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5 02:36

빅 쇼트, 2016 대여점 (구작)


경제 용어들이 남발되는 실화 소재 영화들에겐 일종의 한계가 있다. 난무하는 용어들이 죄다 관객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것은 분명할진대, 그렇다고 해서 영화 전체에 일일이 각주를 달 수는 없지 않은가. 바로 여기에서, 코미디 장르 전문이었던 감독의 특기가 드러난다. 원래 어려운 개념일수록 친절한 설명과 더불어 유머 한 스푼 넣어주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워지는 법이거든.

때문에 영화엔 소격 효과를 노린 메타 발언이 난무하고, 심지어는 SNL식으로 풀어낸 노골적인 설명 시퀀스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따지고 보면 아담 멕케이가 커리어 자체를 SNL 작가로 시작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 마고 로비를 위시한 여러 계층의 스타들을 불러다 모시고 그들에게 설명을 부탁하는 장면들의 센스가 탁월하다. 사실 영화 보다보면 넋 놓고 있다가 어느 경제 용어의 개념에 대해서 놓치기 십상인데, 이럴 때마다 그런 특급 게스트들로 효율적인 땜빵을 보여주니 할 말이 없다. 만약 여기서도 해당 개념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거나 잠깐 까먹게 되더라도, 이후 영화 진행 내에 있어서 우리의 주인공들이 또다른 방식으로 살짝 언급해주며 설명하니 따로 또 걱정할 필요도 없고.

노골적인 SNL 시퀀스들의 센스도 대단하지만, 그 외 극영화로써 진행되는 부분들 역시 훌륭하다. 보통 실화 소재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작품들은 심도를 깊게 맞춘 촬영으로 톤 앤 매너를 유지하기 마련이다. 뭐 그게 꼭 정답은 아니겠지만, 보편적으로는 그렇게들 많이 한다고. 허나 이 영화는 전혀 반대 노선을 취한다. 얕은 심도의 촬영으로 인물들의 대화와 동선을 담아내며, 때로는 아주 먼 거리에서 인물들을 촬영 하기도 하고, 가끔씩은 퀵 줌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보통의 다른 영화들이었다면 잡아냈을 타이밍에 배우의 얼굴에게 갈 포커스가 늦기도 하고, 배우는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데 카메라가 잠깐 다른 곳을 비추기도 한다. 결과적으로는 인위적인 뉘앙스가 살짝 짙어지는데, 웃긴 건 그게 또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인다는 거다. 일반적인 영화 촬영용 카메라로 찍힌 듯한 영상이 아니라, 우리가 실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캠코더나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느낌. 어차피 실화 소재 영화이고, 르포 형식의 맛도 있으니 과감히 도전해보자는 쪽으로 갔던 듯 한데, 이게 참 대담하고 효과적. 편집은 따로 더 할 말이 없다. 잘 했다 못 했다-라는 느낌을 떠나서, 그냥 '이걸 대체 어떻게 마무리 했을까'의 심정에 더 가까움. 촬영 소스도 많았겠지만 중간에 인서트로 들어가는 사진이나 영상들도 많아서 정말이지 고생했겠다 싶음.

홍보 문구처럼, 영화가 통쾌한 한 방을 보여주기는 한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괴짜라고, 한심한 퇴물들이라고, 뭣도 모르는 초보자들이라고 구박하고 비웃을 때, 그들은 그 모든 걸 감내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그 외인구단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무언가를 성취해냈을 때 오는 쾌감. 그 쾌감이 강하진 않아도 분명 있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그 단발성 쾌감에 집착하지 않는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불과 10여년 전 우리를 휩쓸고 갔던 경제적 비극이고, 주인공들은 득을 봤지만 그 반대급부로 직장과 집을 잃은 사람들 역시 존재하니까. 많은 주인공들 중에서도 그 중간점을 찾아 짐짓 환호 하려던 관객들을 중재시키는 건 브래드 피트의 벤 리커트와 스티브 카렐의 마크 바움이다.

벤은 인간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보며, 그 모든 걸 그저 수치화한채 오로지 숫자에만 집착하는 월가에 환멸을 느꼈다. 극 중 큰 계약을 성사시켜 기뻐하는 주인공들에게 벤이 한 마디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집을 잃게 될 거야. 그러니까 춤추지 마." 그리고 여기에 최근 월가 때문에 친형을 잃은 마크도 합세한다. 마크 역시 월가에 환멸을 느끼거든. 아니, 그는 환멸을 넘어서 월가를 경멸한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을 통해 영화가 말하는 것. 숫자는 숫자고 인간은 인간이니, 그 둘을 헷갈려 하지 말 것. 하나의 인간을 '1'로만 보지 말고, 생일과 가족이 있는 '한 명'으로 볼 것. 

유머에 능한 센스, 팽팽히 영화적 장력을 유지시키는 기본기. 그리고 여기에, 경제 영화 임에도 그 한 가운데에 놓아둔 인간의 자리. <빅 쇼트>엔 설명해내는 재능이 있고, 설득해내는 재능도 있으며, 그 모든 걸 연기해내는 재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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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9/12/15 11:49 # 답글

    정말 좋은 리뷰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리뷰를 떠올리기가 어려울 정도!
  • CINEKOON 2019/12/21 21:45 #

    감지덕지 댓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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