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8 02:02

하이, 젝시 극장전 (신작)


아담 드바인이 나오는 영화, 그것도 극장에서 개봉한 신작은 내 다시는 보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그랬었지만, 결국 공짜 영화 티켓이 생겨서 보고야 말았다. 아, 아담 드바인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느낌이고, 외모나 목소리도 나름 귀여워서 나쁘지 않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이 배우의 나쁜 점은 작품 선구안이 정말이지 거지 같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남성기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정도. 거짓말 안 하고 출연하는 영화들마다 바지 한 번 이상씩은 벗는 것 같다

하여튼 작품 선구안이 매우 나쁜 배우인데그런 작품들 밖에 안 들어오는 거겠지만서도, 이번 영화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인상이다. 물론 코미디로써는 제 값을 못하는 편에 가깝다. 빵 터지는 장면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막나가는 인공지능 스마트폰이라는 설정을 코미디에 이용하는 방식도 딱 예상 가능한 수준이었음. 정작 영화가 빛을 조금이라도 발하는 건, 웃기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이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써 그냥저냥 볼만하고, 무엇보다 그 주제의식에서 선방한다. 알아, 안다고. 스마트폰을 비롯한 '기술에 경도되어 정작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는 엄청 뻔하지. 주제도 뻔하고, 전개도 뻔하고. 그럼에도 어찌되었든 코미디 장르 영화 내에서 이 정도면 잘 풀어낸 편이라고 본다. 진짜 인생에 뛰어드시기 전에, 스마트폰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류의 교훈을 주는 영화랄까.

주인공 남자를 연기한 아담 드바인의 캐릭터는 매력 없지만, 대신 그 상대 역인 알렉산드라 쉽의 매력이 충만.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인상이었는데, 알고보니 <엑스맨> 프리퀄 시리즈의 스톰 역이었어, 시발. 그 영화에선 흰머리 휘날리며 애처롭게 번개 쏘느라 그 매력을 잘 몰랐었는데, 확실히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확 꾸미고 나오니 인상이 달라진다. 그러나 배우로써 매력있다는 거지, 캐릭터에 공감하기는 힘듦. 이 캐릭터는 좀 말이 안 되는 게, 현 남친 앞에서 전 남친 만났는데 전 남친에게 철벽치기는 커녕 엄청 동조한다. 전 남친이 자꾸 같이 남미 가자고 말하는데, 여기에 버럭한 현 남친에게 기껏 한다는 말이, '아직 갈지 말지 결정 안 했어'? 이게 미쳤나. 설령 혹 했어도 절대 안 갈 거라고 말해야지, 그 상황에서 현 남친한데 아직 갈지 말지 결정 안 했다고? 그래놓고 현 남친이 헤어지자고 말하니까 개정색 빤다고? 이게 진짜 미쳤나.

젝시의 캐릭터는 생각보다 그저 그렇다. 막말 쩌는 버전의 시리 정도를 생각하고 매만진 것 같은데, 상술했듯 코미디로써는 다 예측가능한 부분으로 실패. 그러나 영화가 한 발짝 좀 더 나아갔다고 보는 게, 진행하다보니 그냥 코미디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을 연상케 할 정도의 묘사를 하기 때문.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젝시가 인류 멸망 프로젝트에 시동을 거는 정도는 아니지만, 인공지능 주제에 사랑에 빠져 한 남자에게 죽일듯한 집착을 한다는 점에서 뭔가 좀 무섭다. 하다 하다 주인공 남자랑 섹스를 원하는 스마트폰 인공지능이라니. 그것도 충전기 포트를 뺐다 켰다 하는 걸로! 어쩌면 이 영화의 제작진은 <터미네이터>를 경유해 <그녀>까지 오마주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뻔한 영화고, 코미디로써 제 기능은 못하는 영화다. 그러나 아담 드바인의 다른 망작들과는 다르게, 최소한 뭔가 흥미로운 지점들을 연결해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을 것. 그러거나 말거나 남들에게 추천하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한 영화.

