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3 16:10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 1980 대여점 (구작)


전체 시리즈 중에서 TOP. 가장 높은 완성도를 지닌 영화. 허나, 전체 시리즈에서 뿐만이 아니다. 블록버스터 영화 역사상 소포모어 징크스를 이토록 가볍게 씹은 속편도 드물 것. 요즘이야 <터미네이터2>나 <스파이더맨2>, <다크 나이트>처럼 훌륭한 속편들이 간헐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1980년에 이런 수준으로 속편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일 것이다. 

주인공 파티를 쪼갠 뒤 산개 시키는 구성이 탁월하다. '인상적이다'라는 느낌을 아득히 넘는 감정으로 끝난 호스 전투. 그리고 이어진 주인공들의 그룹화. 루크는 제다이 수련을 위해 R2와 함께 데고바로 떠나고 한과 레아, 3PO와 츄이는 팔콘을 타고 제국군에 의해 쫓기기 시작한다. 이 두 그룹을 교차해 보여주는 훌륭한 구성의 편집. 그러니 시리즈 특유의 교차 편집 전통을 정립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만들어진 <라스트 제다이>가 내세웠던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라는 주제와 그에 대한 믿음. 그걸 먼저 선보였던 에피소드이기도.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계왕한테 수련받고 엄청난 파워 인플레의 주역이 되었듯, 루크도 요다한테 배우고 나면 대단한 무언가를 곧바로 보여줄 줄 알았지. 허나 루크는 요다에게 훈련 받고도 다스 베이더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두 탈탈 털린다. 물론 루크가 전통적인 제다이 수련 방식에서 한참 벗어난 상태였다는 것을 먼저 인지해야할 것이다. 요다 말마따나 훈련 시작하기엔 나이도 많았고, 무엇보다 정말 잠깐 배웠잖아. 교차 편집 덕에 좀 덜 느껴지긴 하지만, 루크가 데고바에 머물고 있던 기간은 지구력으로 기껏해야 일주일이 채 안될 것이다. 제 아무리 혈통빨 루크여도 벼락치기로 일주일 배우고 우주대마왕이랑 칼 섞기엔 한참 모자라잖아.

영화의 내용 자체도 흥미롭고 좋지만, 전체 프로덕션 디자인에 관여한 랄프 멕쿼리의 진가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새로운 희망>의 반란군 편대와 죽음의 별 대자인도 끝내줬었지만, 이 영화가 되어서야 비로소 AT-AT나 AT-ST 같은 워커 지상 병력들이 등장하니까. 경쟁 프랜차이즈라 할 수 있을 <스타 트렉>의 프로덕션 디자인이 대부분 유려하고 세련된 느낌이라면, 랄프 멕쿼리의 <스타워즈> 프로덕션 디자인은 뭐랄까 투박한 실재감이 더 깃든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개인적으로 AT-AT 디자인은 진짜 끝장이라고 생각함. 물론 개인적 취향과는 별개로 저런 거대 병기가 실제 전투에서 얼마나 유용할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그거 어차피 다 프로파간다용 아니야?

밀레니엄 팔콘 멤버들의 A-특공대스러운 면모가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그 좁아터진 밀레니엄 팔콘 콕핏 안에서 한이랑 레아랑 츄이랑 C3PO까지 다 모여서 서로 만담까고 우당탕탕하는 거 개좋아함. 특히 이 파트에서 영화의 개그감이 빛을 발하는데, C3PO는 이 에피소드에서 개그 정점을 찍었다고 본다. 솔직히 다른 에피소드들 보면서 이 정도로 3PO가 웃겼던 적은 없었음. <클론의 습격> 때 대가리 잘 못 끼워서 지랄했던 건 뭐랄까 그냥 단발성이었던 데다 다소 뻔했던 아이디어라. 굳이 비유하자면 <클론의 습격>의 주둥이 야쿠자 장면은 그냥 미국식 드립 같고, <제국의 역습> 속 개그는 뭔가 영국식 유머 같은 느낌. 그리고 츄바카랑 호흡이 쩐다. 솔직히 명콤비로 불리는 R2와의 조합보다 이 쪽이 더 쩌는 것 같다. 3PO가 입 터니까 츄바카가 전원 꺼버리는 거 존나 웃김. 물론 레아도 끈다

반대로 데고바에 있는 인물들. R2랑 요다 존나 귀여움. 프리퀄 트릴로지에서 덤블링 구르며 광선검 실력 선보였던 CG 요다도 싫진 않은데, 그래도 이쪽 퍼펫 요다가 귀여움으로는 압승이다. 물론 은둔하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도 한 몫 하겠지만... 어쨌거나 첫 등장해서 루크의 에너지바 빼앗아 먹는 거 존귀쫀귀. 요다네 집도 겁나 아늑한 것 같다. 사이즈만 맞으면 하루쯤 에어비앤비 해보고 싶음.

