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7 17:47

조작된 도시, 2017 대여점 (구작)


세련되게 잘 빠진 할리우드산 액션 범죄 영화들을 벤치마킹하려는 충무로의 노력. 하지만 과연 이게 최선인가.

얼마 전 <백두산> 보고 언급했던 것처럼, <조작된 도시>도 몇몇 장면의 구체적인 레퍼런스가 아예 대놓고 드러나는 영화다. 그래도 <백두산>처럼 과하게 뻔뻔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 역시나 특정 장면 또는 쇼트들에서 다른 할리우드 영화들이 아른 거리고 있으니 뭐 더 말할 것은 없다고 본다.

문제는 개연성이다. 할리우드 액션 범죄 영화들 레퍼런스로 삼아 열심히 달려가는 것은 그렇다치자 이거야. 여기에 주인공이 아주 평범한 인물인 것 역시 괜찮다. 아니, 이건 오히려 맘에 드는 설정이다. 물론 왕년에 태권도 국가대표였는데 그게 평범한 거냐-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할 말 없지만, 그럼에도 영화의 현 시점에서는 그냥 백수잖아. 평범하디 평범한 인물이 거대한 음모에 끌려들어가는 것. 나는 그런 묘사를 언제나 좋아한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느낌도 좀 나고, 뭐.

다시 돌아와, 결국 개연성이 영화에 큰 해를 끼쳤다고 본다. 도대체가 말이 되는 부분이 없다. 주인공은 졸지에 강간 살인마로 누명을 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 주인공은 법원에서 무기징역 판정을 받는다. 어째 여기서부터 현실성이 없잖아 그렇게 주인공이 당도한 흉악범 전문 수용 감옥. 근데, 이 감옥에서 주인공이 탈옥한다. 여기서부터 뭔가 어이가 털리기 시작한다. 아니, 듀프레인 마냥 숟가락으로 땅굴 파 탈출한 것도 아니고 그냥 탈옥했다고? 물론 핑계야 있지. 아픈 척 하고 구급차 탄 뒤에 거기서 도망치는 거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얘 그냥 평범한 애잖냐. 왕년에 국가대표 할 실력으로 태권도까지 하면 구급차에 있는 간수들 다 줘패고 탈옥할 수 있는 거임? 영화도 그게 황당한 설정이란 걸 알고 있었던 건지, 극중 최귀화가 연기한 간수장이 주인공에게 총을 겨누는 쇼트를 넣어뒀다. 근데 그러면 뭘하냐고, 결국 안 쏘는데. 아니, 왜 안 쏴? 간수장이랑 주인공이랑 뭐 브로맨스의 스파크라도 튈만큼 무슨 전개가 있었나? 서로 의리나 동정을 나눌만큼 가까운 사이였냐고. 간수장 입장에서는 그 새끼 놓치는 순간 자기가 좆될 게 뻔한데 왜 안 쏴.

악당 역시 개연성 없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놈이다. 대한민국의 사법권 뒤에서 이 모든 일을 은밀하게 벌이는 놈인데, 애초 이게 말이 되는 설정인가는 차치하고... 그렇게 큰 터치 모니터로 이 세상 모든 걸 관찰하는데 그 비밀 아지트가 그렇게 허름한 건물에 있다고? 그것도 자기가 국선 변호인 신분으로 쓰고 있는 사무실이잖아. 그리고 대체 어떤 프로그램을 쓰기에 한반도의 모든 CCTV가 다 연동되는 거냐. 악당은 설정도 말이 안 되고 디테일도 갸냘프다. 이와중에 이하늬가 연기한 사무장 캐릭터로 일종의 떡밥까지 살포하고 앉아있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개연성 없는 것은 결국 결말이다. 세상에 마상에, 성인 방송 TV에서 생방송으로 송출된 이 모든 음모의 전모가 담긴 영상으로 결국 해피 엔딩이라니. 너무 나이브하지 않아? 아직도 이렇게 순수한 생각을 하고 앉았어? 그 결말로 달려가는 마지막 액션 시퀀스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 흉악범 수용소에 갇혀있던 마약왕은 대체 어떻게 꺼낸 것이며, 왜 굳이 그 놈을 꺼냈어야 하는지도 의문. 일도 잘 못 하던데... 괜히 귀엽게만 생겨가지고... 그저 이상하게 보여야하기 때문에 그리 설정된 듯한 주인공 측근의 해커는 여전히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군림하고, 뜬금없는 타이밍에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재주도 뛰어나다. 마티즈 어디서 가져온 건지 주인공이 되묻는 장면은 가히 충공깽. 그냥 감독이랑 스텝들이 막 찍어놓고 편집실에서 그 장면 개연성 없는 거 뒤늦게 알아친 듯. 분명 배우 둘 불러다가 나중에 ADR로 덧붙였을 것 같다.

