음이 주는 그 강렬한 박력. 음악이 따로 필요 없었다. 그 자체로 비트가 되었으니. 그 밖에 촬영도 좋고, 전체적인 프로덕션 디자인도 잘 되어 있는 편.

배우들의 연기 역시 대부분 다 좋은데, 맷 데이먼이나 크리스쳔 베일이야 뭐 말 해봤자 입 아픈 위인들이니까. 나는 오히려 오랜만에 본 조쉬 루카스 존나 반갑던데. 그것도 존나 얄미운 역할로 존나 아니꼽게 나와서 더 기억에 남음. 맞다. 타노스고 나발이고 우리 현실에서 더 무서운 악역은 이런 양반들이다. 현실적이고 개같아서 더 지독하고 무서운 악당. 

전체적으로 잘 만든 영화임에도 딱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켄의 결말을 그런 식으로 처리한 것. 결말 자체야 실화 베이스의 영화이니 뭐라 할 말 없는데, 그 구성이나 리듬이 심히 괴상하다. 좀 급하게 끝낸 것 같다는 인상이라고 해야할까. 좀 더 연착륙 했으면 좋았을 걸, 지금은 아무래도 급하게 추락하는 느낌이다.

남자들이 진짜로 그렇다. 집요 하기도 하고, 무모 하기도 하며, 종종 유치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건, 꿈을 꾸는 본성이라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걸, 이 영화가 잘 담고 있는 듯 했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19/12/05 20:09 # 답글

    마지막 문단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맞아요, 남자들은 집요하고 무모하고 유치합니다.

    저와 같이 일하는 분은 사기꾼 기질이 있어서 매일 집요하게 저에게 뭘 팔려고 하시더군요. 연극성 장애까지 보여서 연기까지 한답니다. 맨날 그래요. 저 씨부랄 놈은 저럴 재능있으면 연기나 하지 그 능력으로 그놈의 좆같은 약이나 판다고요. 꿈도 있대요. 서커스를 하는 마트를 만들겠대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50넘으신 분이 그러고 살고 있어요.

    어떤 분은 사장님인데, 돈을 많이 버는 꿈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몰래몰래 정산내역을 고쳐서 직원 월급을 잘 깎으세요. 직원 문제가 있거나 직원이 뭐라고 하면 집요하게 문제를 캐치해서 심리를 파고들며 공격하지요. 그 공격은 언제나 유효합니다. 어우야... 입빨이 장난 아니라서 거기 잘못 엮이면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집요하게 술을 드세요. 다행이도 이 분은 꿈은 없습니다. 그냥 몸 건강히 사는 거래요. 그러면서 술을 드십니다. 얼마나 무모합니까 그게.

    마지막으로 저도 남자로서 그렇죠. 저도 집요합니다. 아주 집요하게,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있고 싶어요. 일을 안하고 사는건 무모하지만 집요하게 그러고 싶습니다. 어른답지 못한 유치한 자세기도 하죠. 저에게 꿈이 있다면, 돈을 많이 벌고 집돌이로 사는 겁니다.
  • 로그온티어 2019/12/05 20:20 #

    농 그만 치고... 저는 버디무비를 남자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합니다. 스포츠나 카체이스 장르도 쩔어주긴 하지만, 스포츠보다는 자신의 사명감을 가지고 기꺼이 고생길로 들어가는 남자들을 매우 좋아하거든요. 물론 여자도 그럴 수 있어요, 여자 버디무비도 있고요. 허나 제가 남자라 보니까 남자들이 그러는 걸 동경하며 보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설픈 작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서로 오해도 풀고, 무모한 거 알면서도 사명을 지니고 적진으로 진격할 때(?) 크으으으으으으... 일 끝나면 '빠'가서 술한잔 때리고 말이죠. 그 장면도 제일 좋아하는 장면인데, 그렇게 우정쌓던 파트너가 주인공 손을 잡고 유언남기다 피 토하며 죽는 거요. 이상하게 저는 거기에 패티시(?)가 있더라고요
  • CINEKOON 2019/12/11 19:10 #

    로그온티어님 스스로 못지 않게 주위 지인분들도 모두 던전 끝판왕 같은 포스네요
  • CINEKOON 2019/12/11 19:10 #

    그리고 저도 버디 무비 좋아해요. 웃기지만 그래서 <나쁜 녀석들 3> 기대하고 있읍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