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지고 보면 사실 별 것 없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이미 한국 청춘물들이 소비할대로 소비한 가출소년이고, 심지어 머리도 샛노랗게 염색. 그러다보니 당연스럽게도 부모와의 갈등이 이어지고, 이를 통해 바깥으로 싸돌아다니던 가출청춘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조금씩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 주요 전개. 뭐, 주변 인물들 중 가출소녀도 있다보니 또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미성년자 성매매 관련된 이야기도 잠깐 나오고 폭행이나 사채 같은 이야기들도 나온다. 하여튼 결국 별 것 없어뵈는 이야기인 건 사실. 이렇게 별 것 없는 영화가 민족의 명산이 터지면서 시작하는 블록버스터와 같은 주 개봉이라는게 좀 개그.
근데 좋은 게, 영화가 좀 발랄하다. 물론 사채나 철거민 같은 소재는 좀 하드하게 다루기는 하지. 하지만 그것은 그냥 영화의 양념 정도고, 영화가 시종일관 좀 밝은 인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술 했던 미성년자 성매매도 정말 잠깐만 언급되고, 주인공의 엄마가 삶의 터전을 철거 당하는 입장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철거의 발단이나 과정에 큰 묘사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긴, 생각해보니 윗 문단에서 이야기했듯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 이미 한국에서는 다 써먹을대로 써먹었던 것들이니 굳이 디테일 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으로서 그냥 알아먹게 되는 부분이 좀 있네.
하여튼 특유의 발랄함이 좋다. 사실 작정하고 웃기려드는 지점도 없진 않은데, 이상하게 그렇지 않은 부분들에서도 실실 웃음이 나더라. 그냥 주인공이랑 주변인물들 하는 꼬락서니가 더 너무 귀엽고 훈훈해서. 그리고 배우들이 그걸 잘 받쳐준다. 박정민은 언제나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지만 온전히 내 맘을 비집고 들어온 적 없었는데, 어째 깨발랄하게 나오는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너무 좋더라. 염정아는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거기에 마동석이 있다. 사실 해오던 주먹왕 귀요미 역할 이번에도 한 건데, 그게 또 먹힌다. 분홍 맨투맨 입고 단발머리를 한채 새우깡 주워먹고 있으니 그냥 호감이다. 물론 그 와중에 혼자 연기 떨어지는 정해인, 다른 의미로 레전드.
그러나, 이렇게 깨발랄한 기조를 유지 해오던 영화도 후반부 들어서 갑자기 무너진다. 아니, 사실 무너진다라는 표현은 좀 오버인 것 같긴 하지만... 마동석이 연기한 거석의 후반부 변화에 문제가 있다. 밝고 통통 튀던 영화가 갑자기 <신세계> 느낌나는 범죄물로 변모하는 순간부터 이미 영화의 톤 앤 매너는 무너진 거다. 그나마 사채 관련 묘사까지는 현실적이라고 쳐줄 수 있는데, 영화가 갑자기 느와르 장르물의 세계로 확 뛴다. 여기서 영화의 직접적 주제를 캐릭터의 입을 빌어 직접적으로 빵-하고 때려주는 것도 느끼한 기름칠.
그 외, 후반부엔 어김없이 신파가 있다. 허나 이건 또 반전이라면 반전인 게, 여기서의 신파는 또 좋았어. 그래, 신파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박정민의 연기력으로 커버해주는 그 짧은 신파. 그거 하나면 딱 감정적으로 알맞은 거지. 만약 여기서 더 붙잡고 질질 끌며 엉엉 울었다면 영화가 정말 산으로 갔을 것이다.
영화가 내내 말하지, 자기 자신이 오래도록 해왔던 일. 그게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근데 그렇게 따지면 거석은 조폭 두목으로 오랜 세월을 지내온 양반 아니던가? 영화의 메시지에 따르면 그럼 이 양반은 중식당 주방장보다 조폭 두목이 더 잘 어울리는 일이라는 거 아니야? 아니. 그게 아니라, 오래도록 자신이 꿈 꿔왔던 일. 지금의 자신을 만든 일. 그렇게 자신이 해온 일. 그게 바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이라는 거지. 주인공들은 영화 초반부, 오토바이를 끌면서 넓고 가파른 대로를 낑낑대며 오른다. 그러나 영화 결말부에서 가면 좁고 후미진, 그러나 완만하고 시원한 내리막길을 오토바이로 활강하듯 질주한다. 그게 그렇게 맑아보이더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아는 것만으로도 정말이지 큰 복인 것이다.
덧글
로그온티어 2019/12/23 15:53 # 답글
CINEKOON 2019/12/23 17:33 #
타마 2019/12/23 16:51 # 답글
CINEKOON 2019/12/23 17: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