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7 19:37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극장전 (신작)


영화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들은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 놀란의 <덩케르크>, 그리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였던 <위쳐>. 셋 다 이야기를 선형적인 구성이 아닌 비선형적 구성으로 풀어내 플롯을 뒤섞었던 작품들이다. 물론 그 작품들에 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플롯이 엄청 복잡하게 뒤섞여있는 건 아니다. 다 보고나서 찬찬히 뜯어보면 어느 정도 시간 구성에 따라 줄거리 퍼즐을 맞추는 데에 큰 무리가 없을 거라서. 하여튼 상술했던 세 작품들 중 가장 비슷한 건 아무래도 <펄프 픽션>일 거다. 범죄 스릴러라는 공통점도 있고, 타란티노 특유의 챕터 구성과도 비슷한 면모가 있으니. 


스포일러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그런데 웃긴 게, 결국 이 영화와 제일 비슷한 건 정작 다른 영화가 아니라 <무한도전>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였다는 점. 대여섯 사람들이 모여 돈가방을 놓고 서로에게 득달같이 달려든다는 점도 그렇고, 이야기의 시작이 대중목욕탕 사물함에서 시작된다는 점도 그러함. 물론 그런 몇가지 점들 빼면 더 이상의 공통점은 없다고 봐도 무방 하겠지만, 그럼에도 시나리오 쓴 사람이 글 쓸 당시에 <무한도전> 재밌게 보던 차였을 것 같다. 일본 소설 원작이라는데 뭔 소리 하는 거야

챕터 구성과 뒤섞인 비선형적 플롯 구성을 왜 했을까-를 따져보게 된다. 선형적인 구성을 취했더라면 지금의 키치한 재미가 반감 되었을 수도 있고, 너무 전형적인 느낌이라 지루했을 수도 있다. 그래, 그건 그렇다치자. 근데 왜 하필 영화의 첫 장면으로는 그 장면이 간택된 걸까? 실제 이야기의 순서로는 그 장면이 거의 후반부잖아. 딱 그 장면을 영화의 오프닝으로 삼은 이유가 있었던 걸까? 왜 영화상으로 돈가방의 첫 주인이, 하필 배성우가 연기한 중만이었을까?

왜 돈가방의 첫 주인이 배성우의 중만이었나-를 추리해보려면, 결국 이 돈가방의 마지막 주인이 누구였나-를 되짚어봐야한다. 영화가 제시한 순서대로만 따지면, 돈가방의 첫 주인은 배성우의 중만이었고, 돈가방의 마지막 주인은 진경의 영선이었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해 서로 얽히고 설키는 이 영화에서, 이 둘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 둘을 제외한 나머지 캐릭터들은 모두 장르의 중심에 놓여져 있는 사람들이다. 아내를 수시로 때리는 가정폭력범,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의 죽음을 사주한 아내, 달려드는 것들은 다 이용해 죽여버리고 새 삶을 찾으려 했던 팜므파탈, 다른 호구 하나 잡아 인생 뒤집으려 했던 또다른 호구와 그를 따르는 붕어, 수사하다가 요단강 건너버리는 형사, 뜯긴 돈 받을 수만 있다면 사람 하나 죽이는 것쯤 가벼이 여기는 두목까지. 웬만해선 각자 장르 영화 한 편씩은 꾸려나갈 수 있는 캐릭터들이라 이 말이다. 허나 중만과 영선은? 그 둘은 모두 장르 영화의 저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누구나 욕심 낼 만한 상황에서 역시나 욕심 내긴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그냥 평범한 사람들. 등록금 내줄 딸이 있고 부양할 어머니가 있는 사람들. 거짓말이 다소 어색하지만, 주어진 자리에서 맡은 바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사람들. 그러니까, 영화를 보려고 극장에 앉아있는 '우리들'이 바로 돈가방의 첫 주인이자 마지막 주인이었다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이 비선형적 이야기 구성은 지금과 달랐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 외에, 장르적으로는 깔끔하게 잘 빠진 영화다. 어디 하나 크게 모난 곳 없고, 이런 영화에서 으레 기대할 법한 장면들이 줄을 잇는다. 영화의 후반부 뒷심이 딸린다는 게 다소 간에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래도 이 정도 퀄리티로 만들었으면 중간 이상은 가는 거지. 아, 그래도 최종본에서는 삭제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거 하나. 윤여정이 연기한 중만의 어머니, 그녀의 마지막 대사는 아예 없애거나 좀 줄이는 게 나았을 것. 지금 버전은 아무리 봐도 좀 교조적이다.

덧글

  • 살벌한 눈의여왕 2020/02/27 22:11 # 답글

    타란티노 우리나라 식당도 합니다 뉴욕에서 ㅎㅎ

    뜨거운 영혼의 우리랑 잘맞는 미국인
  • CINEKOON 2020/03/03 19:02 #

    한식 식당 운영 한다더니 그게 진짜였나봐요?
  • 살벌한 눈의여왕 2020/03/03 19:32 #

    네ㅋㅋ 주방장은 한국분이시구요..
    룸 이름이 해녀던데요.
    일부러 펄프픽션도 한국에서 최초개봉.
    마스크맨 보고 웃는모습에 감동했다 합니다.
    그냥 화끈한 정서가 잘맞나봐요
  • 로그온티어 2020/02/28 00:57 # 답글

    읽다보니, 꽤 독특한 테이스트가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악인들이 치고받는 내용인 피카레스크물이 허무주의적 성향으로 빠지곤 하는데, 이건 그나마 희망적인 결말인 셈이잖아요.

    이 영화 아직 안 봐서 이게 좋은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듣기로는, 피카레스크 세계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게 아닌가. 물론 이런 이야기는 2번 이야기하면 질리겠지만요. 하필 정우성 나오고 [아수라]처럼 피카레스크 느낌이라 인간불신적인 내용이려니 하고 상황을 두고 보고 있었는데, (그런 영화 의외로 별로 안 좋아함) 의외네요.
  • CINEKOON 2020/03/03 19:03 #

    피카레스크물로써는 허무주의 결말 맞는 것 같아요. 그 쌩고생들 하고도 그들 중 승자는 없었으니... 결말은 그냥 어부지리 + 허무주의 느낌? 근데 애초 어부지리라는 사자성어 자체가 어부를 제외한 인물들에겐 다 허무주의적 결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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