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31 23:39

2019년 영화 결산 줄세우기

2019년에 한국에서 공개 되었던 영화들 중 나의 개인적 TOP 10과 WORST 5. 
극장 개봉작 뿐만 아니라 제작과 공개 시점이 2019년인 넷플릭스 공개작들도 포함한다. (2019. 01. 01 ~ 2019. 12. 31)
세어보니 올해 공개작 중 관람한 영화가 딱 134편.

일단 TOP 10 부터.




10.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 (마이클 도허티)


초장부터 덕후 인증하는 꼴.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는 분명 약점 많은 영화다. 괴수 영화임에도 물리적인 상영 시간 대부분을 인간측 캐릭터들로 채웠다는 점. 심지어 그 인간측 캐릭터들이 그리 재밌는 인물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안에서 뭔가 신선한 이야기 구조를 이끌어낸 것도 아니고. 근데 사실 이뿐만이 아니다. 전개가 뜬금없이 자주 갑툭튀 한다는 점이나, 정작 설명해야할 부분에 대해서는 쿨할 정도로 생략한다는 점도 영화의 명백한 단점들.

허나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는 괴수 장르 영화로써의 쾌감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는 괴수 영화다. 비록 하나마나한 인간 캐릭터들 묘사로 시간을 잡아먹긴 하지만, 그럼에도 괴수들이 나오는 부분에서만큼은 확실히 만족도가 크기 때문에. 거의 70년이 다 되어가는 캐릭터에게 바친 제대로된 헌사라는 생각 역시 드는 것은, 압도적으로 울려퍼지는 영화의 주제가 때문. 이 주제가 역시 1954년에 만들어진 초대 시리즈의 그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편곡해 리메이크한 것. 이처럼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는, 괴수 영화의 박력이 충만하고 또 시리즈의 원류에 로단 마냥 머리를 조아릴 줄 아는 영화다. 

좋았던 장면 : '고질라 & 모스라 VS 기도라 & 로단' 워싱턴 DC에서 벌어지는 2:2 태그 매치. 오리지널 시리즈가 줄창 선보였던 괴수 레슬링의 제대로된 상위 호환 버전. 시작될 때, 뭔가 대단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아 가슴이 쿵쾅 쿵쾅 했다.



09. <윤희에게> (임대형)


그리움이 눈처럼 쌓이고, 담배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영화. <윤희에게>는 퀴어를 소재로 삼은 영화이지만 퀴어 영화 보다는 전통적인 멜로 드라마에 더 가까워 보인다. 두 주인공의 사랑과 그 사랑이 담긴 연애사를, 영화가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기 때문. 그 둘의 사랑과 이별은 오직, 영화가 담지 않은 과거에만 존재한다. 그래서 영화는 짐짓 실체 없이 마냥 우울해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교차 편집을 통해 이야기와 거기에 담긴 감정을 수월하게 풀어나간다.

여행 영화로써도 교과서적인 영화다. 주로 여행 영화들이 다루는 여행지들은 그냥 특정한 곳의 지명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각 도시에는 사연이 있고, 대표적으로 각인될 감정과 뉘앙스가 있다. <윤희에게>의 오타루 같은 경우엔, 그것이 '그리움'일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리움을 차마 치우지 못하고 있던 순간에, 두 주인공은 영화에서 처음으로 만난다. 만남이 시작되는 동시에 끝을 닫는 영화. <윤희에게>는 보여주는 것보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 더 많지만, 우리네 그리움이 다 그러하기에 영화적으로 더 알맞은 형식처럼 느껴진다. 

좋았던 장면 : 윤희가 쥰을 먼 발치에서만 지켜보다가 돌아오는 장면. 우습지만 그 모습과 그 감정이 뭔지 알 것만 같았다.



