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영화 한 편 가지고 왜 그리 유난법석이냐 묻는다면 할 말 없다. 그냥 영화를 좋아하니까, 영화 만드는 일을 하니까 그런 것일 게다. 어쨌거나 내게 있어 이번 일주일은 정말이지 유난법석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니, 정반대지. 유난법석이 아니라 징그럽게도 우울한 한 주였다. 맞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9 -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가 조져진 것이다.
이 영화의 유일하게 좋은 점은 프로덕션 디자인, 딱 그거 하나다. 사실 좋은 수준도 아니지. 그냥 그나마 괜찮은 부분을 꼽자면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시스 유물을 찾아나서는 여정에서 주인공들이 들르게 되는 키지미 행성의 풍경이나 죽음의 별 II가 불시착한 모습 역시도 충분히 흥미롭다. 물론 파사나 행성은 타투인과 자쿠에 이어 또 사막 행성이냐-라는 불만이 생기긴 한다. 허나 전반적으로 이 세계관 곳곳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정점을 찍는 것은 역시 파이널 오더의 압도적인 위용. 스타 디스트로이어가 그토록 많이 도열해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처음 봤고, 번개를 동반한 그 압도적인 간지에 넋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근데 시발 그걸 이렇게 말아 먹네.
레이는 단순 포스 센서티브를 넘어 거의 세계관의 최강자 자리에까지 오를 정도로 강력한 포스를 부여 받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레이는 우주선을 모는 운전 실력도 수준급이며, 그녀보다 훨씬 더 오래 수련했을 것이 뻔한 카일로 렌에 맞서서도 우위를 점하는 등 광선검 실력 역시 뛰어나다. 게다가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은 편이다. 강한 것에 맞설 수 있는 용기와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까지 지녔으니, 여러모로 우월한 캐릭터다. 그래, 그걸 가지고 메리 수니 먼치킨이니 사기 캐릭터니 뭐니 하면서 이제와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시퀄 트릴로지 두 편에서도 그 모양이었으니 이제 그냥 알았다고. 근데 레이의 이런 압도적인 파워 때문에 기껏 설정한 핀과 포 캐릭터가 무너졌다. 아니, 애초에 무너질 것도 없었으니 그냥 아무 것도 없었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네. 둘은 그냥 공기이자 병풍이 된 거다. 특히 핀. 얘는 전향한 스톰트루퍼라는 역대급 설정이 붙었었던 놈인데도 결국 이리 됐다. 이번에도 다른 스톰트루퍼 출신들이랑 이야기 나누잖아. 그럼 얘가 주축이 되어 퍼스트 오더의 스톰트루퍼들 해방 운동이라도 벌였어야 하는 것 아님? 죽은 줄 알았던 팰퍼틴도 부활해 팟캐스트라도 하는 건지 뭔지 전 우주를 대상으로 방송 했대잖아. 핀 너도 퍼스트 오더 함선 방송반 들어가서 멋들어진 연설 같은 거 했으면 어떠냐? 애초 에피소드 7에서 자기 동료 트루퍼가 죽은 거 보고 그 충격에 전향한 놈 아니었어? 그럼 다른 나머지 스톰트루퍼 동료들도 구원해 줬어야지. 그럼 파이널 오더에 맞서 퍼스트 오더 역시 싸우는 것으로 꽤 괜찮은 결말이 났을텐데.
