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3 15:37

백두산 극장전 (신작)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아이디어엔 큰 불만이 없다. 그리고 그걸 계기로 남한과 북한이 엮이는 것 역시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난 대한민국의 그러한 지정학적 특성을 장르 영화에 버무려냈다는 것에 큰 칭찬을 해주고 싶다. 장르 로컬라이징은 다 이렇게 시작되는 것 아니겠나.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종류의 이야기니까. 세상에 분단 국가가 많은 것도 아니고. 어쨌든 그 점에서는 분명 변별력이 있다. 그리고 CG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 아니라 역대급이라고 생각한다. 초반부 지진 크리 맞는 강남대로 씬은 정말이지 대단했거든. 향후 덱스터가 내세울 주요 포트폴리오.

허나, 아이디어와 부분 부분이 좋으면 뭘하겠어. 영화 전체의 이야기가 침몰하는데. 뻔해도 너무 뻔하다. 아니, 한 번 더 양보해서 그냥 뻔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애초에 이런 규모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한국에서 만드는데 여러 영화들 삼선짬뽕된 느낌 받는 거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특히나 재난 영화라면 더더욱. 워낙 장르적 문법과 클리셰가 이미 명징하게 정리된 장르잖나. 그런데 문제는... 그냥 답습한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들을 그냥 참고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영화들로부터 특정 샷과 아이디어들을 빼앗아온 수준이라고 본다.


이거는 <백두산>이고,


이건 <고질라>다.


그리고 이건 다시 <백두산>이고,


이건 <맨 오브 스틸>이다.

이런 식의 레퍼런스 강탈이 수도 없이 많다. 지금 저 움짤들은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는 <백두산> 공식 예고편에서만 딴 것. 아마 2차 매체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릴리즈 되어 두 시간짜리 본편을 다 볼 수 있게 된다면 훨씬 많이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주인공 둘이 북한 택시 타고 백두산까지 가는 장면은 <2012>의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 화산 폭발 장면이나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모르도르 장면을 연상케 한다. 물론 한국 대중 매체가 외국 영화 그대로 따라하던 게 엊그제 일은 아니지만... 하여튼 이렇게 이미지만 빼앗은 건 당연히 아니고, 주요 이야기 골자로 컨닝해 온 것은 <더 록>, 그리고 또 <고질라>. 두 남자 주인공의 구도와 성격은 대놓고 <더 록>의 그것이다. 이병헌이 장발로 첫 등장하는 것은 숀 코네리의 그것이고, 하정우가 어리버리 까는 것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그것이다. 그러다보니 영화적 개연성과 현실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는데, 한반도의 명운을 건 작전에 당나라 군대급 부대를 보낸 것이 바로 그것. 아니, 씨바 함께 갔던 특수부대원들이 죄다 죽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변명 하고 있긴 한데, 저렇게 얼빠진 애들을 북한으로 보낸다고? 이게 말이 되나? 이거 그냥 <더 록>의 니콜라스 케이지 캐릭터 느낌 내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고질라>의 주인공은 폭발물처리 전문가로서 고질라에게 먹이려고 영화 내내 핵을 운반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하정우 역시, 폭발물처리 전문가로서 백두산에게 한 방 먹이려고 영화 내내 핵 운반함. 근데 전문가라면서 정작 전문가스러운 모습은 1도 안 보여줌...... 아니, 그리고 백두산에 핵폭발 일으키면 폭발 멈추는 거 맞아요? 맞다해도 거기 방사능 낙진 어쩔 건데... 영화 에필로그 보니 불과 1년 만에 남북한 합작으로 재건 시작했던데, 북한은 정부가 붕괴되었다며. 생각해보니 그것도 웃기네. 아무리 괴뢰국이라지만 그래도 지진 한 방에 정부 폭삭. 

심지어 스펙터클이 많은 것도 아니다. 영화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규모가 큰 액션 시퀀스는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강남대로 붕괴씬. 그 이후로는 이만한 스펙터클이 전무하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갈수록 더 맥이 빠지고... 심지어 뀨띠쁘띠니 뭐니 뭔 말 같지도 않은 개그로 웃기려고 자빠지고 있고...

그냥 총체적 난국이라고 본다. 존나 백두산 폭발하듯 내 마음이 터졌다. 그 외 별달리 할 말은 없음.

아, 이병헌은 그와중에 혼자 연기 잘 함. 뭐냐, 이 양반.

핑백

  • DID U MISS ME ? : 시동 2019-12-23 15:38:10 #

    ... 매 관련된 이야기도 잠깐 나오고 폭행이나 사채 같은 이야기들도 나온다. 하여튼 결국 별 것 없어뵈는 이야기인 건 사실. 이렇게 별 것 없는 영화가 민족의 명산이 터지면서 시작하는 블록버스터와 같은 주 개봉이라는게 좀 개그. 근데 좋은 게, 영화가 좀 발랄하다. 물론 사채나 철거민 같은 소재는 좀 하드하게 다루기는 하지. 하지만 ... more

  • DID U MISS ME ? : 2019년 대문짝 2019-12-23 15:38:26 #

    ... / 파프롬홈 / 사자왕 / 강호대왕 /페니와이즈2 / 타란티노 NO. 9 / Mr. J / 사라 코너 / 아이리시맨 / 나이브스 아웃 / 백두산 ... more

  • DID U MISS ME ? : 조작된 도시, 2017 2019-12-27 17:47:23 #

    ... 세련되게 잘 빠진 할리우드산 액션 범죄 영화들을 벤치마킹하려는 충무로의 노력. 하지만 과연 이게 최선인가. 얼마 전 &lt;백두산&gt; 보고 언급했던 것처럼, &lt;조작된 도시&gt;도 몇몇 장면의 구체적인 레퍼런스가 아예 대놓고 드러나는 영화다. 그래도 &lt;백두산&gt;처럼 과 ... more

덧글

  • 로그온티어 2019/12/23 15:50 # 답글

    아마도 으악안돼가 밈으로 터져나온 이후로 자존심이 상해서, 어떤 난해한 상황에서든 연기의 정신줄은 놓으면 안되겠다는 신념이 생긴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뒤로는 어떤 정신나간 각본이 와도 철저하게 연기를 잘해야 겠다라는 일념하나만 있는 겁니다.
  • CINEKOON 2019/12/23 17:33 #

    하긴,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무대예술들과는 다르게 매체에 새겨진 연기는 평생 남으니까요
  • 포스21 2019/12/23 20:31 # 답글

    조금은 기대한 건데... 평이 영 안좋군요
  • CINEKOON 2020/01/03 16:25 #

    이런 규모의 한국 장르 영화들은 어쩔 수 없이도 대담함이 떨어지더라고요
  • PennyLane 2019/12/23 23:32 # 답글

    시놉시스와 홍보 기사 뜰 때 이런 류의 영화는 잘 되면 연말 블록버스터 제대로 흥행하고 망하면 핵노답망작이겠구니 싶었는데 어째 후자인듯한 강렬한 예감이 듭니다 ㅠ
  • CINEKOON 2020/01/03 16:24 #

    극장에서 보는내내 몸을 배배 꼬며 보긴 했지만, 그럼에도 저는 핵노답망작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영화를 두고 올해 최악의 핵노답망작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힘을 내요, 미스터 리> 같은 영화를 아직 안 본 사람들...
  • 독자 2019/12/26 11:11 # 삭제 답글

    하정우 연기 못한다
    어느 영화나 맨날 똑같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