08 <내 이름은 돌러마이트> (크레이그 브루어)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 그리고 그를 통해 자존감을 찾는 영화. 맞다. <내 이름은 돌러마이트>는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이지만, 그 끝에 가서 주인공들이 얻는 것은 꿈이나 성공 같은 마냥 달콤한 것이 아니다. 결국 그들이 찾아낸 것은 스스로를 위하고 스스로를 사랑해줄 줄 아는 자존감이다. 그리고 예술에서야말로, 그 자존감이 가장 중요하다. 영화가 성공했든 성공하지 못했든, 결국 끝까지 '나'로 살아가는 것은 나 뿐이니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해줄 것. 응원해줄 것. 격려해줄 것. 

바로 그 점에서, 에디 머피의 복귀작 타이틀이 더 반짝이며 빛난다. <록키>와 실베스타 스탤론, <레슬러>와 미키 루크의 관계처럼 처절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영화와 주연배우가 찰떡같이 붙어 스스로를 대변하는 효과.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에 정도가 있다. 지나치지 않고, 너무 앞서 나가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지나친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영화를 보는내내 그냥 너무 재밌었다.

좋았던 장면 : 영화의 엔딩, 돌러마이트의 라임.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드라마들은 모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신한다. 저 남자는 저 여자와 결혼하게 될 거야. 아이도 몇 명 낳고 행복하게 잘 살겠지. 우리가 지금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상관 없어, 어차피 우리 둘은 운명으로 엮인 관계이니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될 거야.
 
나는 그게 다 감상적인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미래가 어떻고, 결말이 어떻고. 항상 중요한 건 지금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언제나 '지금'뿐이기에. 그리고 <가장 보통의 연애>는 그 '지금'의 소중함과 그 '지금'의 시간에 우리가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재치있게 떠들어주는 영화다. 심지어는 과거도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내 여자친구가 과거에 어떤 남자를 만나고 다녔든, 지금의 내 남자친구가 과거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미래도 그렇고. 헤어질 것을 알고 만나는 관계가 어디에 있나. 우리 어차피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그냥 서로 막 대하기로 하자-라는 말은 웃기지 않은가. <가장 보통의 연애>는 서로를 기착지가 아니라 도착지로 여기는 태도를 중히 여길 줄 아는 영화다.

좋았던 장면 : "너랑 섹스하고 싶어"



06. <퍼스트 리폼드> (폴 슈레이더)


이것은 종교 영화인가 싶다가도 또 환경 영화인가 싶어진다. 그러다가 또 정의 구현과 복수를 동시에 하는 스콜세지나 타란티노식의 영화인가 싶어지기도 하고. 그만큼 <퍼스트 리폼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영화일 것이다.

하지만 난 그 모든 게 다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환경 영화인 것도 맞다. 영화에서 가장 큰 분노가 끓어오르는 부분은 환경 파괴 때문이니. 복수 영화이기도 하지. 정의 구현을 위해 환경 파괴의 주범들을 단죄 하려드는 영화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종교 영화인 것도 맞다. 하지만 단순히 주인공이 목사 신분이기 때문에 종교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그는 마지막에 구원을 얻지 않나. 그리고 사랑을 얻지 않나. 사랑과 구원은 언제나 같은 것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구원 받는다는 것. 구원 받는다는 것은 사랑 받는다는 것. 영화의 결말이 그걸 잘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 사랑 영화라는 코멘트를 하나 더 달고 싶다. 영화의 마지막에 톨러가 구원 받아 기뻤다.

사실 처음 봤을 땐 생각보다 그냥 그런 영화였는데, 어째 곱씹을 수록 더 좋아지는 영화.

좋았던 장면 : 톨러와 메리의 신비로운 마법 여행.



05. <기생충> (봉준호)


이 리스트의 순위와는 무관하게, 올 한 해를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 기록적인 국내외 흥행과 더불어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까지 받아냈으니 여러모로 대단한 영화라 하겠다. 허나, 내게는 진정한 봉준호의 귀환작처럼 느껴져 더 좋았던 영화.

