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5 19:09

나쁜 녀석들 2, 2003 대여점 (구작)


전작으로부터 약 8년 만에 돌아온 속편. 흥행으로 꽤 성공한 영화의 속편 치고는 제작 타이밍이 살짝 느린 편이었는데, 그 사이 감독으로서 출세한 마이클 베이는 <더 록>과 <아마겟돈>, <진주만>까지 세 편의 영화를 연달아 연출했다. 그 중 좋아하는 영화는 <더 록>뿐이지만, 8년의 시간동안 이 영화까지 합치면 그 사이 영화를 총 네 편이나 만들었으니 대단하다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동시대 또다른 버디무비였던 <러시 아워>가 아시안 배우와 흑인 배우를 투탑으로 기용하며 그 시대 PC함을 줄줄 흘렸던 것처럼, 따지고보면 <나쁜 녀석들>은 20세기 끝자락의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였다. 흑인 관객을 주 타겟으로 흑인 주인공을 설정했던 영화들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셈. 이번 2편에서는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로써의 정체성을 더 부각 시키는데, 영화 초반부 나오는 KKK단 집회 습격 장면이 대표적인 예. KKK단의 고깔모자 유니폼 입고 있다가 집회 한 가운데에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토록 무모할 수 있나 싶다가도 또 이게 말이 되는 설정인가 싶어져 갸우뚱하게 됨. 물론 이후 스파이크 리는 자신의 영화에서 KKK단에 잠입한 흑인 형사 이야기를 다른 식으로 해내지만. 엄밀히 따지면 직접 잠입한 건 아니었잖아

상술했듯 1편 이후 8년 만에 나온 영화이고, 그 사이 마이클 베이는 여러 영화들을 통해 할리우드 주류 감독으로서 당당히 성공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1편에 비해 이번 2편은 감독으로서의 마이클 베이가 훨씬 더 많이 드러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전작과 이후 작품들의 성공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은 재량권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야 분명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오렌지 톤으로 키 컬러를 맞춘 색보정이나 전체적인 총격전 교착 상태를 담아내는 방식, 자동차 추격전에서의 카메라 움직임까지도 모두 마이클 베이의 그것. 심지어 드레드 머리를 한 흑인 갱스터들이 도로를 가르며 활개치는 모습은 <트랜스포머 3>에서 드레드 머리를 했던 검은 디셉티콘 일당들의 모습과 직접적으로 겹치고, 검은 벤을 추격하는 큰 트럭의 모습은 <트랜스포머>의 아이언 하이드와 옵티머스 프라임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아, 특유의 시그니쳐가 또 있다. 중반부 한 집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주인공 둘이 악당들과 맞서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카메라가 360도 빙글빙글 돌면서 그 두 무리의 모습을 담아 내거든, 좀 정신 없게. 근데 그 똑같은 무빙이 <트랜스포머>에도 있다. 거기선 아마 주인공측 해커 무리와 디셉티콘의 프렌지가 벽 하나를 두고 교착 상태에 빠진 장면이었을 걸? 다시 찾아보면 완전 빼박일 것. 하여튼 이 영화 부분 부분 잘라다가 <트랜스포머> 시리즈 곳곳에 붙여놔도 이음새가 아주 매끄러울 것 같다. 거의 한 시리즈처럼 보일 지경. 심지어 음악도 비슷하다. 쉴새없고 의미없이 쏟아지는 섹드립도 그렇고.

섹드립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영화가 가진 괴상한 유머 감각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일단 마이클 베이 영화이니 여성 캐릭터들을 단순 눈요깃거리로만 쓰는 것도 많이 나오는데, 그 밖에도 영화가 좀 도덕적으로 위험한 수준의 유머들을 많이 구사하는 느낌이다. 중반부에 두 주인공이 시체 안치소에 몰래 들어가 정보를 캐내는 장면이 있는데,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여러 시체들이 줄줄이 나온다. 문제는 그 시체들을 전시하고 또 사용하는 방식. 여기서 불쾌함의 정점을 찍는다. 장르 영화에서 유혈이 낭자하고 피와 살점이 튀기는 건 때에 따라 괜찮은 일이다. 오히려 쾌감을 동반하는 좋은 방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얄팍한 수로 쓰면 곤란하지. 끊임없이 죽은 시체들의 인격을 존중하라고 지들끼리 말은 하는데, 그럼에도 이어지는 장면들이라는 게... 큰 가슴을 가진 여성의 시체를 노골적으로 카메라에 담는 방식이라거나, 그저 일회성 상황 코미디를 위해 죽은 남자의 머리 뚜껑을 열어버리는 장면이나... 아니, 이건 현실적으로도 말이 안 되잖아. 대체 어떤 사인으로 죽은 시체이길래 통조림 따듯이 머리를 딴 거냐고. 한니발 렉터가 마이애미 들렀던 게 아닐까? 영안실에 왜 이런 시체가 있는 거냐고. 

불쾌한 건 또 있다. 후반부에 쿠바로 출장 가는 장면도 나오는데, 거기서 주인공들이 악당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자동차로 빈민가를 그냥 싹 다 밀어버리며 탈출한다. 물론 영화가 나름 변명을 하기는 한다. 이 동네에서 마약을 만든다고. 근데 그렇다고 그렇게 싸그리 밀어버리면 되냐? 빨래한 옷가지들 걸려있고 누가 봐도 누군가의 삶의 터전들처럼 보이는데 그냥 거기를 싹 다 밀어버린다. 폭파 시키며 내려온다. 그러면서 별로 일말의 가책도 안 느낌. 농담조로라도 미안하다 말하는 장면 없이, 그냥 신나서 소리 냅다 지르며 쾅쾅하고 내려옴. 이쯤 되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다, 그냥.