말 나온 김에. 퍼스트 오더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또 지금까지 어떻게 힘을 키웠는지 역시 의문투성이인데 여기다가 파이널 오더까지 끼얹는다. 아니, 시발 진짜 신 공화국은 대체 뭘한 거냐. 막말로 퍼스트 오더와 파이널 오더라는 별개의 군사 조직이 은하계 저 펀에서 창설되고 있었는데 아무리 비탐사 지역이었다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그리고 내가 에피소드 1의 드로이드 군대라든지 에피소드 2의 클론 군대라면 또 이해를 해. 걔네는 그냥 막 공장에서 물량 뽑으면 되는 애들이니까. 허나 시스 트루퍼들을 비롯한 파이널 오더의 군사들은 그냥 모두 시스 광신도라는 설정 아니야? 그럼 얘네가 은하계 곳곳에서 자의에 의해 지원해 모였다는 건데... 그리고 스타 디스트로이어를 그토록 많이 건조까지 했다는 건데... 이걸 어떻게 비밀리에 하냐고... 설정에 따르면 시스들의 모 행성이라 할 수 있는 엑소골은 찾아 가기도 어렵다며... 저항군 애들도 레이빨로 겨우겨우 간 곳인데 대체 이 많은 광신도 멤버들은 언제 어떻게 거기까지 갔던 거냐. 드로이드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얘네는 밥도 멕여야 하고 옷도 입혀야 하고 잠도 재워야 하니 필요했던 보급 물량이 장난 아니었을텐데... 대체 엑소골에서 어떻게... 그나저나 시스 트루퍼들은 대체 왜 디자인한 거임? 하는 일도 없는데. 장난감 팔아먹으려고 핫토이만 노났네
압도적인 스타 디스트로이어의 수. 이 정도 규모를 던져놓긴 했는데 진짜 제대로 맞붙으면 우리의 주인공들이 탈탈 털려나갈 것은 당연지사. 제작진도 이걸 느끼긴 했는지 죽음의 별 시리즈와 그 아류작인 스타킬러 베이스까지 모든 최종병기들에서 보여줬던 약점 연출을 비스무리하게 결국 가져온다. 문제는 그게 가까스로 만들어낸 변명으로 밖에 안 보인다는 것. '찾아낸 변명'이 아니라 '만들어낸 변명'의 느낌이라는 게 포인트. 그 많은 스타 디스트로이어들이 대기권 빠져나가기 위해 꼭 관제탑의 시그널이 필요하다고...? 그러니까 그 관제탑만 뽀개면 다 일망타진할 수 있다고...? 에라이 시발. 그럴 거면 그냥 <라스트 제다이> 때 홀도 제독처럼 하이퍼스페이스 자폭이나 쓰지. 중간에 이거 안 되는 이유 엄청 변명하긴 하는데 말그대로 다 변명처럼 밖에 안 들림. <라스트 제다이>에서 아예 안 나왔으면 더 좋았을 장면이긴 하지만.
그와중 랜도가 규합한 은하 시민 연대(?)의 등장. 이 장면은 분명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의 후반부 포탈 장면,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의 로한 기마대 등장 장면처럼 연출 되었어야 했다. 주인공들까지 포기한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쨘-하고 간지 터지는 팡파레와 함께 등장해 관객들 닭살을 돋구어주어야 했다고. 근데 그 박력과 쾌감 면에서 훨씬 떨어진다. 각 인물들의 모습이 잘 조명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수에 비해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한마디로 한 자리에 모인 어벤져들이나 로한 기마대가 전체 전투의 방향을 바꾸었던 것에 비해 실로 초라한 성과라는 것. 등장할 땐 뭔가 할 것처럼 굴더니 막상 전투 시작되고 팰퍼틴의 빠와 번개에 지져지니 다 요단강 건널 뻔 했음. 그 등장하는 타이밍도 지나치게 예상 가능한 타이밍이었고.
기껏 마음 굳게 먹게 했다가 바로 돌이켜버리는 쓸데없는 설정들이 너무 많다. C3PO는 영화 중반부에 자기 나름대로 꽤 큰 결심을 내린다. 시스어를 해독하기 위해 스스로의 머리를 백업없이 포맷해 밀어버리기로 한 것. 그걸로 감동을 좀 주긴 하는데, 문제는 그래놓고 영화 결말부 R2가 지니고 있었던 백업 데이터로 C3PO를 그냥 복구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럴 거면 앞에 왜 그 지랄 다 떨었던 거임, 진지하게? 그리고 츄이 죽었다는 오해. 이건 정말이지 불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냥 레이가 흑화했을 경우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넣은 것 뿐임. 아무런 맥락도 없음. 벤 솔로로 회개한 카일로 렌의 장면도 그래. 사실 제일 많이 무너진 게 이 새끼다. 캐릭터성도 좋고, 디자인도 간지나고. 무엇보다 배우의 연기도 좋았던 놈이었는데 앞에서 지가 벌인 일들에 비해 결말은 정말이지 초라했다. 갑자기 등장한 한 솔로와 이야기 몇 마디 나누고 회개? 이 장면은 그냥 감독의 느끼한 셀프 오마주처럼 느껴질 뿐.
