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3 02:24

러시 아워 3, 2007 대여점 (구작)


현재로써는 시리즈의 마지막 편. 이번 편 역시도 시작은 LA에서, 마무리는 타지에서. 그것도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다.

성룡과 크리스 터커는 물론이고, 은근히 작은 역할들도 배우들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상기할 만하다. 몇 년 간격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시리즈에서 그 정도해주는 건 정말이지 감지덕지지. 다만 1편에선 어린 꼬마로 나왔던 수영이 그새 컸다는 게 포인트. 당연히 배우는 달라졌다.

카터는 여전히 참 매력적이긴 한데, 존나 급한 상황에서도 농담 수준이 아니라 별 쓰잘데기 없는 말을 해대고 있으니 좀 짜증나기 시작한다. 드립으로 먹고사는 캐릭터인 것은 맞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엔 진지 했더라면 더 멋있고 좋았을 것. 그나저나 카터의 차별적인 시선 역시 여전하네. 이런 과학자들을 테러리스트로 몰고, 중국인이 프랑스어하면 자존심도 없냐고 하고. 근데 그게 영화가 생각 없어 보인다는 느낌은 아니고, 은근히 그런 부분들까지 유머로 사용한다는 느낌이 더 큼. 

엄청 오랜만에 봐서 몰랐는데, 막스 폰 시도우 나왔었네. 등장하자마자 악역의 냄새를 풀풀 풍기더니 역시 뒷꿍꿍이가 있는 양반이었어. 허나 그 존재감이나 활약은 시리즈 통틀어 역대 최악. 

그러나 이 영화엔 사나다 히로유키가 나온다! 사나다 히로유키의 간지. 원래 좋아하는 배우인데 성룡이랑 붙어서 더 매력이 사는 것 같음. 캐릭터가 유독 멋지기도 하다. 음과 양, 어둠과 빛처럼 성룡과는 형제나 다름없는 사이임에도 또 서로 범죄자와 경찰로 맞서는 사이야. 야쿠자들에게 부모를 잃은 고아 출신으로 과거 길거리를 떠돌아 다니며 삼합회에 합류한 인물. 이게 멋이 없을 수가 있냐? 그냥 대놓고 간지 뿜어낼라고 만든 악역이지, 이게. 배우가 배우인지라 일본어하는데 또 그 형제나 다름없는 성룡은 중국어 하니 뭔가 국제적인 형제스럽네. 복장도 흑과 백이고, 후반부 대결 장면 오버 더 숄더 샷에서 카메라를 트래킹하는 것으로 확인 사살. 

그런 진지한 부분들과는 별개로, 차이나타운 쿵후 도장 장면은 충공깽이다. 뭔 무법지대여. LA 경찰이 조사 좀 하겠다는데 정강이 까고 있음. 아니, 대체 왜 싸우는 거얔ㅋㅋㅋㅋㅋㅋ 경찰 둘이 기밀 수사 하러 왔는데 왜 도장 다니는 일반인들이 존나 맞서 싸우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걸 또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는 관장은 덤...

병원 액션 장면에서 카터 발차기로 바닥 쓸면서 총질하는 거 딱 90년대 바이브 뿜뿜. 정작 영화가 나온 시점은 2000년대 중후반이었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그나저나 살아남았다곤 해도 암살 당할 뻔했던 중국 대사인데, 병원에 호위병력이 아무도 없는 건 좀...

로만 폴란스키도 나오네. 그것도 얄미운 째깐둥이 프랑스 형사로. 캐릭터 존나 잘 어울린다. 미국은 폭력적이라고 일갈하는 프랑스 택시 기사. 미국은 폭력에 의존해 약한 자들만 괴롭힌다고. ......님 그 말 베트남 가서 해볼래요? 프랑스 제국의 찬란했던 식민 지배 시절... 그리고 할리 베리를 까네. 뒤질라고. 하지만 그 망언들을 죄다 택시 문짝 두 개로 퉁쳐드리겠읍니다.

