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7 19:57

릴로 & 스티치, 2002 대여점 (구작)


개봉 당시 포스터를 다시 보니, 디즈니 측에서 끗발나게 밀어주려 했던 게 어지간히도 보이는 신 캐릭터다. 그동안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작품들에서도 폭력적인 캐릭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스티치는 여러모로 이질적인 존재였지. 일단 외계인이잖아. 그동안 디즈니가 외계문화에 선을 긋고 있었던 것 역시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동물이나 인간 위주의 캐릭터 시장에서 '귀여운 외계인'으로 어필해보려 했던 게 특이함. 그리고 이 놈이 귀여운 건 맞는데, 어쨌거나 폭력적이라는 것도 포인트. 그냥 막연하게 세계정복 우주정복을 외치는 캐릭터가 아니라, 파괴를 목적으로 만든 진짜배기 생체병기 출신이라는 것도 디즈니치고는 좀 괴랄한 느낌이다.

근데 어쨌거나 결론은 디즈니 캐릭터잖아? 캐릭터를 소개하며 이것저것 닥치던대로 부수고 빠개던 초반부를 지나면, 결국 디즈니 특유의 귀여운 사고뭉치 캐릭터 정도로 그 레벨이 격하된다. 이 놈 엄청 위험한 우주급 대재앙 아니었어? 그래서 버려진 소행성에 유배 보내려 했던 거 아니었냐고. 근데 그런 애 잡으려고 전범 과학자랑 지구 전문가 딸랑 둘을 보내냐? 그랬던 놈이 지구에 떨어졌는데 그게 하필 운 좋게도 하와이였네? 알로하를 외치는 하와이? 같은 미국이지만 제 51구역 같은 곳으로 떨어졌거나 러시아 군사 기지로 드랍했으면 그 땐 그냥 탈 디즈니 전개 되는 건데. <아이언 자이언트>를 보면 된다

외계에서 온 신비의 존재와, 지구에 살던 외로운 꼬맹이의 만남. 영화는 결국 <E.T>의 또다른 변주다. 허나 위에서 이야기했듯, 공간적 배경을 달리하는 것 하나만으로 영화가 색다른 풍미를 풍긴다. 맞다. 하와이라는 지역적 배경의 존재감이 이상하게 버무려진 영화다. 사실 냉철하게 따지면 배경이 꼭 하와이일 필요는 없었지. 그러나 배경을 굳이 하와이로 설정함으로써, 여러가지 특색있는 지역 볼거리를 많이 연계해 넣었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게 전부인 각본인 거임. 생체병기 외계괴수가 뉴욕에 떨어지는 것과 하와이에 떨어지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후에 독자적인 TV 시리즈가 런칭될 정도로 꽤 성공적인 영화였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여러 한계들도 같이 갖고 있는 영화였다. 애들용인 거 아는데, 일단 런닝타임이 너무 짧아. 런닝타임이 짧으니 나름 이야기를 우주에서 시작한 탈 지구급 스케일임에도 전개가 휘몰아치다 모든 사건과 갈등이 휘뚜루마뚜루 후루룩 챱챱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아무리 애들 영화라지만 막판에 줌바와 프리클리가 그런 식으로 스티치랑 엮인다고? 걔네 둘은 얘 잡으러 온 애들 아니야? 왜 갑자기 감화되어서 한 편 먹고 도와주는 건데? 디즈니 애니매이션에서 이런 걸 따지고 있다니... 굳이 그 부분 아니여도 이상한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님.

그렇지만 그런 거 다 따져서 뭐하겠어. 릴로는 귀엽고 스티치는 더 귀여운데. 그런 말 있지. '귀여운 게 제일 세다'고. 사실 그건 존나 맞는 말이다. 스티치 귀여운데 뭘 더 바라. 나도 디즈니 랜드 갔을 때 스티치 모자 사서 쓰고 다녔었음. 역시 귀여운 게 최고야. 

덧글

  • 로그온티어 2020/02/28 01:12 # 답글

    어렸을 때. [릴로 앤 스티치]를 비디오로 빌려다 보고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나중에 TV애니메이션 나오자, (아마도 디즈니 만화동산이던가) 그것도 꽤나 재밌게 봤던 걸로 기억해요. 말하자면, 극장판은 캐릭터극을 짜기 위한 프로토타입 같은 느낌입니다. 캐릭터 설정과 배경적 매력을 확실히 어필하는 방향으로 짜고, 본격적으로 가지고 노는 건 TV애니메이션이 아니었나... 왜냐하면 스케일은 작지만 캐릭터 가지고 노는 풍부한 맛이 있는 건 TV애니메이션이 적격이니까요. 스타워즈 프리퀄 트릴로지와 애니메이션의 차이라고 해야 할 까요?

    한편으로, 제 기억에, 이때부터 디즈니가 다른 방향성에 관심을 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착한 녀석들의 이야기에서 나쁘지만 괜찮은 녀석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거죠. 당시에도, 이 애니메이션은 골치아픈 장난꾸러기들을 한번은 꾸짖지만 위로하는 영화구나,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평범한 것에도 지나치게 과격하게 반응하는 캐릭터가 주는 슈르한 개그 스타일은 덤이고요. 근데 기억을 되새겨보면, TV애니메이션판에서의 스티지는 극장판보다 더 성질이 너프된 감이 있습니다. 릴로에게 의존적이고, 사고는 치지만, "우주 야수"(...)의 과격한 점이 온전히 사라졌달까. 그냥 이상한 말 하는 외계인의 껍데기를 벗으면 그 안에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장난꾸러기 꼬마가 있는 것 같달까.

    그것이, "외형은 중요하지 않다"라는 주제에 걸맞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행동이 난폭하고 외형이 달라도, 그 안의 마음이 있음은 다르지 않다는 거죠. 그렇게 변호를 한다 해도, 스티치의 개성이 희석되어 작품의 매력도 조금 사라지는 느낌이다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 CINEKOON 2020/03/03 19:02 #

    아,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 이 새끼들, 그냥 TV 시리즈 찍어내고 싶은데 그냥 하면 잘 안 될 것 같으니 극장판 먼저 때리는 건가-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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