<깨어난 포스> 시점 때까지만 하더라도 헉스는 퍼스트 오더를 대표하여 스타킬러 베이스 기동식에서 연설을 할 정도로 권력있고 자신감 역시 가득했던 인물이었다. 근데 <라스트 제다이>에서 묘하게 개그 캐릭터가 되기 시작하더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는 그야말로 창고정리 수준의 캐릭터 묘사를 보여줌. 이 놈이 퍼스트 오더 내 저항 연합 스파이였다는 사실 자체엔 불만이 없다. 그 이유가 불만인 거지. 결국 카일로 렌에 대한 찌질할 정도의 질투 때문에 그 사단을 벌인 거라고? 게다가 그 최후는...... 한과 루크를 비롯한 클래식 트릴로지의 과거 인물들을 대하는 방식도 썩 좋은 방식이 아닌데, 심지어 이 시퀄 트릴로지는 지들이 만든 신규 캐릭터들 대하는 취급도 영 꽝이다.
루머에 따르면 <깨어난 포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에이브람스는 클래식 트릴로지 뿐만 아니라 프리퀄 트릴로지까지도 언급하고 수용하는 시퀄 구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근데 루카스필름 측에서 클래식 트릴로지와의 연계성을 더 공고히 하고, 프리퀄 트릴로지 냄새는 아예 안 나게 주문 했다는 것. 그런데 이번에는 에이브람스가 실권을 더 많이 쥐어서 그런 건지, 영화 전반 곳곳에 프리퀄 트릴로지 느낌도 좀 있다. 파사나 행성에서 벌이는 스피더 추격전은 <보이지 않는 위험>의 포드 레이싱 장면을 노골적으로 떠올리게 하고, 파이널 오더의 군세는 <클론의 습격>의 클론 군대 도열 장면을, 그리고 팰퍼틴의 포스 라이트닝 무지개 반사 서비스는 <시스의 복수> 속 그것 같음. 근데 이 양반은 이미 포스 라이트닝 썼다가 무지개 반사 먹고 자기가 괴로웠던 게 벌써 두 번인데 왜 아직도 그걸 모르고...
팰퍼틴 문제가 있다. 일단 절대로 살아돌아와서는 안 될 놈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시리즈를 정말 애정하지만, 가끔은 오프닝 크롤 자막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에피소드 9가 딱 그렇다. 대체 어떻게 팰퍼틴이 살아돌아온 건지, 그 과정은 어떠한지. 이 모든 것에 일언반구가 없다. 그냥 오프닝 크롤 자막으로 설명하고 끝임. 그걸로 뭐 서스펜스나 미스테리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물론 클론 복제 기술을 사용했다는 묘사가 없진 않다. 허나 난 그것도 문제라고 보는 게, 애초 클래식 트릴로지 황제의 가장 큰 약점은 그 스스로의 자만심 아니었나? 자기 죽을 경우 생각 1도 안 했던 양반이잖아. 그랬던 양반이 보험삼아 클론 만들어뒀었다고? 참나... 하여튼 이 놈이 뜬금없이 돌아온 덕분에 클래식 트릴로지에서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했던 희생은 모두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쓸데없는 일이 되어버린 거지. 아나킨이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사람이라며. 근데 황제도 못 죽였네.
