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8 16:02

컨테이젼, 2011 대여점 (구작)


중국 우한 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가 전세계를 뒤덮고 있는 이 시국에 다시 볼만한 영화는 사실 아니다. 요즘 같은 때에 이 영화를 본다는 건 비행기에서 <플라이트 93> 보는 거고 유람선 위에서 <타이타닉> 보는 꼴이니......


열려라, 스포 천국!


포스터 메인에 떡하니 박혀있는 기네스 펠트로의 이름. 허나 정작 영화는 시작한지 채 10분도 안 되어 기네스 펠트로에게 사망을 선고한다. 그것도 민낯의 얼굴로. 나중엔 뚝배기도 열어본다 이 뿐만이 아니다. 초장부터 살생부로 스포일러 대차게 하는 느낌이긴 한데, 중후반부엔 케이트 윈슬렛도 사망함. 아니, 좀 양보해서 케이트 윈슬렛이야 자기 몫 할 거 다 하고 후반부에 죽었으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기네스 펠트로는 너무한 거 아니냐고. 영화 시작한지 진짜 10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말야.

바로 거기서 스티브 소더버그가 이 영화를 대배우들로 꾹꾹 눌러담은 이유가 드러난다. 어차피 이 영화는 강력한 전염성을 띈 전염병에 대한 영화이다. 굉장히 건조하고 다큐적인 연출 방식으로 진행되는 영화이다보니 죽는 인물들도 여럿 나올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도 스티브 소더버그는 그 모든 인물들을 죄다 유명 배우들로 캐스팅했다. 그게 왜 효과적이냐면... 생각해보자. 기네스 펠트로 역할을 이름모를 무명배우가 연기했다고. 물론 그녀가 죽을 땐 여전히 안타깝겠지. 하지만 기네스 펠트로가 죽는 모습만큼이나 충격적이지는 못할 것이다. 대개의 관객들은 기네스 펠트로가 영화 시작 10분 만에 죽을 거라곤 꿈도 못 꾸니까.

스티브 소더버그는 그걸 알았다. 스크린에 등장한지 채 얼마 되지 않은 인물이 죽는 것보다, 스크린에 오래도록 등장해 곳곳을 누비던 인물이 죽는 것. 관객은 당연히 후자에서 더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근데 영화 시작 10분 만에 죽여야 하는데 후자를 택할 순 없잖아? 그럴 때 그 인물의 역할에 바로 스타가 필요한 것이다. 일반적인 다른 배우였다면 이렇게 죽는 것이 이토록 안타깝진 않았으리라. 허나 맷 데이먼이 연기한 주인공에게 그녀는 어엿한 아내고, 또 중요한 인물이다. 그것을 관객에게 일순간 주입 시키는 데에 이런 스타 캐스팅을 쓴 것. 꽤 괜찮은 효과를 끌어냈다고 본다.

이런 스타 멀티 캐스팅에 대한 것은 스티브 소더버그 감독의 인장과도 같은 것이니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 외 영화는 굉장히 냉정하고 건조하다. 마치 다큐멘터리만 감독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극 영화 찍은 느낌. 많은 인물들이 등장 하지만 감정이입은 최소한으로만 되어 있고, 여러 시점들이 맞물리지만 차분히 조율해낸 편집의 리듬 덕택에 크게 헷갈릴 염려가 없다. 

워낙 다큐적인 면모를 띈 영화이다보니 묘하게 르포적인 속성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전염병의 이동경로를 카메라 포착만으로 이리 콤팩트하고 생경하게 담을 수 있다니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본격 손씻기 권장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도 이 영화 다시 보고 손 또 씻었음. 전세계를 난리법석으로 뒤집었던 이 바이러스가 과일 갉아먹던 박쥐에서 시작되어 돼지를 거쳐 악수로 피날레를 찍는 꼴을 보아하니 어째 작금의 사태를 일견 예언한 것처럼 보여 신통방통하기도 하고. 아니지, 신통방통 때려맞춘 게 아니라 이 감염루트가 그만큼 바이러스 퍼지기에 효과적이라는 거잖아? 뒷걸음질 치다 개구리 잡은 격이 아니라 이게 가장 유력하고 확신적인 루트였다는 걸 이토록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게 더 무섭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20/01/28 20:08 # 답글

    제 생각에, [컨테이젼]은 극적 연출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던 당시 소더버그 감독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던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보통의 헐리웃 시스템 대로 갔다면 [컨테이젼]은 면역 증상 가진 주인공이 전 세계를 구원하고 가족도 구하는 영화가 되었을 거에요. 중요한 고증은 다 빼먹고 오로지 극 하나에 몰두하는 감동드라마가 되었을 거란 말입니다. 허나 [컨테이젼]은 그러지 않았어요. 팩트로 무장해, 질병에 대한 경각심을 맹렬하게 드러내죠. 그 점이 가장 기특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영화는 필요했다고 봐요.

    제게 [컨테이젼]은 참 이상한 영화였어요. 멀리서 보는 시점은 아닌데, 멀리서 보게 되거든요. CDC 수뇌부, CDC 요원, 시민, 블로거(황색 언론) 등의 각 개인의 입장을 분리해내고, 각자의 입장에 집중하고 공감하도록 만들었어요. 이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때로는 시민 입장에서 두려워하다가, CDC 입장에서 전염병 연구를 하다가, 수뇌부 입장에서 정치적인 문제에 봉착해서 골머리를 썩게 됩니다. 마치 여러 사람에게 빙의되어 왔다갔다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산만할 것 같은데 전혀 산만하지 않아요. 오히려 관점을 오가다가 큰 그림이 조금씩 잡혀가는 게 보여요. 전염병 하나가 인류를 어떻게 뒤흔드는 지에 대한 과정이 보이는 겁니다. 그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경각심은 일으키되, 경각심에 대한 불안을 누구에게 투영하는 짓은 하지 않는 정확한 판단능력은 덤이고요.
  • CINEKOON 2020/01/30 00:53 #

    아마 이 작품 전후를 기점으로 지금의 소더버그 스타일이 완성된 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로건 럭키> 같은 장르물도 있었지만, 그 중간 중간에는 <높이 나는 새>처럼 <컨테이젼>에 좀 더 가까운 작품들도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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