<설국열차>와 <옥자>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었던 봉준호 특유의 깊은 우물이, 이 영화에서 돌아와 좋았다. 국가를 떠나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는 극단적 빈부 격차의 사회 속에 봉준호가 결국 깊게 파둔 우물. 메시지도 좋고 주제도 좋지만, 정작 영화를 더 좋게 만드는 것은 장르적 외향 때문이다. 영화는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공포 영화는 무조건 무서워야 하고, 코미디 영화는 무조건 웃겨줘야 한다. 장대한 주제를 설파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봉준호는 그걸 또 보란듯이 해냈다. 존나 재밌는 영화를 보고 있는데 존나 무섭고 또 존나 씁쓸한 감정. 이토록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준 영화로는 아마 올해 <기생충>이 최고였을 것이다.

좋았던 장면 : 더 큰 절망으로 관객들을 내몰아버리는 영화의 결말. 기우의 편지.



04. <조커> (토드 필립스)


올해의 캐릭터 스터디. 이미 잭 니콜슨, 히스 레져, 자레드 레토처럼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훌륭하게 메꿔낸 호아킨 피닉스의 재능과 노력. 얼굴 표정을 짓이기고 몸 전체를 새롭게 리디자인한 듯한 호아킨 피닉스의 육체적 노력과 그에 상응하는 뛰어난 연기력. 찬사받아 마땅하다. 허나 토드 필립스의 연출 역시 그에 딸리지 않았으니.

인물을 얕은 심도로 가득 채워 담아내는 방식. 영화에 아직 묘사되지 않은 수 년 뒤의 비극을 적절하고 센스있게 암시해내는 방식. 그리고 여러 영화들을 오마주하고 그걸 또 극도로 조율해낸 토드 필립스의 꼼꼼한 방식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코미디 전문 감독이 만들어낸 가장 우울한 코미디언 영화. 이미 워낙 많이 이야기된 작품이라 더 할 말이 없지만, DC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어 고맙다는 말을 꼭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좋았던 장면 : 결말부, 아서와 브루스 쇼트 교차 편집. 그 둘은 영원히 싸우고 또 싸울 것이다.



03. <닥터 슬립> (마이크 플래너건)


예컨대 그런 느낌이다. 존나 쩌는 완성도의 고전이 있는데, 먼 훗날 다른 누군가가 그 고전을 베이스로 뒷이야기를 짜내 새로운 팬픽을 만든 느낌. 근데 그 팬픽도 개쩔게 재밌는 느낌있잖아. 아니, 오히려 고전보다 더 재밌지, 어쨌거나 고전은 고전인 건데 이 팬픽은 완전히 현대적인 템포로 짜낸 모던 스타일인데.

물론 엄밀히 따지면 완전한 팬픽인 것은 아니다. 어차피 <샤이닝>이나 이 영화나 둘 다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 아닌가. 하지만 순수히 영화로만 봤을 때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현 시대의 스탠리 큐브릭은 거의 위인급 대우를 받는다. 그를 대하는 각자의 취향이 어찌되었든 간에 말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인기있는 <샤이닝>을 이어서 이야기를 만든다고 했을 때 아마 어느 감독이나 다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마이크 플래너건은 고전이 되어버린 전작에 뒤늦었지만 상세한 각주를 달고, 그 이후 이야기에 있어서는 맘껏 활개치며 자신의 역량을 드러냈다. 사실 올해 이것보다 완성도 높은 영화들은 많았으나, 개인적 관점에서 보자면 제일 재밌게 본 작품들 중 한 편. 

좋았던 장면 : 대니 토랜스를 찾아온 레드럼.



