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9 21:18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 2013 대여점 (구작)


누누이 말해왔지만, 존 리 행콕은 꽤 뛰어난 연출자다. 그의 영화들 중 별로인 영화 개인적으로는 없다고 본다. 비교적 최근작인 <파운더>와 <하이웨이 맨>도 괜찮은 영화지만, 그럼에도 난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를 그 영화들 보다 더 좋아한다. 

그의 영화들이 내내 그래왔듯, 이 영화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 유명한 '메리 포핀스'의 원작자 트래버스 부인이, 그녀가 창조한 캐릭터를 눈독들이는 월트 디즈니와 벌이는 기 싸움. 양대 두 거물이 펼치는 신랄한 신경전. 하지만 영화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사실 트래버스와 디즈니가 대립각을 세우는 것보다, 영화는 과거 트래버스의 어린 시절과 현재의 그녀. 이 둘 사이의 관계에 더 초점을 맞춘다. 존 리 행콕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결국 스필버그가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이야기 했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바로 작가주의라는 개념. 작가가 살아온 삶과 그 경험이, 작품을 만드는 데에 큰 자양분이 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작가주의. 그래서 그 작가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작품을 이해하기가 더 쉽다-라고 말하는 작가주의. <레디 플레이어 원> 속 게임의 룰도 그렇지 않은가. 가상 세계 오아시스를 만든 창립자 제임스 할리데이의 개인적 삶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그 게임은 풀기 쉬워지는 구조였다.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도 마찬가지의 노선을 취한다. 대체 메리 포핀스는 누구인가. 깐깐한 그녀의 규칙은 모두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그녀가 찾아온 뱅크스 가족의 사람들은 모두 어떤 사람들인가. 그 중에서도 아이들의 아버지인 뱅크스 씨는 대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존 리 행콕은 그 모든 답을 원작자인 트래버스의 과거 삶 속에서 찾아 건져내었다.

그러하다 보니 상술했듯 영화는 트래버스의 어린 시절 호주 생활과 현재의 로스엔젤레스를 교차편집하며 진행된다. 그런데 이 어린 시절 호주 생활이 썩 유쾌한 기억이 아니었던 거거든. 때문에 메리 포핀스와 미키 마우스가 등장하는 영화임에도, 이야기의 전반에 우울한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탁 막힌 과거의 호주 생활에 트래버스 부인은 가난도 겪었고 알콜 중독 아버지의 기행도 보았으며 어머니의 자살 시도, 종국에는 사랑하던 아버지의 죽음도 보았다. 그런 전개를 보여주려니 영화가 우울하다면 우울할 수 밖에. 허나 밝고 따스한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이미지를 통해 그 우울함이 영화적으로는 꽤 상쇄되는 편.

마치 메리 포핀스 그 자체인 것처럼 보이는 엠마 톰슨의 깐깐한 연기도 좋고, 힘을 쫙 뺀듯 보이는 톰 행크스의 번듯한 연기도 좋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폴 지아마티와 콜린 파렐. 개인적으로 폴 지아마티는 좋아하는 배우라 여기서 따스하게 나온 점이 좋고, 콜린 파렐은 특유의 괴랄하고 싸이코적인 면모가 가정적인 모습과 결부되어 이상하게 피어오르는 것 같아 또 좋아함. 하여튼 그 밖에도 연기 구멍이 크게 없는 영화다.

이 영화 처음 봤던 게 대략 2015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거의 5년 만에 본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몇 장면들은 아직까지도 뇌리에 박혀 있더라. 그만큼 정서적으로 큰 울림을 주는 장면들이 많고 자칫 헐거워질 수 있는 각자의 이야기들을 연출로 잘 여며냈다는 점에서 참 괜찮은 작품. 존 리 행콕의 차기작이 더 궁금해진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20/01/30 16:51 # 답글

    드라마영화는 대체로 스킵하는 경향이 있고, 디즈니도 수가 뻔하니까 디즈니 관련 영화면 수가 더 뻔해서 내가 보다 졸겠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정확히는 편견이죠. 이 영화도 그런 저의 편견에 의해 스킵했던 영화인데, (트레일러도 안 봤어요) 리뷰 보면서 슬쩍 호기심이 드네요.
  • CINEKOON 2020/02/06 22:53 #

    취향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 영화 역시 보시다가 졸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좋은 영화인 건 맞다고 생각합니다. 기회 되면 한 번 보세요. 더 재밌게 보려면 <메리 포핀스>와 <메리 포핀스 리턴즈>를 보신 뒤 연달아 이 작품까지 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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