전편에서 스노크가 죽었으니 에이브람스 입장에서야 새로운 절대 악의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허나, 가만 생각해보자. 전편에서 스노크가 죽고, 카일로 렌이 퍼스트 오더의 수프림 리더가 된 것 아닌가? 그럼 그냥 또다른 절대악 생성할 것 없이 그냥 카일로 렌 vs 레이 구도로만 쌈박하게 갔어도 됐다는 말이다. 얘 어차피 성장형 악당이라며? 그럼 마지막 편에서는 성장을 끝마쳐야지. 그러니까 황제의 등장은 그냥 카일로랑 레이 커플링 하기 위해, 그리고 카일로가 알고보면 또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다-라는 시리즈의 전통을 맞추기 위해서 선택한 것 뿐인 거다. 안 그래도 쓸데없이 많은 인물들로 벅찬 시퀄 트릴로지에 팰퍼틴이라는 또다른 캐릭터 붓지 말고, 그냥 기존 애들로 진득하게 진행 시켰어도 됐을 것이다. 좀 뻔한 감이 없진 않지만, 차라리 카일로 렌이 퍼스트 오더를 이끌다 조금씩 레이에게 감화되고 그 와중 그걸 알게된 헉스 장군이 점차적으로 퍼스트 오더의 실권을 장악해나간다- 정도만 했어도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근데 그걸 안 하고 황제? 한창 싸우다가 공동의 적에 대항키 위해 연합한다-라는 설정은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도 했던 거고, 심지어 조금 이따 개봉할 <킹콩 vs 고질라>에서도 그 전개 써먹을 것 같던데. 하여튼 이 전개도 존나 클리셰인데 왜 계속 이거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네. 근데 엔딩 크레딧에서 올라오는 각본가 크리스 테리오의 이름... 이 새끼는 <배트맨 대 슈퍼맨> 말아먹었으면 된 거지, 왜 여기와서 또 이 전개 쓰는 거야. 그냥 카일로 렌을 원탑 악당 캐릭터로 밀고 갔어도 됐었잖아. 아니면 그의 변심을 눈치챈 동료 렌의 기사단 단원들이 퍼스트 오더를 육두정해서 최종보스가 되거나... 어휴 씨발.
그나저나 카일로 렌은 정말이지 근면성실한 리더다. 그 정도 권력을 쥐고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발 벗고 나서 일선에서 뛴다. 아무리 개인적 동기가 확실한 일이라 해도 그냥 스톰트루퍼 몇 놈 보내서 웨이파인더 찾아올 수도 있었던 거 아님? 얘는 지 말고는 아무도 못 믿겠나 보다.
나는 분명 <라스트 제다이>를 보며 포스카이프에 긍정 했었다. 포스의 다재다능한 활용도를 보여주어서 좋았었다고. 근데 여기 나오는 포스카이프는 한 술 더 떠서 그걸로 물질까지 소환할 수 있다는 괴상망측한 설정을 가져왔다. 이제는 벤과 레이가 포스카이프를 이용해 광선검도 전해준다니까? 그럴거면 진짜 순간이동도 하지, 시벌. 그랬더라면 무스타파에서 아나킨이 고지를 점령한 오비완에 의해 사지가 썰리는 일은 없었을텐데. 하지만 그것은 약과. 포스 힐이 제일 구리다. 물론 포스 힐이 만화나 게임 등 다른 매체에서도 나왔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실사 영화에서는 그렇게 대놓고 쓰인 적 한 번도 없었잖아. 이제는 전체 설정 이해하고프면 게임 DLC 사는 것 마냥 따로 다 보고 오라는 소리인가. 아, 진짜 짜증나네. 아니킨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살리기 위해 제다이 박살내는 걸 도왔던 인물이다. 콰이곤은 다스 몰에게 관통상 당해 죽었고. 그게 다 뭐가 되는 거냐고. 이건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레이가 팰퍼틴의 손녀인 걸 알고도 훈련시켰대, 루크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크 사이드로 넘어갈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아예 황제의 손녀인데도 가르쳐놓고는 정작 자기 조카에겐 다크 사이드 넘어갈 것 같아 잘 때 죽이려고 한 거였음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아니, 잠깐만. 레이가 팰퍼틴 손녀면.. 할머니는... 누구...?
