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4 18:05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 2005 대여점 (구작)


다짜고짜 우주전부터 대뜸 보여주며 시작하는 영화. '할 게 많으니 싸게싸게 따라오쇼'라고 영화가 말하는 것만 같다. 

그 말이 진짜인 게, 난 그리버스가 도대체 어떻게 코루스칸트에서 의장 납치 했던 건지 궁금 했었거든, 처음 봤을 때. 근데 그 설정을 그냥 오프닝 크롤 자막으로 해치우는 시리즈의 기개가 놀라울 따름이다. 더불어 그러면서도 오프닝 롱테이크에서 루카스의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 역시 느껴짐. 사실 말을 이렇게 했지, <시스의 복수> 도입부에 펼쳐지는 코루스칸트 전투는 역대 실사 영화 시리즈 속 전투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그냥 존나 멋지잖아. 

오비완과 아나킨의 관계는 에피소드 2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 근데 이걸 전작에서부터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번 영화가 바로 아나킨 흑화 타이밍인데. 휴... 그래도 서로 챙겨주는 모습 보니 감개가 무량. 그나저나 오비완은 대 두쿠전 필패의 아이콘인가 보다. 평소엔 무쌍 찍고 싸움도 잘하는 양반인데 이상하게 두쿠랑 붙기만 하면 먼저 나가떨어져 버리네. 상성 문제라도 있는 건가. 더불어 자신의 정체를 꼭꼭 숨긴 채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아나킨의 바짓단을 잡고 늘어지는 시스 로드. 존나 이 정도면 목숨을 건 몰래 카메라다. 

그리버스는 숏다리란 말을 듣는 게 죽기보다 더 싫은가보다. 아나킨에게 그 말 듣자마자 역겨운 제다이라고 받아침. 별 것 아닌 가벼운 농담이었는데 그걸로 급정색하고 욕으로 화답하는 학창시절 친구가 떠오르는 건 왜 때문일까. 

계속 말하는 거지만, 헤이든 크리스텐슨의 표정은 정말 근사하다. 전작인 에피소드 2에 비해 더 발전했다. 근데 여전히 감독이 그걸 못 받쳐줘. 후반부 윈두 팔 자를까 말까 고민할 때도 그렇지만 초반부 두쿠 목 자를까 말까 고민할 때 표정을 더 진득하게 보여줬어야지. 그나저나 아나킨이랑 파드메 얘네는 비밀 연애하는 거 맞냐. 기둥 뒤라고 숨어서 스킨십 하는 거 보소. 거기 다 보여, 이 새끼들아.

아무래도 전 우주적인 전쟁을 다루고 있는 에피소드이다 보니, 실사 시리즈로는 가장 많은 외계 행성들이 소개된다. 근데 전반적으로 그 새로 소개되는 그 행성들의 디자인이나 묘사가 꽤 잘 되어 있다. 조지 루카스가 연출과 대사 작법은 형편 없었지만, 확실히 이 세계관과 그 묘사에 대한 집착은 대단했다는 게 느껴지는 부분. 

자신에게 다가올 비극을 예언한 아나킨. 예언을 받은 자들이 대개 그렇듯, 그 역시 자신에게 닥칠 미래의 비극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비극을 피하기 위해 했던 그 행동들이, 오히려 비극으로 이어지는 길임을 뒤늦게 깨닫게 되고. 여러모로 보나 확실히 오이디푸스 이야기 같은 그리스 비극들을 참조한 느낌이 물씬. 근데 여기다 대고 너가 잃어 슬플 것들로부터 집착을 버리라니. 존나 쩌는 멘토다, 요다는. 시발, 이러니까 애가 점점 더 삐뚤어지지. 머리 한 번 쓰다듬어주면서 따스한 말 한마디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웠소, 요다옹? 하여간 원탁회는 진짜 무능한 집단이다. 채찍만 때리지 말고 당근도 좀 줘라, 애한테...