이쯤되면 카터는 팜므파탈 판별기가 틀림없다. 시리즈 내내 간 보게 되는 여자들마다 죄다 음모가 있는 여자들이었어. 전세계의 경찰들이 삼합회 명부 찾으려 했어도 내내 못 찾았었는데, 카터는 그걸 한 방에 찾은 셈. 빛나는 수사력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어딜가나 껄떡대는 덕에 얻어걸린 게 태반이긴 하지만. 아, 2편 마사지 업소 장면에서 말그대로 홍콩 여자들을 '픽'했던 것처럼, 이번 3편 파리 장면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이거 꼭 또 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말 나온 김에 샤이 센 존나 웃기네. 삼합회의 다음 우두머리를 가려낼 수 있는 일종의 명부인데, 흔해 빠진 노트나 어디 디지털 파일로 써서 저장해둔 게 아니라 말그대로 통짜 문신이다. 근데 이게 그 자체로 비효율적인 동시에 그나마 배나 가슴팍처럼 좀 가릴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뒷통수에 큼지막하게 문신을 한 거라... 삼합회 리더를 선출하는 명부를 프랑스 여자 뒷통수에 박아놓은 것도 개그라면 개그. 

이 시리즈 사상 가장 센스있는 패러디의 등장. <싸이코>와 <이창>을 동시에 등장시켜 히치콕을 환기시키는 패기. 이런 센스 시리즈에는 은근히 잘 없던 건데 용케 잘 살렸네. 

카터 체술이 많이 늘은 느낌이다. 재키 찬이랑 10여년을 함께하면 역시 옆에서 보고 배우는 게 있나보다. 하긴,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나. 

전작들에 비해 여러모로 조금씩 빠지는 영화인 건 맞다. 근데 그게 갑자기 못 만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1편의 공식을 2편, 3편까지 곧이 곧대로 우려먹으며 반복하고 있으니 관객 입장에서 좀 질려버린 모양새에 가까움. 그래도 이 마지막 작품으로부터 어느새 13년 정도가 지났으니, 이 때쯤이면 시리즈 마지막으로 4편 한 번 만들어봄직 할 것 같다. 이젠 둘 다 나이 너무 많이 들어서 잘 안 되려나. 근데 어차피 이 시리즈는 리와 카터의 로맨틱 코미디잖아. 아쉽긴 하겠지만 액션 안 해도 됨. 그냥 둘이 나와서 드라이브 하며 서로의 음악적 견해로 싸우다가 춤 한 번 대판 추는 걸로 위 아더 월드 되어도 상관없다- 이 말이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20/01/13 04:46 # 답글

    이 영화를 친구랑 극장에서 본 건 기억이 납니다. 내용이 기억이 안나네요. 저는 신나게 봤는데, 친구는 좀 부족했다고 말했던 건 기억납니다. 친구랑 영화보러가서 진정으로 기억나는 건 [클로버필드]와 [미스트]였는데, 저는 완전 신나서 극장을 나오는데 친구녀석은 토할 것 같다고 화장실로 뛰어가더라고요.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저는 생각없이, 밀도의 정도도 상관없이 아무 영화나 즐겨 본다는 사실을요. 지금은 아닙니다만... 그땐 에일리언만큼 순수했어요.
  • CINEKOON 2020/01/15 18:40 #

    장르 불문하고 아무 영화나 즐겨볼 수 있다는 건 일종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말그대로 '축복'이죠.
    태생적인 것이니까요. 그건 아무리 노력해도 후천적으로는 잘 바뀌지 않더라고요.

    <미스트>를 극장에서 처음 봤던 날이 저도 떠오르네요. 조그마한 동네 극장에서 친구들과 같이 보고는 영화 끝난 뒤 화장실로 향했었는데, 옆 소변기에서 볼 일 보고 계시던 아저씨가 대체 왜 영화의 결말이 이따구인지에 대해 시벌시벌 거리시던 기억이 생생. 저는 뭐 그 결말이 좋았지만 역시 대중적인 결말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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