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신작이자, 제 2차 세계 대전 특히 태평양 전쟁의 결정적인 분수령이었다고 할 수 있을 미드웨이 해전을 1976년 동명의 작품 이후 처음으로 영화화한 작품.
탁 까놓고 말해 긍정적인 부분은, 전쟁 장르 영화의 일반적인 클리셰들을 어느정도 다 깨부쉈다는 데에 있다. 미국에서 만든 영화고 과거 미 해군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다보니 미국뽕 차오르게 만든 건 뭐 어쩔 수 없는 건데, 그 외의 부분들에서 좀 전형성을 뺐다는 느낌이 든다. 과도한 영웅주의 묘사도 없고, 손발 다 오그라들게 만드는 결기가득 유치뽕짝 대사들도 없으며, 가족 사진 꺼내 서로 교환하며 끼리끼리 사망 플래그 꽂는 그런 장면들도 없다. 뭐, 아예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이 워낙 강렬하고 극단적인 순간들의 연속이다보니 딱 실제로 있었을 법 했던 수준으로만 묘사하고 있음. 롤랜드 에머리히 영화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꽤 긍정적인 장점이다. 여기에 롤랜드 에머리히 영화라서! 당연히 좋은 것은. 스펙터클의 규모와 화려함에 있다. 드넓고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한 가운데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공중전. 전투기 시점에서 촬영된 쇼트들이 꽤 많은데, 저런 방공포 사격망을 뚫고 적함에 근접 해야만 하는 파일럿들의 마음가짐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겁남. 나라면 못했을 거다.
근데 이 영화 단점이 정말 재밌다. 이 정도 규모의 전쟁 영화에 연출자로 롤랜드 에머리히가 붙은 판인데도, 영화가 지루하다는 것. 이런 영화에서 아직도 밀도 있는 이야기를 기대하는 거냐-라고 누군가가 물을지도 모르겠다. 아, 물론 이야기도 좋으면 더할 나위 없지. 근데 내가 말하는 지루함이라는 게, 액션씬들에서도 느껴진다는 것은 큰 문제다.
제목만 보면 미드웨이 해전 하나만 빡세게 다룰 것 같은데, 정작 영화의 시작은 진주만 폭격 때부터다. 물론 중요한 사건이었지. 미드웨이 해전이랑 이어서 보여주기에도 기승전결 잘 살고. 허나 이 진주만 폭격 시점부터 영화가 시작되다보니 전체적으로 페이스가 떨어진다. 미드웨이 해전 하나에만 집중했다면 훨씬 더 긴장감 있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을 것. 미드웨이 해전이 발발하기 몇 해전부터의 사건들을 보여주니, 여러 인물들이 나오는데다 공간적인 배경도 계속 바뀐다. 여기에 다큐멘터리 스러운 커다란 자막은 덤.
그래서 전체적인 페이스가 처지는데, 액션 시퀀스들도 뭐랄까 큰 한 방이 없어 계속 아쉬움을 준다. 솔직히,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그런 생각했다. '잉? 이게 뭐야? 끝이야?'라는. 반복에 반복에 반복으로만 스펙터클을 의무적으로 직조하다가 막판에서 마저 별다를 것 없는 엔딩으로 마무리.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쾌감 한 번 정도는 크게 끌어내 줄 수 있잖냐. 근데 그걸 안 하고 있고.
밀덕은 아니지만 미드웨이 해전은 함대와 전투기들의 물리적 충돌이라는 스펙터클 외에도,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정보전의 스릴도 표현하기에 적절한 전투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그걸 안 한다. 암호명 AF 가지고 설왕설래 하는 장면도 있고, 미 해군 기지 내에 있는 암호해독부서의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그냥 딱 그 뿐일 뿐, 미국이 일본을 낚는 묘사가 아예 없다. 그냥 결과만 있다. 이거 스릴감 있게 같이 살릴 수 있었을텐데. 게다가 영화부터도 정보전의 중요성을 계속 설파하고 앉아있잖아.
결과적으로 나쁜 영화는 아닌데, 여러 스펙터클들을 리듬감 있게 배치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점. 그래서 영화가 시종일관 팡팡 터지는데도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실제 전투와 그 이면의 정보전을 잘 엮어내지 못했다는 점. 이건 그냥 아쉬운 거고. 하여튼 한 해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영화가 이토록 아쉽게 뻥뻥 터지는 영화라니. 뭔가 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PS - <10대 사건으로 보는 제 2차 세계 대전>의 미드웨이 에피소드가 훨씬 재밌었음.
덧글
로그온티어 2020/01/01 12:44 # 답글
CINEKOON 2020/01/03 16:18 #
지화타네조 2020/01/01 19:57 # 답글
CINEKOON 2020/01/03 1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