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4 14:18

언컷 젬스 극장전 (신작)


다들 <언컷 젬스>를 돌려막기 카드깡 같은 상황에 대한 영화라고 말한다. 자기 욕심에 상황이 좆같이 꼬이게 된 한 인간의 이야기라고 말이다. 물론 나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 딱 한 가지 사소한 무언가를 첨가하고 싶다. 그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 그 인간의 욕심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인간의 천성이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언컷 스포!


아담 샌들러가 연기한 주인공 '하워드'는 그야말로 좆같은 상황에 빠졌다. 아내와는 이혼하게 생겼지, 숨겨뒀던 정부와의 관계마저 금이 가기 시작하지, 그저께 빌린 돈 때문에 그저께의 빚쟁이들한테 시달리지, 그 그저께 빌린 돈 갚으려고 어제 빌린 돈 때문에 어제의 빚쟁이들한테 시달리지, 심지어 빚쟁이들 중 하나는 또 자기 가족이야. 하여튼 빚쟁이들 때문에 그는 딸의 학예회 날에 발가벗겨진채로 자동차 트렁크에 갇히는 신세도 되어보고, 인생역전 한 방 꿈꾸며 공들여 구했던 오팔 원석 때문에 이리 끌려 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는 신세도 되어본다. 그야말로 좆같이 꼬여서 환장할 것 같은 상황.

문제는 내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의 그런 상황이 그의 그런 천성 때문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일단 하워드는 너무 유아기적인 인물이다. 아내와 슬하에 아들 딸 다 두고 키우면서도 또 사랑받고 싶어 정부를 둔 것이 그렇고, 제 아무리 돈이 급해도 그렇지 가족한테 돈을 빌린 것 역시 그러하며, 시종일관 눈에 뻔히 보이는 권모술수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도 그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들여 구해온 희귀 오팔을 그저 자랑하고 싶어 꺼내 여기저기 허세 부리는 게 제일 아기처럼 보임. 처음에 나는 그게 무슨 대단한 작전의 일환인 줄로만 알았다. 잘 나가는 농구 선수에게 비싼 값에 팔아먹으려고 오팔 자랑하는 건 줄 알았다 이 말이야. 근데 막상 그 농구 선수가 사려고 하니까 안 팔려고 하대? 그것 역시 더 비싼 값 받아먹으려는 수작인 줄 알았으나 또 아니었어. 경매에 내놓기로 이미 약속한 품목이었다며!

그럼에도 굳이 이해해보자면, 아주 무계획이었던 것은 또 아니었다. 애초 운동 선수들이란 징크스 등을 비롯한 미신에 약한 존재이니 그 오팔을 마지못해 주는 척하며 건네고 그로인해 그 농구 선수가 경기에서 엄청난 실적을 달성한다면, 하워드는 스포츠 도박을 통해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빌려주었던 오팔이야 다시 돌려 받으면 되고. 뭐, 하여튼 대략 이런 계획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문제는 이 계획도 엄청나게 영적인 계획이라는 것이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계획이 아니라, 그야말로 그냥 영적이고 기적적인 확률의 계획. 그 오팔 받았다고 해서 그 농구 선수가 꼭 그 날 경기에서 엄청난 실력을 뽐낼 것이라는 보장이 없잖나. 이거야말로 완전 미신으로 조달된 계획이잖아. 주인공이 유대인이라 그런 건 아닐까? 하여튼 말 안 돼.

어쨌거나 하워드는 굉장히 유아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은 싫은 척, 힘든 척, 고단한 척 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인생의 스릴을 즐기는 타입이었다고 본다. 그게 바로 그를 이런 상황에 몰아넣은 천성인 것이다. 그는 인생이 좆 같다고 울고, 더 이상 못하겠다며 포기하려 하지만, 사실 그는 이 모든 스릴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는 게 이 영화의 결말부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빚을 갚기엔 충분했던 돈. 그런데 그 돈을 빚쟁이들 바로 앞에서 빼돌려 빅 게임에 배팅 하고야 만다. 장담하건대 그는 그 이후에도 계속 그 같은 짓 반복하며 끝끝내 빚 안 갚았을 것이다. 물론 죽지 않고 살았더라면 말이다. 그게 천성이라는 또다른 증거는 그 아들. 물론 선천적인 것이 아닌 후천적인 것으로 아버지를 보고 배운 탓일 수도 있지만, 하워드의 아들 역시 어려서 부터 돈 내기에 집착하는 묘사가 눈에 띈다. 이 정도면 그냥 유전이다. 

사프디 형제의 영화들은 항상 화이트 트래시를 다루어 왔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같은 유색인종들을 범죄의 온상으로 그리는 대신, 그들의 영화들에는 항상 백인 하류층이 범죄자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이번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처음에는 의구심이 좀 들었지. 주인공이 유대인이라는 설정인데, 우리가 유대인들에게 흔히 갖고 있는 선입견들을 더 고착화시키는 묘사가 많아서. 예를 들면 그런 거 있잖나. '유대인들은 돈에 환장하는 돈 귀신들이다'라는. 정치적 올바름의 파도가 여기저기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이러한 시기에, 사프디 형제는 오히려 유대인들에 대한 그러한 편견을 더욱 더 고착화 시키는 스탠스를 취한다. 그래서 처음엔 좀 의문이었어. 아무리 감독들부터가 유대인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대놓고 묘사해도 괜찮은가- 하고. 설령 그게 진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하여튼 정치적 올바름의 시선으로만 보자면야 유대인들을 다소 비호감으로 묘사한 게 문제다. 허나 길티 플레져처럼 이야기하면, 그 시점들에서 파생되는 유머들이 좀 재미있었다. 그런 거 있다. 영화 중반, 하워드와 그의 장인 어른이 돈 관계로 묶이게 된다. 사위가 장인에게 돈 빌린 상황이라 이거지. 근데 보통의 한국적 감성이라면, 장인 어른이 사위에게 그 돈 안 받거나 할 걸? 허나 이 영화에서는 다 받아냄. 심지어 돈 이야기할 때 장인 어른이 더 엄해짐. 이런 부분들에서 묘하게 키득거리게 되는 것이 분명 있다.

아담 샌들러는 근 몇 년 동안의 아쉬운 행보를 바로 되갚아주는 참된 채무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 정도면 <펀치 드렁크 러브>보다 더 높게 커리어 하이를 찍은 것 같다. 그리고 사프디 형제. 하여간 당신네들은 '불안함'이라는 감정 그 자체를 영화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야. 보는내내 불안하고 또 괴로웠다. 근데 촬영이나 편집이 워낙 리드미컬하고 쫀쫀해서, 2시간 15분의 런닝타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음. 결론. 넷플릭스야, 요즘 오리지널 영화 타율이 나쁘지 않고 아주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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