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15 19:06

6 언더그라운드 극장전 (신작)


일단, 마이클 베이에게 악감정은 없는 편이다. 지금 그의 이미지를 망친 건 다섯편이나 나온 로봇 병정 놀이 때문이라고 보는데, 그건 기존 마이클 베이 팬들한테나 그 원작의 팬들한테나 모두 피곤한 경험이었거든. 그 외에도 그에겐 <아마겟돈>이나 <진주만> 같은 그냥 저냥한 영화들이 있지만, 어쨌거나 <나쁜 녀석들>과 <더 록>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로서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떠나 새로운 영화로 돌아온 마이클 베이가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요즘 오리지널 콘텐츠들로 잘 먹고 잘 사는 중인 넷플릭스와의 협업이니 누가 기대를 안 해. 그랬었는데... 결국 영화 다 보고 느낀 것. 마이클 베이 이 양반은 옆에서 강력하게 통제해줄 제작자가 필요한 양반이라는 것만 한 번 더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경험이었다고나 할까.

넷플릭스에서 틀자마자, 영화는 피렌체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액션 시퀀스로 시작된다. 바로 여기서부터 정이 똑 떨어지더라. 두 시간짜리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다시 돌이켜보니, 이 피렌체 액션 시퀀스는 영화 전체 내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액션 시퀀스였다. 근데 이걸 시작하자마자 몰빵해놨어. 아직 주인공이 누구인지, 지금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시작하자마자 그냥 달리고 또 달린다. 때문에 영화 틀자마자 말 많은 라이언 레이놀즈의 모습을 보곤 '이거 그냥 <데드풀>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라는 건가' 싶어지기도. 하여튼 주요 등장 인물이 여섯명이나 되는 데다 이 6인을 그냥 한 번에 소개해주는 것도 아니고 한 두 명씩 찔끔찔끔 설명해준다. 여기에 정신없이 날뛰는 자막들은 덤. 이거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에서 메가트론이 디셉티콘 리크루트할 때 효과랑 완전 똑같은 건데. 여전히 정신없는 것도 똑같고.

정신없는 자막으로 점철된 주요 6인 소개에다가, 자동차들이 마구 폭발하며 추격씬을 연출한다. 자동차 폭발을 주제로한 미술관이 있다면 거기 미술관장은 마이클 베이일 것. 근데 시발 전시가 미술관 홀이나 입구에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미술관에 딸린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되는 느낌이다. 미술관 구경하려 이제 차 대고 내렸는데 시발 내리자마자 전시품들이 떡하니 놓여있는 느낌. 등장인물 6인에, 이들을 각각 4 + 1 + 1로 산개시켜 편집점도 어지럽다. 아, 그리고 왜 이들이 이렇게 쫓기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짧막한 과거 회상까지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사도 많은데 그 중 80% 정도는 걸러도 될 헛방 유머들. 여기에 이탈리아라고 창 밖으로 현지 미녀까지 전시하면서 얼굴 평가하는 거... 진짜 이거 감독 크레딧 가리고 봐도 그냥 마이클 베이 시그니쳐인 거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지금 섹스 심벌로서의 여성 전시야... 그나마 <분노의 질주>는 그걸 그냥 노골적으로라도 해서 거부감이 덜하지, 마이클 베이는 한결같이 얼굴과 몸매 중히 여기며 평가하는 꼰대 같다. 

변신 로봇은 1도 안 나오는데 어째 극중에 등장하는 편집이나 특수효과, 심지어는 음향효과까지 죄다 <트랜스포머>의 그것같다. 하여튼 이 초반 피렌체 액션 시퀀스에서 오만 정은 다 떨어졌음. 문제는 이 정신없는 액션 시퀀스가 영화 내에서 가장 큰 액션 시퀀스라는 거. 정신없긴 하지만 어쨌든 규모면에서는 원탑 찍고 시작하니, 이후 전개되는 액션들의 작은 규모에 계속해 실망하게 된다. <007 - 퀀텀 오브 솔러스>도 그랬었지. 오프닝 액션이 너무 쩔어주는 바람에 이후 액션 시퀀스들이 죄다 시시하게 느껴졌던. 그래도 그 영화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어...

배우들은 노력하지만 그들이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들이 죄다 어디서 본 듯한 인상이고, 여기에 제목대로 인물도 여섯명이나 되다보니 가뜩이나 정신없는 판국에 스스로의 매력을 온전히 보여주기도 매우 힘든 인상이다. 아니,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동기가 이해 안 돼. 대의를 위해 현생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스트로서 살아가는 것. 그래, 간지는 쩌는 설정이지. 근데 개인적으로 원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하필 그 중동 국가의 독재자를 조지려드냔 말이야. 대의, 정의. 다 좋지. 근데 영화면 최소한의 감정적 동기는 넣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냥 얘들이 정의로운 애들이기 때문에 독재정권 끌어 내리기로 마음 먹었다고? 시발 그러면 우리 윗동네 김씨 일가부터 조지든지.

캐릭터들도 재미 없고 액션도 흥미 없고. 존나 총체적 난국에 정신 사납기만 한 영화. 도대체 마이클 베이는 <나쁜 녀석들>과 <더 록>을 어떻게 찍었던 걸까. 그 모든 게 결국 다 제리 브룩하이머의 진두지휘 덕분이었던 걸까. 마이클 베이 이 양반은 전권 쥐면 안 되는 양반인 거다. 아, 다른 의미로는 작가주의의 최전선 수호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음. 프랑수와 트뤼포가 작가주의를 제창하며 말했지, 진정한 감독은 영화에 자신만의 인장을 남긴다고. 그 관점으로 보자면, 마이클 베이는 트뤼포를 계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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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9/12/15 21:41 # 답글

    액션, 팀업 플레이까지 오나벽한 첩보영화인 미션임파서블:고스트 프로토콜이 다시 고마워지는 순간입니다
    물론 투모로우랜드는 안 고맙지만요
  • CINEKOON 2019/12/21 21:44 #

    투모로우 랜드는 인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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