뱀발 - <앤트맨> 시리즈에 이어 마이클 페냐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나온다. 이 양반 진짜로 샌프란시스코 사는 건가?

덧글

  • 로그온티어 2020/02/28 02:21 # 답글

    트레일러보고 그 싼맛에 관심을 가졌는데, 국내개봉을 했군요... 의외... 그나저나 얀데레 인공지능이라니요. 일본에서나 나오고 통했을 소재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니. 아아니. 그전에 [로맨틱 컴퓨터]가 있었구나... 생각난 김에 [로맨틱 컴퓨터] 이야기를 좀 하자면, 솔직히 [로맨틱 컴퓨터]는 그 시절의 유치함의 정수들이 꼭꼭 눌러담겨져 있는 영화에요.

    어차피 안 보실 거니까 내용 유출을 좀 하자면, 84년에 나온 영화인데 이 영화의 결말은 이후에 많은 영화들이 차용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을 포기하고 전산망으로 사라지는가 싶더니 전산망 속에서 자유를 찾는 인공지능의 해탈이 그려져 있는데, 그게 공각기동대 스럽고 론머맨 (여긴 인공지능이 아니지만 결말의 의도는 비슷하니까) 스러운 결말이라... 이 작품도 그럴까 생각들었습니다만, 전개보니까 그렇게 되면 [할로윈]의 결말스러워 지네요. (...)

    "그것은 어디에나 있고, 당신을 노릴 지 모른다" 라는 식의 결말;; 한편으로 여성 인공지능 캐릭터가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계도 이미 쇼단(SHODAN), 글라도스가 인공지능 계의 스타(...)로 대두된 상황인데, 둘 다 여성 목소리를 가졌고, 히스테리컬하고 사악한 인공지능 캐릭터들이죠. 이번에도 그렇고, 예외는 11대 닥터 (스카이넷) 정도?
  • 로그온티어 2020/02/28 02:27 #

    추가로 씁니다만, 갑자기 [시스템쇼크3]를 존카펜터가 플레이하는 영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게임은 카펜터 옹 살아계실 적에 꼭 나와야 할 텐데... 그럼 영감을 받고 신작 호러영화 만들어줄지도 모르잖아요! 카펜터 옹이 전에 플레이한 [프레이]나 [데드스페이스]는 좀 애매한 감이 있지만 [시스템쇼크] 시리즈는 저급 호러 테이스트 밑에 시사하는 바가 많으니까, [데드 스페이스]가 WS앤더슨 느낌의 비주얼호러라면 [시스템쇼크]는 좀 더 내밀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존 카펜터의 영화 느낌과 비슷한거죠.

    압니다. 네다씹스러운 뜬금포 언급이지만;; 그래도 요즘 새로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라 들떠 있는 건 어쩔 수가 없군요. 저는 인공지능 이야기를 좋아하거든요. 블로그에다가는 또 인공지능 얘기냐 하지만, 이상하게 저는 거기에 매료되곤 했으니까요.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아마 근미래에 나도 인공지능에 대한 작품을 하나 쓰지 않을까. 하드 SF 수준의 내용을 가미해서요.
  • CINEKOON 2020/03/03 19:01 #

    <매트릭스>도 그렇고 <터미네이터>도 그렇고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는 끝 없이 나오네요. 그만큼 만인의 관심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나저나 카펜터 옹은 요즘 영화 찍으시나요? 그냥 음악계로 넘어가신 것 같던데.
  • . 2020/03/01 04:32 # 삭제 답글

    이 배우 출연작 중 더 파이널 걸스란 영화가 꽤 괜찮습니다. 조연으로 나와서 그런가봐요.(분량 적음)
  • CINEKOON 2020/03/03 19:00 #

    저도 그 영화 봤습니다. 슬래셔 호러 장르 전체에 거대한 농담을 던지는 메타 장르라 제가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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