02.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앤서니 루소 & 조 루소)


새로운 세대에게 <제다이의 귀환>,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되어준 작품. 10년 간 짤짤이 털어 넣은 원기옥 한 방이 이 정도면 그 기대치가 얼마였던 간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적 완성도도 좋지만, 10년 간 끌어온 모든 인물들의 여정을 수준급으로 잘 마무리 지어주고 관객들에게 제대로 보답 했다는 점에서 더욱 더 기쁘다. 모두가 어떤 결말을 얻어냈건, 각자가 원했던 평화로 장중하게 닫아낸 최종장이였다고 생각한다. 더 길게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좋았던 장면 : Avengers Assemble



01. <결혼 이야기> (노아 바움벡)


영화 만들기의 교과서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연기면 연기, 연출이면 연출, 촬영이면 촬영, 미술이면 미술. 그 어느 것 하나 출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진정으로 좋은 영화는 그저 흠결없는 완성도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짜 좋은 영화는 어떻게든 사람의 마음을 끌어 당기고 어떻게든 그 품을 비집고 들어와 마음의 한 켠을 끝내 차지 하고야 만다. 그리고 나는 오프닝에서 이 영화에게 바로 마음을 내주었다.

영화는 시간의 예술이다. 짧다면 짧았고, 길다면 길었을 찰리와 니콜의 결혼 생활을 <업>의 오프닝 마냥 몽타주로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하다못해 과거 회상을 썼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결혼 이야기>는 이들의 과거 결혼 생활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두 배우들만의 연기와 철저하고 따스한 각본만으로 다 암시한다. 영화적 마술이 이렇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

제목과는 다르게 정작 이혼을 이야기하는 영화. 하지만 이혼이라는 결혼 생활 내 가장 차가운 순간에서도, 우리가 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지에 대해서 명백히 알고 그 이유에 대해 따스함을 불어넣는 영화. 이혼 이야기지만 따스한 이야기이고, 이혼 이야기지만 결국 결혼 이야기인 영화. <결혼 이야기>는 내게 있어 가히, 올해의 영화다. 넷플릭스 올 한 해 장사 존나 잘했네.

좋았던 장면 : 오프닝. 찰리의 장점. 니콜의 장점.



올해를 빛내준, 나의 감독들을 마지막으로 모시며-




최고가 있으면 최악도 있는 법. 올해 최악의 BOTTOM 05.



05. <오, 라모나!> (크리스티나 자코브)


존나 너저분하고 천한 묘사에, 심지어 유머도 부장님 마냥 질질 끌고. 이거 만든 사람들 중에 대체 10대 소년으로 살아본 사람이 있기는 한 건지 심히 의심스러운 작품. 이거 보는 두 시간이 진짜 아까웠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면서 한 번도 뻘쭘하지 않았던 걸까? 보는 내내 내가 다 뻘쭘한데 만드는 사람들은 오죽 했을까 싶은 영화. 보통 철지난 바보 코미디나 과거에 있었던 실제 참사를 다루는 신파 둘 중 하나만 해도 좀 버겁지 않아? 근데 이 영화는 그걸 다 했다. 코미디는 웃기지도 않고 눈물 날 부분에서는 눈물 대신 졸음에 침이 흘렀다. 아직도 이런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구나- 싶었다.



03. <캡티브 스테이트> (루퍼트 와이어트)


암울한 세계관 핑계로 화면만 어둡게 만들어 대체 뭐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건지 알려주지도 않고...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까지만 해도 루퍼트 와이어트는 신뢰의 이름이었는데, 결국 이 사단이 나고야 만다. 



02. <고질라 - 행성 포식자> (시즈노 코분 & 세시타 히로유키)


존나 꼴도 보기 싫네. 딴엔 또 3부작이라고 다 봤는데 시발. BEST에도 들고 WORST에도 드는 괴수의 왕





그저 분노. BEST에도 들고 WORST에도 드는 넷플릭스




한 해가 갔으니 춤이나 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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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19/12/30 16:26 # 답글

    내년도 좋은 영화 리뷰 부탁해요!
  • CINEKOON 2020/01/03 16:18 #

    내년도 좋은 (그리고 정신 나간) 리플들 부탁드려요! (저는 그걸로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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