근데 <라스트 제다이>에서 스노크가 레이와 카일로를 포스로 이어줬었던 것까지 보고 이 영화를 다시 감상하니 또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 있다. 바로 예언이 담긴 아나킨의 꿈 묘사. 어쩌면 이거 펠퍼틴이 스노크처럼 술수 부린 거 아닌가 또 싶기도 하고. 

전쟁을 빌미로 야금야금 권력 먹어가며 결국 독재자가 탄생하는 모습. 누가 제 3제국 벤치마킹한 것 아니랄까봐 이런 데서 또 쓸데없이 디테일하다. 하여튼 존나 대단한 악당이야. 요다나 윈두 같은 상급 제다이들의 바로 코 앞에 있었으면서도 그 정체와 포스를 알뜰살뜰이 잘 숨겨왔다. 여기에 어떤 말빨을 지녔던 것인지, 변방의 나부 행성 출신이면서 의장직도 꿰차고. 존나 대단한 통찰력또는 기만으로 아나킨이 파드메를 잃는 것에 대해 굉장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아냈고, 또 그에 대한 언급을 아나킨에게 건넬 타이밍 역시 기가 막히게 잡아냈다. 그야말로 권모술수의 대왕. 이 정도로 노력했으면 은하계 먹고 통치하는 거? 인정이다. 학교 하나 못 털어 쩔쩔 맸던 볼드모트나 작은 반지 하나에 쩔쩔 맸던 사우론 같은 새끼들에 비하면 자수성가한 대마왕이지. 

그에 비해 일종의 중간 보스로 설정된 그리버스는 어떠한가. 그는 제대로된 액션 씬을 실사 영화 시리즈에서 꼭 하나 가졌어야만 했다. 근데 유스타파에서 오비완과 벌이는 광선검 대결은 너무 싱겁다. 후까시 잔뜩 잡아놓은 것에 비해 누가봐도 명백히 패배한 결투였음. 손이 네 개고 그걸로 광선검 네 개 잡으면 뭐하냐고. 존나 실력이 거지인데... 하긴, 이건 대진운이 안 좋았던 탓도 있겠다. 이 시기의 오비완은 그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베테랑이었으니. 

말 나온 김에, 원숙미 넘치는 오비완의 간지는 이 때가 리즈. 적지에 홀로 침투해 잠입이고 나발이고 'Hello there'를 외치는 그의 패기와 대범함.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오비완의 모멘트다. 이완 맥그리거 수염도 쩔게 멋있음. 

반면 아나킨이 진짜 철없는 애라는 게 느껴지는 부분이, 이 놈은 제다이로서 출세하는 것에도 욕망이 있는 동시에 그러면서도 파드메와의 결혼 역시 꿈꾼다는 것이다. 병신 같은 규율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제다이는 연애와 결혼을 금지하잖나. 그걸 뻔히 알면서도 파드메와 연애했고, 비밀 연애 하면서는 또 제다이 마스터로서 인정받길 원했다. 이 새끼 뭐야... 어른이면 어느 한 가지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둘 다 기어코 해내려고 하네. 

원탁회가 병신인 이유는 또 있다. 그리버스 찾아냈다는 오비완의 전갈을 의장에게 전하는 메신저로 아나킨을 택했다는 것. 그리고 치는 대사라는 게, '의장의 음모가 감지된다'라니. 그걸 알면서도 걜 왜 보내냐. 안 그래도 아나킨 겁나 의심하고 있던 차였으면서.

존나 너저분한 교차 편집을 선보였던 <보이지 않느 위험>과 <클론의 습격>에 비해, <시스의 복수> 중반부의 교차 편집은 그야말로 흥미가 진진. 팰퍼틴이 시스 군주임을 알아낸 아나킨의 이야기와 오비완 vs 그리버스 결전을 교차 편집해 보여주는데 재미가 없을쏘냐. 둘 다 재밌는 이야기다보니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도 별로 안 든다. <클론의 습격>은 오비완의 카미노 행성 장면에 비해 그것과 교차 편집되는 아나킨과 파드메의 연애질이 너무 질 떨어져서 별로였었지.

