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7 16:05

페리스의 해방, 1986 대여점 (구작)


감히 청춘 영화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한 작품. 근데 이후 나온 본격 청춘 영화들에게만 레퍼런스가 된 것은 꼭 아니고, <스파이더맨 - 홈커밍>이나 <데드풀> 같은 타 장르 영화들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니 여러모로 그냥 대단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데드풀> 언급이 나와서 말인데, 그 영화나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처럼 제 4의 벽을 깬 메타 영화로써 그 시도가 대단한 작품이다. 애초 4의 벽을 깬다는 게 연극계에서나 만화계에서는 빈번한 상황이었지만, 당시 영화계에서는 좀 당혹스러울 수 있을만한 컨셉이었으니. 근데 이 영화는 그걸 대단히 잘 해냈다. 사실 어린 고등학생 주인공이 꾀병 부려 학교 땡땡이 치고 놀러 나간다는 내용 설명이 다인 단순한 영화인데, 여러 실험적인 연출들을 많이 선보이며 신선한 작품이 된 경우.

아마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거들먹거리는 설정이 아니었다면, 주인공은 그냥 존나 일방적인 얌생이 미친놈처럼 밖에 안 보였을 것이다. 막말로 되먹지 않은 새끼인 건 맞지. 꾀병 부리고 학교 땡땡이친 거야 누구나 어린 시절 한 번쯤은 해볼만한 경험이니 괜찮은데, 데이트 핑계로 절친의 엄한 아버지가 아끼고 또 아끼는 페라리 스포츠카를 징집하는 건... 이거 진짜 미친 새끼 아니야, 이거? 그래놓고 친구가 성내니까 적반하장으로 '너 왜 이리 예민하니' 시전. 이런 새끼가 절친이라니, 카메론 그 새끼도 어지간히 복 없다. 근데 영화 결말부에 둘이 화해하고 페리스 뷸러가 괜찮은 놈처럼 끝나 더 짜증남.

별 거 아닌 내용과 설정을 별 거 있는 연출로 불려낸 존 휴즈가 대단하다. 앞서 말한 메타 발언도 그렇지만, 영화 내내 전반적으로 만화적 감수성이 깔려있다. 카메라 패닝 한 번에 배우의 위치나 상황을 바꾸는 코미디 같은 것도 좋음. 결말부 주인공이 집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은 진짜 별 거 아닌데도 그 자체로 쾌감 쩔고. 그 와중에 교장이 새끼는 미친놈 아니야, 이거? 미친자들이 너무 많은 영화

그런 거 있지 않나. 어린 시절에는 몰라도 되었던 것들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인생의 무게로 변모한다는 것. 어릴 때는 알 필요도 없었던 전세나 월세의 개념이나 그냥 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자동차의 월 평균 관리비. 마냥 낭만적인 것인 줄로만 알았던 결혼식이 돈 드는 하나의 큰 프로젝트라는 것. 그 밖에도 세금, 관리비, 인간 관계 등등. 어릴 땐 별 거 아니었거나 아예 몰랐던 것들이, 어른이 되면 모두 크게 느껴지게 되는 거. 이런 건 다들 알잖아.

근데 완전히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릴 때는 엄청 크게 느껴졌는데, 점점 어른이 될 수록 작아지는 것들. 사실 이건 구체적인 예시로 들만한 게 없다. 그냥 그런 거 있잖아. 학교 한 번 안 가면 죽는 줄 알았고, 수능 한 번 망치면 인생이 완전 망가져 돌이킬 수 없게 될 줄 알았으며, 당시 사귀던 이성과 헤어질 땐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잖아. 근데 이상하게도,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 모든 것들이 살짝 가벼워진다. 그것들이 진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런 일들을 받아들였을 때의 마음가짐이나 리액션이 좀 달라지잖아. '뭐, 그럴 수도 있지' 정도의 마인드로. 딱 그 생각 나더라, 영화 보면서. 저 때는 저 모든 게 세상 끝날 일인데, 어른 되어서 보면 별 것 아닌. 어른이 된다는 건, 점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일인 것만 같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20/01/17 18:49 # 답글

    [페리스의 읠상]에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말하는 부분은, 관심가져주길 바라는 아이들의 심리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어요. 페리스의 입장에서는, 영화 밖 관객은 자신의 일상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니까요.

    만화적 설정은 자신의 인생을 특별하고 극적으로 여기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여기는 청소년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게 아닐까요. 그때는 진실되게 자신의 인생만을 바라보고 있었을 시점이니까요. 언급하신대로 그때는 크게 느꼈지만 지금은 크게 느끼지 않는 이유는, 살면서 자신이 주인공이 아님을 깨닫기 때문임은 아닐까. 어느 순간 삶은 극적이지 않음을 이해하고 점층적으로 건조하면서도 무던하게 살게 되는.
  • CINEKOON 2020/01/30 00:52 #

    그럼 데드풀 씨는 대체 언제까지 사춘기에 머물러 있는 거......
  • 로그온티어 2020/01/30 01:45 #

    그 분은 사춘기가 아닌 정신질환 환자로 분류해야. (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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