핀은 로즈와 키스한 적 없다는 것처럼 행동한다. 아니, 로즈를 이런 식으로 줄이면 쓰나. 캐릭터 자체는 분명 구렸지만, 그래도 당당히 전작의 주역이었는데 이렇게 재고정리 느낌이라고? 근데 웃긴 게, 심지어 에이브람스는 도미닉 모나한을 기용해 저항 연합에 신 캐릭터까지 욱여넣었음. 가뜩이나 많지만 제 기능 못하는 인물들 때문에 터져나가고 있는 게 시퀄 트릴로지인데, 이 와중에 쓸데없이 또 신 캐릭터를 넣어? 이 새끼 역할 그냥 다 로즈가 했어도 1도 상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번 영화에서 일 다 꼬이게 만드는 건 항상 레이 때문임. 어린 아이들이랑 대형 마트 같은 곳 가면 순식간에 옆에서 사라져 있잖아, 애들이. 딱 그 꼴이다. 빨리 가야하는데 뭐 느꼈다고 지랄옘병 떨면서 혼자 나가더니 츄이 죽게 만들고 (다행히 진짜 죽지는 않았지만), 좀만 참으면 되는 걸 또 지 혼자 꼴리는대로 보트 타 죽음의 별 잔해로 향하고. 어휴.. 근데 <제다이의 귀환>에서 막판에 죽음의 별 그냥 시밤쾅하고 폭발해 터지지 않았었나? 이거 잔해는 어떻게 있는 거냐.
사실 가장 불만 있는 건 지금부터다. 바로 주제 의식에 대한 것. 이 영화와 <라스트 제다이>와의 충돌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결국 시퀄 트릴로지 전체의 주제 의식이었다고 본다. 나는 언제나 이 시리즈가 스카이워커 가문의 이야기에서 벗어나길 손꼽아 기다려왔다. 아직 보진 못했지만 그래서 <만달로리안>을 기대하고 있고, 또 <라스트 제다이>를 좋아했던 거다. <깨어난 포스>는 여전히 가진 자들의 잔치처럼 보였지만, <라스트 제다이>는 아니었잖나. 선택 받은 자들만이 포스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한 마음가짐과 용기만 있다면 누구든 바로 그 선택 받은 자가 될 수 있다는 역설. 포스의 민중화. 인물 스스로의 결심과 행동이 스스로를 선택 받은 자로 만들 수 있다는 그 멋진 설정. 근데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그걸 또 전면 부정해 버린다. 여전히 가진 자들만의 잔치가 된 거다. 스스로 일궈낸 용기와 노력, 연민과 친절함으로 제다이의 자리에 오른 것처럼 보였던 레이는, 결국 또 혈통주의의 피해자가 되었다. 차라리 예전 루머처럼 레이가 오비완의 숨겨진 손녀였다든지 아니면 스카이워커의 먼 친척뻘쯤 된다- 라는 설정이었으면 뻔하고 여전히 화는 났겠지만서도 그나마 좀 나았을 것 같다. 근데 뭐? 팰퍼틴? 이 양반 살아있었는지도 몰랐었는데 이제와서 손녀라네. 내참 어이가 없어서.
더불어 빡치는 게 막판 전투다. 레이가 황제를 제압하지 못했더라면, 어셈블한 저항 연합은 빠와 번개에 속수무책으로 무기력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다이의 귀환>에도 물론 비슷한 거 나오지. 근데 거기선 루크의 개입과 별개로 나머지 인물들이 워낙 제 몫을 해내잖아. 한과 레아, 츄이는 전투종족 이웍들을 앞세워 지상전에서 승리했고, 란도와 그의 팀은 죽음의 별을 폭파시키는 데에 성공했었다. 허나 이번 에피소드의 저항 연합군은 레이 없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안그래도 먼치킨인데 결국 저항 연합 전체의 생사 역시도 레이에게 달려있었던 것이다. 이럴 거면 포나 핀 같은 캐릭터들은 왜 만든 거여... 민중의 포스를 외치던 <라스트 제다이>의 패기는 어디로 가고 그냥 또 초능력자 원탑물이 나왔냐.
팰퍼틴에 의해 레이가 지져질 때, 갑자기 들리는 모든 세대 제다이들의 음성. 윈두도 있고, 요다도 있으며, 오비완도 있는 것 같다. 근데 왜 갑자기 레이한테 아는 척하고 지랄들임? 그렇게 따지면 에피소드 6에서 루크가 지져질 때나 등장해 도와주지, 좀.