한국적이면서도 게임과 만화의 감수성을 듬뿍 담은 범죄 액션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결과물은 그냥 허무맹랑한 만화. 아, 음악도 약간 한스 짐머 풍이다. 특히 <인셉션>이랑 <인터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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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9/12/27 19:26 # 답글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도 그렇지만, 저는 ... 그... [쇼생크탈출]로 시작해서 [도망자]로 급선회한 후에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우정의 힘!" 으로 엉성하게 나마 [미션임파서블]을 따라간 것 같았습니다. 악당... 악당은 간지가 중요한데 무슨 인터넷 찌질이처럼 묘사해서 대결이 그렇게 흥미로워지지도 않았고요. "주인공이 어떻게 되버릴 지도 모르겠다!" 는 걱정이 아니라, 한심한 놈과 한심한 놈 둘이 키배 벌이는 걸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초반 게임 가상현실 연출은 정말 극혐할 정도로 싫었어요. "게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이런 로망을 가지고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진 어느 어르신들이 만든... 그 뭔가 기이한 쉰내가 나는 씬 같았거든요. 아냐! 아니라고! 저건 아니야! (버럭) 이런 걸 본적이 있어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요. 21세기가 지난 지가 언젠데 세기말식 표현이 가득한 작품을 봐야 하는 거냐고! 제가 그래서 블랙스쿼드 좋아하는데 이 영화 보고나서 안 합니다. 그 유치한 씬이 자꾸 떠올라서 잡을 수가 없어요. 지금은 아이언사이트 합니다. (영화계가 이 게임에 관심을 끄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거기에 주인공들은 제 각각 좆같음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저는 캐릭터는 일말의 좆같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배웠어요. 기분나쁜 맛으로 들어가지만, 곧이어 괜찮은 맛으로 바뀌는 똠양꿍같은 캐릭터를 만들라고 배웠단 말입니다. 거기까진 좋아요. 우정의 힘으로 똘똘 뭉치고, 그래 우정 가진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그뿐이죠. 제각각 뭐에 대해 성장했냐고 물으면... 모르겠어요! 위기를 겪거나 위험을 겪는다고 사람이 마냥 성장하진 않잖아요. 명분이 있어야죠. 그리고 그 명분이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어야죠.

    주인공들 나름의 케미를 보이는데 그 스타일과 호흡이 중학생때 각본 보는 것 같았다고요. 심은경 캐릭터는 진짜... 그 연기 잘하는 배우를 데리고 나이먹어도 중2병 안 나은 여학생 역할을 시켰다고... 감독은 감옥보내야 합니다. 이 필름은 죄다 태워버려야 합니다.

    근데 그거 아세요? 저는 이 영화를 되게 안 좋게 봤는데 다른 사람들은 에헤헤 재밌따 하고 보는 기분이요?! 대체 뭐가! 이게 뭐가 즐겁다는 거야! 차라리 [아수라]를 두 번 보겠다! 아수라 발발타! 그 말 뜻이 뭔지 압니까? 나도 몰라요!
  • CINEKOON 2020/01/03 16:23 # 답글

    비디오 게임이나 여러 컴퓨터 프로그램들, 그리고 코미디를 다루고 묘사하는 방식이 확실히 충무로에 올드한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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