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 당시 부족한 완성도 때문에 재촬영을 진행했던 영화라는 이슈가 있었다. 그걸 알고 봐서 그랬던 건지 뭔지 영화 보는내내 뭔가 만들다 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만들다가 포기한 듯한 영화라는 느낌이 계속 들더라.
가족 영화로써 오프닝은 나쁜 편이 아니다. 재미나고 따스한 화풍의 꽤 잘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프롤로그를 치고 가는 영화인데, 거기까지는 그래도 잘 따라갈만 하다. 주인공인 두리틀이 겪고 있는 내적 갈등과 현 상황도 대충 뭔지 알겠고. 다만 이후부터 이야기가 너무 많이 편리하게 진행된다. 어린 주인공이자 훗날 두리틀의 수제자가 되는 토미가 영화 상에서 먼저 등장하게 되는데, 이 친구가 두리틀을 만나게 되는 그 과정 자체가 너무 편의적이다. 마지못해 따라나선 사냥에서 실수로 다람쥐를 쏴 다치게 했는데, 그 근처에 두리틀의 앵무새인 폴리가 있었고 또 두리틀의 집 역시 무척이나 가까웠다는 점.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이야기가 개연성 없이 과격하게 진행된다는 인상이다. 더 웃긴 건 레이디 로즈의 등장. 아내를 잃고 칩거 중인 우리의 주인공 두리틀을 저택 밖으로 끌어내는 설정이 필요했을 거라는 것은 안다. 그리고 그걸 영국 여왕이 아파서 두리틀을 찾는다-라고 퉁치는 것도 좋다. 허나 분명히 토미는 굳게 잠긴 두리틀의 저택 문 앞에서 서성이다 폴리의 도움으로 비밀통로를 발견해 들어왔다. 그럼 레이디 로즈 문은 누가 열어준 건데? 그리고, 명색이 영국 여왕의 명을 전하는 특사이고 정황상 최소 귀족 최대 왕족인 것 같은데 그렇게 혈혈단신으로 혼자 거기까지 온다고? 어린 아이들을 주 타겟으로 삼은 영화라고 해서 그런 개연성이나 묘사들까지 싸그리 다 무시해도 된다는 건 아니잖나.
허나 어린 관객들을 노린 영화다보니 악당들의 음모라든지 그 캐릭터들이 단순화 되어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영역이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악당 캐릭터와 그가 꾸미는 음모가 복잡해봤자 별로 좋을 것 없으니. 마이클 쉰이 혼자 발악하듯 연기하는 주 악당과, 짐 브로드밴트가 나름 묵직하게 받쳐주고 있는 최종 흑막까지 배우들의 연기 덕에 그 단순함과 전형성이 충분히 상쇄되고 있는 느낌. 아, 중간 보스로 나오는 안토니오 반데라스도 괜찮다. 오랜만에 봐서 더 좋았고. 하지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좀 문제라고 본다. 일단 연기를 못하지는 않는다, 결코. 허나 컨셉을 좀 잘 못 잡은 듯한 느낌이 난다. 목소리를 너무 괴이하게 설정한 듯. 여러 CGI 동물 캐릭터들이 나오는 영화이다 보니 여러 배우들이 성우로서 그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주고 있는데, 정작 인간 주인공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목소리가 제일 더빙스럽다. 왜 이렇게 힘을 빼고 속삭이듯 연기하지? 동물들과 말이 통하고 수의사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그런 설정을 했던 걸까 싶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목소리가 괴이하게만 느껴지다보니 이게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싶어진다.
보는내내 재촬영 이슈가 계속 떠오르는 이유. 중간 중간에 컷이 몇 개 비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든다. 심지어는 씬 단위로도 몇 개 비어있는 인상. 가뜩이나 전개가 빠른 편인데, 거기에 몇 개 컷들까지 없으니 정말이지 영화를 대충 만들었다는 느낌만 계속 듦. 예를 들면 그거. 영화 중반부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연기하는 독재자 라술리 왕의 왕국에 침투하는 시퀀스가 있는데, 일반적인 영화라면 차근차근 보여주었을 것을 영화는 대뜸 침투 작전의 중간부터 보여주고 그 빈자리를 쓸데없어 보이는 내레이션으로 때운다. 그 장면 보고 있으면 '아, 대충 이쯤에서 재촬영 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달까. 사실 그 장면 뿐만도 아니고, 이후 두리틀이 머드플라이의 군사들에게 포위당했다는 묘사도 나오지 않아서 좀 급작스럽고.
이건 좀 다른 소리인데, 여기 나오는 동물 캐릭터들. 다 나쁘지 않다. 대단한 기술력으로 꽤 잘 구현되어 있기도 하고. 허나 목소리 캐스팅에서 약간 사기 당했다 느껴지는 게, 마리옹 꼬띠아르가 목소리 연기했다길래 기대했었는데 정말로 대사 한 마디인가 두 마디 한다. 이럴 거면 왜 그리 홍보 때린 거야? 하긴... 이 정도 배우가 성우로서 참여했는데 또 아예 안 쓰기는 좀 그렇고.
전형적인데다 뻔하다. 타겟층이 타겟층이다 보니 성인 관객으로서 보기에 다소 유치하게도 느껴지고. 그러나 진짜 단점은 상술했던 것처럼 중간 중간 급하게 봉한 듯한 느낌의 장면들이 많아 영화가 전체적으로 만들다 만 것처럼 보인다는 거. 아무리 돈이 아까웠어도 그렇지, 재촬영할 거면 제대로 끝까지 하던가 대체 이게 뭐냐,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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