아, 맞다. 황제는 스스로가 레이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길 원하지 않았음? 그럼 자신의 사악한 영혼과 포스가 레이에게 스며들어가 시스로서 영적 영생을 누릴 수 있다며. 레이는 안 죽일 거라더니 결국 죽인다. ...... 뭔 차이임? 베어 죽이지 않고 지져죽여서 상관 없는 건가. 그리고 황제야, 번개 쐈는데 무지개 반사 당해 너가 맞고 있으면 번개를 그냥 끄라고!!
레이 얘는 왜 타투인 가서 엔딩 보냐. 자기랑 1도 상관없는 행성이면서, 자쿠나 갈 것이지. 이거 그냥 <시스의 복수> 막판 엔딩이랑 라임 맞추려고 어거지 쓴 거잖아.
결국 모두가 합의한 로드맵이 없었다는 것만 증명한 꼴이 됐다. 그 호오와 완성도를 떠나 과감한 뚝심 하나만큼은 대단했던 <라스트 제다이>. 그러나 그 후속편인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그 영화를 전면 부정한다. 그래... 알겠어... 애초 큰 그림이 없었다는 것도 알겠고, 감독이 다르다는 것도 알겠으며, 억대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를 릴레이 웹툰 마냥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조차도 알겠다고. 근데 최소한 같은 시리즈면 어느 정도의 기조는 유지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이전작이 아무리 제작진 마음에 안 들었어도, 그 이야기와 주제를 전면 부정한채 모른척 하고 있는 건 시리즈로써 좀 괴상한 꼴 아니냐고.
<블레이드 러너>의 로이 배티 말마따나, 나는 90년대 후반까지 살다 이 세상을 떠난 영화 팬들이라면 믿지 못할 것들을 봐왔다. 조 존스톤의 어깨에서 불타오르는 <쥬라기 공원 3>를. 스필버그의 실수 속에서 평준화된 <인디아자 존스 4>를. 그리고 내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고 있는 스카이워커 사가의 몰락을. 그 모든 실수들은 절대 잊혀지지 않겠지. 마치 맑은 날의 내 눈물처럼. 다 조져지고야 만 것이다.
덧글
로그온티어 2020/01/13 04:40 # 답글
http://rogueontie.egloos.com/1948290
이번 루카스필름에서 만들 인디아나존스5도 기대되는걸요!
CINEKOON 2020/01/15 18:31 #
몰락이니 타락이니 타령 계속 하시면 진정한 다크 사이드를 보여드릴 겁니다
dj898 2020/01/13 10:09 # 답글
CINEKOON 2020/01/15 18:31 #
IOTA옹 2020/01/13 11:47 # 답글
어쭙잖은 시도로 기존 스타워즈 물 멕이는것도 모자라
말씀하신대로 새로 탄생한 좋아질수 있었던 신규 캐릭터들도 제대로 못 다루고 개판쳐놨네요.
7편이 캐릭터 외엔 새로울게 하나없는 무성의한 구성이라 실망하면서도 후속편에대한 기대를 품었는데 중간에서 라제가 말아먹곤 결국은 요따위 결말이로군요.
여러모로 경이롭습니다.
CINEKOON 2020/01/15 18:34 #
혁명을 일으킨 영화이긴 한데 그게 너무 과격하고 파격적이었잖아요. 그 혁명 자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그 과정이 너무 많이 덜컹거렸기에, 거기에 실망한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아니예요.
하지만 <라스트 제다이>의 호오와는 논외로 이번 마지막 편은 심했어요.
제작사가 애초 청사진이랍시고 그려놓은 게 없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지들이 만들어놓은 신규 캐릭터들에게조차도 별다른 애정과 관심이 없다는 것만 알게 되었어요.
지금 버전의 각본은 그냥 팬픽 수준 정도라고 밖에 안 보입니다. 팰퍼틴을 복귀시킨 게 전체 시리즈를 말아먹는 가장 큰 문제인데, 영화 시작하자마자 자막으로 팰퍼틴 소환시켜내잖아요! 그것도 클론 기술로 살려낸 건지 아니면 그냥 우주 강령술인지 조차 설명도 안 하고... 이쯤 되면 영화 시작하자마자 글러먹은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