결론적으로는 반전과 결말이 충공깽. 은하계를 단숨에 구할 것처럼 보였던 우주용사는 우주대마왕에게 개털리는 결말. 손모가지도 날아갔고, 심지어 여기서 그 우주대마왕이 이 우주용사의 친부라는 반전이 더 난장을 깐다. 시바, 존나 멋진 반전이야...... 지금 와서야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와 '절름발이가 범인이다'와 더불어 영화 안 본 사람도 아는 유명한 반전 리스트 중 가장 상위에 위치할 만한 반전이지만, 이거 진짜 모르고 보면 대박이겠다 싶다. 내 평생 소원이 아직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미래의 내 자식에게 이거 반전 장면 보여주는 거임. 물론 일체의 스포 없이.

그렇게 우주용사는 졌고, 우주대마왕은 그냥 대마왕이 아니었으며, 공주는 용사 대신 양아치를 택한다. 근데 그 양아치는 또 얼음과자 된채 민달팽이 우주 갱스터에게 팔려가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여기서 영화가 끝났다는 것. 지금이야 다음 이야기 궁금하면 바로 다음 편 디스크 집어넣으면 되지만, 이거 개봉 당시에 봤던 사람들은 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3년을 기다렸을까. 그야말로 절체절명이 클리프행어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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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20/01/04 02:52 # 답글

    저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자신이 감동받았던 걸 보여주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인트 뷰가 정말 다를 수도 있거든요. 저희 어머니가 [터미네이터2]에 감동받아서 제게 경고없이 보여주었다가, 제가 그걸 보고 트라우마에 걸려서 한 4년간 다크사이드로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말하지만 부모와 자식의 포인트 뷰는 달라요. 일방적 권유는 오히려 자식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봐요, 저희 집안은 유교 사상 뚜렷하고 선비집안입니다. 가족끼리 만나면 정치토크와 역사토크 그동안에 공부한 것에 대한 논쟁만 해요. 근데 여기서 나온 건 남들에게 섹스를 권유하는 방탕한 종자였죠. 접니다. 자식은 어쩌면 [스타워즈]보단 [둠]같은 것에 끌려할 수도 있어요. 에이드리언 카멕처럼 인체해부적 고어함에 관심이 있지 스페이스 오페라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하면 안됀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그 선택이 흥미로운 방향으로 자식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단 거죠. 아님 실망하며 "아빠 이거 가오갤2에서 본 거잖아" 라고 말할 수도 있고요. 아니면 큰 감명을 받고 영화인이 될 수도 있고, "아빠가 나쁜 놈인데 왜 안 잡지?" 라는 냉정하고 섬뜩한 말을 내뱉을 수도 있지요. 심각한 건 아니고 반쯤 장난으로 쓴 거긴 합니다만, 그래도 말입니다!
  • CINEKOON 2020/01/04 14:20 #

    아, 사실 오해의 소지가 있었는데. 저는 그 장면에 제 미래의 자녀가 감동받기를 원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그 장면에서 그 반전을 알게될 때 얼마나 놀랄지 그냥 그 얼굴 표정이 궁금해서요. 쓰고보니 굉장히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욕망이네요.

    그나저나 로그온티어님 집안은 선비 집안이었군요......
  • IOTA옹 2020/01/13 13:09 # 답글

    중학생때 스타워즈를 봐야쓰것다 다짐하고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을 계속빌려보다 결국은 중고로 사버렸는데
    문제는 그 가게에는 4편과 6편만 있었지요.

    뜬금없이 루크가 다스베이더에게 아빠라 하는데 왜그런지 헷갈렸고 루크가 광선검을 손도안대고 잡아당기고 해서 패닉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97년 스페셜 에디션 재개봉때가 되어서야 이 최고의 스타워즈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봤네요.
    아 그래서 그랬구나하고...

    매우 잘못된 방법으로 스타워즈를 접하다보니 아들에게 한번 순서대로 보여주고 반응을 보고 싶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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