말 나온 김에, 쿠바 장면이 꼭 필요했을까 싶음. 어차피 주인공들은 마이애미 마약반 소속인데 굳이 시드를 인질잡이 삼는 스토리로 쿠바까지 가야 했을까. 마약반 애들인에 왜 인질 상황까지 직접 해결하려 하냐고. 여동생이 잡혀갔으면 경찰이여도 법 체계 그 딴 거 다 무시해도 된다는 건가.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경찰 버디 무비에서 영화는 갑자기 국경을 넘나드는 첩보 액션물스럽게 변모한다. 그 와중 으리으리한 의리남들과의 도원결의는 덤. 손가락 오그라들어 죽는 줄 알았네. 근데 여자 하나 구하겠다고 쿠바에서 땅굴 파는 거 이게 말이 됨? 한시가 급해 죽겠는데 지금 굴파고 있을 때야?

그 밖에도 일회성 상황을 위해 억지로 갖다붙인 장면들이 속출한다. <극한직업>에서 마약반 막내가 마약 먹고 개 됐던 것처럼, 마커스가 본의 아니게 엑스터시 먹고 좆되는 상황이 있는데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해 한 게 마이크가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도 마약이 든 봉투 던진 거임. 

마커스의 딸과 데이트 하기 위해 찾아온 남자 아이를 문 앞에 세워두고 다 큰 어른 둘이 놀리고 괴롭히는 장면. 옛날에 어려서 봤을 때는 나름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 다 커서 다시 보니 어째 께름칙하다. 딸의 첫 데이트 상대 데리고 짓궂게 놀리는 거야 저 쪽 문화이니 그러려니 싶은데, 거기다 총구까지 겨누고 할 건 아니지 않나. 열다섯살이라던데 다 큰 30대 어른 둘이서 그거 하고 있는 거 보니 좀 한심하기도 하고. 

액션 장면도 좋은지 모르겠다. 고속도로 추격 장면의 스케일이 대단하긴 하지만, 내가 워낙 마이클 베이의 스타일을 싫어해서. 그다지 쾌감도 없는 것 같음. 그나마 이 영화에서 웃겼던 건 마이클 셰넌이 등장하는 타이밍. 나오는 거 진짜 1도 몰랐는데 방심하던 타이밍에 갑자기 나와 개터졌네.

어릴 때는 분명 괜찮은 영화였던 것 같은데, 다시 보니 어째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 이번에 나오는 3편 갑자기 기대가 안 되네. 이 일을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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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D U MISS ME ? : 나쁜 녀석들 3 - 포에버 2020-01-16 12:4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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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티어 2020/01/15 20:21 # 답글

    사람들이 뻔히 살던 마을 비탈길을 가로지르며... 집도 부수고 터전도 부수고, 마지막 저택까지 터지는 광경을 보며 즐거움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옆면에 집을 잃은 아이가 엉엉 울고 분명 부서진 벽에 깔려 죽은 가장도 있었을 겁니다. 피해는 감수하지 않는 미국에 분노를 느꼈을 자식들과 가족들이 생각났어요, 그들은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복수의 칼날을 다듬고 있을 겁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또 즐거워져요. 말했듯이, 이건 염소피같은 영화에요. 겉으로는 청교도적 사상으로 무장하고 존엄성을 외치는 사람들도 내면에는 방탕해지고픈 내면이 있죠. 예를 들어, 종교 사상으로는 분노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람에게는 누구나 분노가 있어요. 그래서 퍼니셔가 만들어진 거겠죠. 과격한 분노를 전가할 대상을 만들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살풀이하듯 분노를 사그러뜨리는 거에요.

    그렇게 가상에다가 한을 풀고 다시 청결한 자신으로 돌아오는 거죠. 미국 영화에 유독 방탕한 작품들이 많은 이유는 종교와 길티플래져 구조를 미디어 산업이 잘 이용해먹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문제인가?" 지금은 이런 질문을 해보며 회의하는 시기고요. 이 시점에서, [나쁜녀석들3]의 방향성이 주목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닥치고 난 90년대로 가겠다"라는 사람들을 포용할 것이냐, 아니면 현대 트렌드에 맞춰서 끼워넣겠다... 인데, 어느쪽이든 경감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날에 있어서 추억팔이는 단순하지만 위험한 겁니다.

    인류는 회의를 통해 진화했기 때문에, 그 시절에 회의해보지 않은 것이 오늘날 회의되고 있는 부분이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특유의 방향성과 완성도를 지녀도, 오늘날에 있어서는 퇴보나 퇴행으로 불릴 수 있는 작품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글이 또 길어졌습니다만; 이쪽으로 생각하게 되는 게 많아서 쓰는 글입니다. 요즘은 이야기를 쓰다보니 이런 사람들은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않고, 성찰이 없이 그냥 밀고 나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또 밀고 나가는 게 인상을 주는 부분도 있어서, 펜을 놓고 회의하는 부분도 많이 있어서요. 제 취향 아시다시피, 저는 차분하게 하나하나 문제점을 짚어나가는 영화도 좋아하지만, 아예 다짜고짜 밀고 나가는 것도 좋아해서요.
  • CINEKOON 2020/01/16 02:41 #

    그런 걸 길티 플레져라고 할 수 있겠죠?

    3편 보고 왔는데, 로그온티어 님이 제시해주신 그 두 가지 길의 딱 중간즈음인 것 같네요. 영화 자체는 괜찮았습니다, 다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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