그러나 제다이 4인방 vs 다스 시디어스의 대결 장면은 진짜 두고두고 까일 희대의 발연출 장면이라고 본다. 배우가 실제 스턴트를 해내기엔 나이가 너무 들었었다고? 난 그것도 핑계라고 봐. 200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영화에서 그거 스턴트 더블을 못 쓴다니 그게 말이 되나.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치명타. 진짜 이 장면에서 만큼은 아나킨 연기가 제대로였어야 했다. 선과 악 사이에서 내적 갈등으로 숨막혀 하는 연기가 또렷이 드러났어야 했다고. 근데 그런 거 별로 없고 그냥 바로 흑화. 생각해보면 지는 제다이 규정 다 어겼는데 윈두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지랄한다. 하여튼 이 새끼는 내로남불 천둥벌거숭이야, 그냥. 

하지만 또 그것에 비해 무스타파에서 벌어진 오비완과 아나킨의 결투는 그야말로 명장면이다. 영화가 냉탕과 온탕 사이 마냥 존나 왔다갔다 하네. 물론, 세간의 평가와는 좀 다르게 난 이 장면에서의 광선검 액션 연출이 별로라고 생각한다. 너무 쓸데없는 동작이 많아 보여서. 거칠고 리얼한 느낌보다는 합을 잘 맞춘 현대 무용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 장면을 좋아하는 건, 액션의 동선이나 디자인 때문이 아니라 그 대결 자체어서 느껴지는 여러 감정들 때문이다. 어떤 액션 전문 감독이 말했었지, 진짜 좋은 액션은 감정을 동반한다고. 비록 실사 영화 내에선 잘 표현되지 않았었지만, 오비완과 아나킨이 서로에게 느끼는 우애와 연대감이 이 장면에서 아이러니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더 좋아진 것 같다. 그 외에도 음악과 배경 등 여러 박자가 잘 맞물려 탄생된 진짜 명장면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 무용스러운 광선검 액션 연출이 더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고.

요다가 오비완에게 말한다. 콰이곤이 영적 영생을 얻었으니 그와 접촉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노라고. 이완 맥그리거가 출연을 확정지은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에서 리암 니슨은 포스의 영으로 출연할까? 괜히 궁금해졌음.

하여튼 오리지널 트릴로지에 비해 프리퀄 트릴로지가 여러모로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오리지널 트릴로지 곳곳에 묻어있던 실재감이, CGI 그래픽으로 무분별하게 덧칠 되면서 사라진 점도 아쉽고. 그럼에도 <시스의 복수>가 나름 괜찮게 나와 마지막 방점은 그나마 잘 찍어준 것 같아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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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RPU 2020/01/04 23:31 # 답글

    다시보니 선녀같은 영화
  • CINEKOON 2020/01/06 15:53 #

    에피소드 3는 확실히 재미없기 힘든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거 다 떠나서 클론 전쟁은 막바지로 치닫지, 아나킨은 다크 사이드로 치닫지. 여러모로 연대기상의 보정을 받은 느낌.
  • IOTA옹 2020/01/13 12:51 # 답글

    좋은것도 많고 나쁜것도 많고해서 어찌되었건 영화 자체는 알찼어요.

    좋은점은 초반의 함대전과 연이어지는 액션, 다양한 행성과 오더66 등등이며

    아나킨과 오비완의 대결은 과하면서도 그래도 전성기의 시스와 제다이의 대표자들의 전투니 저정도는 되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전히 방정맞은 요다는 좀 그랬지만서도 황제와의 대결은 요다를 욕보이지 않으면서도 황제의 승리로 잘 마무리해 좋았습니다.

    나쁜점은 황제와 4천왕의 엽기적인 인형극과 틈틈이 나오던 황제님의 표정연기, 언리미띠드 빠와로 상징되는 대사(이건 장점인거 같기도 해요)등등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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