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9 21:02

헤일, 시저!, 2016 대여점 (구작)


옛 할리우드 전성기의 영화판을 다루는 영화인데, 그래서 그런 건지 어째 별의 별 장르 구색들을 다 갖춰놓은 신기한 영화. 그리고 종국엔, 영화 그 자체에 대한 헌사로 전체 서사를 끝맺음하는 영화. 쓰잘데기 없는 것들로 꽤 그럴 듯한 이야기 펼쳐나가는 말빨이 누가 코엔 형제 아니랄까 봐.

간단히 요약하면 영화 촬영 중 납치된 대배우를 되찾기 위해 해당 스튜디오의 총괄 프로듀서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그게 웃긴다. 아무리 이야기가 가벼워도 나름 납치극인 건데, 그걸 해결하는 게 형사나 탐정도 아니고 그냥 영화 총괄 프로듀서야. 근데 그 프로듀서 얼굴이 또 조쉬 브롤린이야. 이런 쓰벌.

그러니까 그런 게 웃긴 거다. 형사도 아니고 탐정도 아닌데, 영화 총괄 프로듀서에게서 범죄 소탕가의 냄새가 난다는 것. 당시 영화판을 다루는 만큼 이야기 내내 서부극과 뮤지컬, 정극과 수중 발레 영화 등 갖가지 장르들이 언급 되지만 어째 주인공인 프로듀서에게서도 느와르 장르의 냄새가 난다. 명패만 보면 영화 촬영 조율할 것 같은데 실질적으로 보면 그냥 이 동네 해결사처럼 보이는 게 개그. 또, 조지 클루니가 연기하는 대배우. 그를 납치한 게 공산주의자들이고 영화상 이는 분명 실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일인데 어째 그조차도 영화 속 영화처럼 보인다. 그리고 바로 이쯤에서 부터, 영화가 스크린 바깥 현실로 흘러 넘치기 시작한다. 뮤지컬에서 느와르로, 또 소련의 잠수함이 수면 위로 웅장하게 올라오는 장면에선 <007> 시리즈 같은 액션 활극이 되고. 아, 그런 의미에서 대배우를 납치한 악당들이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이었다는 게 재밌다. 시나리오 작가들의 복수라고 하니까 그게 더 웃김. 왠지 타란티노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일 것 같은데.

모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의 일에 대해서 만큼은 제대로 결정 내리지 못하는 주인공. 그는 자신의 눈앞에 닥친 이직을 고심하고, 끊기로 아내와 약속했던 담배를 피울까 말까 고민한다. 허나 결국 후반부에 그의 결정이 선명해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게 또 영화의 주제와 직결된다. 맞다. <헤일, 시저!>는 영화판을 배경으로 영화인들을 장기말 삼아, 영화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부르짖는 영화인 것이다. 이건 영화를 옳은 길로 생각하는 이들의 영화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같이 서로 다른 이념, 신부와 랍비 만큼이나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 예술계 딴따라 보다 엘리트주의인 항공계가 일하기에 더 좋을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으로써의 영화를 꿈꾸는 영화가 바로 <헤일, 시저!>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영화로써, 영화적 마법의 순간들을 재현하려는 시도들이 너무나 멋지게 느껴졌다. 이렇게 긴 시간들을 할애해 서부극과 수중 발레 뮤지컬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다니. 코엔 형제는 정말이지 영화를 너무 사랑해.

제일 재밌는 대사가 하나 있었다. 별 거 아니긴 한데. '저절로 해결되네.' 이거 존나 웃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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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D U MISS ME ? : 번 애프터 리딩, 2008 2020-10-10 18:12:49 #

    ... 코엔 형제가 희대의 달변가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별 거 없는 이런 상황 속으로 별 볼 일 없는 이런 인물들을 끌어 들이며 능수능란한 솜씨로 이 이야기를 매듭짓는 꼴을 ... more

  • DID U MISS ME ? : 맹크 2020-12-21 17:17:44 #

    ... 미롭다. 그러니까 영화는 잘 만든 영화라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랑은 맞지 않았다. 좋은 영화인 건 알겠는데, 이 영화를 사랑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lt;헤일, 시저!&gt;를 통해 코엔 형제가 그랬고, &lt;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gt;를 통해 타란티노가 그랬듯이 핀처는 &lt;맹크&gt;를 통해 과거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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