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BT 멜로 영화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예술과 그 뮤즈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화가와 모델로 만난 두 여자가,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게 되는 이야기. 그래, 좋다 이거야. 당당히 내 장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멜로 드라마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퀴어 영화도 좋아하는 거 많아. <캐롤>이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정말이지 대단한 작품들이었다고 생각 하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내게 잘 와닿지 않았다. 일단 리듬감부터가 엉망이라고 할까.
두 여자가 서로를 만나,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며 깊은 관계로 나아간다-는 이야기. 그럼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두 캐릭터의 설정이 탄탄해야 하고, 그 둘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흐름의 묘사를 제대로 해내야만 한다. 바로 그 점에서 영화가 실망스럽다. 내가 너무 전형적인 상업 영화 감성에 지나치게 길들여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둘의 만남에서 피어오르는 감정들이 시나브로스럽지가 않게 묘사 되어 있다. 서로에게 조금씩 조금씩 젖어들어가야 뒷부분에서 서로 물고 빨 때 그게 더 절절히 와닿고 이해 가능해지는 것인데, 둘의 관계를 스크린 밖에서 지켜본 관객 입장에서는 조금 갑작스럽다 느낄 정도로 묘사가 허술하게만 보인다. 둘이 함께 했던 요 몇 번의 산책 동안 서로를 깊숙히 느끼게끔 하는 순간이 뭐 별로 없었잖아. 물론 심신이 아프고 피로한 상태에서는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 그 상대에게 더 마음이 가는 법임을 알고 있다. 그치만 어쨌거나 이건 영화고, 특히나 인물들의 감정선이 착실히 쌓여야만 성립가능한 멜로 드라마라는 장르의 궤적 안에서 정작 그걸 너무 대충 그린 거 아닌가- 싶어진다는 거지.
결과론적으로는 리듬감이 엉키는 것으로 그 모든 문제들이 귀결된다. 런닝타임 2시간짜리 영화인데, 둘의 감정은 별 거 없어보였다가 중후반부 들어 갑자기 타오른다. 그러더니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별을 맞이하게 되고. 한 편의 영화로써 배분이 좀 잘못 되어 있는 것만 같다는 인상.
이건 좀 딴 이야기인데, 영화가 하나의 거대한 브이 로그처럼 보이는 것도 좀 있더라. 모든 영화들이 꼭 거창하고 교과서적인 전개를 띄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화면상의 대부분이 집 안에 그냥 누워 있거나, 서로 다 벗고 누워있거나, 서로를 보며 그림 그리거나, 십자수 하거나, 밥을 먹거나. 이런 게 태반이다. 그러다보니 가뜩이나 리듬감이 엉망인 영화에서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나' 싶어지기까지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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