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선에 도전하는 국회의원 주인공이, 갑자기 어느 날부터 거짓말을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 그냥 거짓말을 못한다는 게 아니라, 진짜로 거짓말이 입 밖으로 안 나온다는 전개다. 건너서 주워 듣기로는 브라질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버전이라고 하던데, 암만 봐도 이거 그냥 짐 캐리의 <라이어 라이어> 아님?
까놓고 말해 <라이어 라이어>와 설정이 비슷한 건 괜찮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뭐 <라이어 라이어>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한 번쯤은 누구나 해볼만한 상상 아님? 물론 그 상상을 실제 영화와 이야기로 짜내는 건 다른 이야기지만. 어쨌거나 표절이니 뭐니하며 그 유사성까지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다. 허나, 그런 유사성 논란을 빼고 봐도 결국 <라이어 라이어>와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것일 것.
<라이어 라이어> 봐도 알겠지만, '거짓말을 못하게 된 거짓말쟁이'의 이야기는 기실 배우의 연기력이 관건이다. 이런 이야기하면 또 이런 말 나올지도 모르지. '어느 영화는 안 그런가?' 그럴 땐 그냥 <라이어 라이어> 보면 된다. 이미 본 영화라고? 그럼 다시 보면 된다. 그 영화 속 짐 캐리는 그야말로 진기명기거든. '거짓말을 못하게 된 거짓말쟁이' 이야기에는 애초에 CG나 특수효과가 들어갈 구석이 없다. 그냥 배우가 다 해내야 한다. 원치 않았던 말이나 몸 동작이 밖으로 표현 되면서 오는 당혹감을 배우가 혼자 다 해내야 한다고. 그리고 짐 캐리는 그걸 필요 이상으로 너무 잘 해내버렸다. <라이어 라이어> 보다 보면 배우 연기가 CG처럼 느껴질 데가 한 두군데가 아니니.
그 점에서, 라미란이 연기를 못 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라미란의 존재는 분명히 영화에 환하고 따스한 기운을 가져다 준다. 한국에서 동급의 여성 배우들 중 이런 역할을 찰떡같이 소화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영화 외적으로 이미 화통한 맏언니 이미지가 있어서 더더욱 그런 것 같음. 하여튼 배우 스스로의 이미지에도 잘 맞고, 코미디 연기를 나름 부드럽게 소화해내는 편.
허나 그렇다 치더라도 라미란과 짐 캐리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크다. 짐 캐리의 연기는 상대 배우의 리액션이 돋보이지도, 돋보일수도 없는 연기였다. 그냥 짐 캐리가 혼자 다 쌈 싸먹어버렸던 거다. 그러나 라미란의 연기에서는 상대 배우의 리액션이 더 크게 작용한다. 배우 본인이 웃긴 느낌이라기 보다, 그걸 어떻게든 살리려는 상대 배우들의 안간힘이 좀 더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하여튼 좀 더 쉽게 말하면, 코미디 연기를 못하는 건 아닌데 코미디 부분들보다 그냥 일반적인 정극 연기하는 순간들에서 더 빛을 발하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겠네.
감상 쓸랬더니 줄창 <라이어 라이어>하고만 비교하고 앉아있었네. 그럼에도 영화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기본기는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안정적이지만 뻔하고, 뻔하지만 또 안정적인 화술이라고 해야할까. 이야기 자체가 힘있게 굴러간다-라는 느낌은 없지만, 밟을 곳 착실하게 밟아가며 진행되는 느낌. 그러나 후반부 전개는 너무 나이브 했던 것 같다. 제아무리 코미디 영화라고는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런 반전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게다가 그 반전의 이유가, 그냥 알파벳 철자를 헷갈렸기 때문이라고? 내 진짜 염병천병.
감독이 <부라더> 만든 사람이던데, 사실 그 영화도 딱 이 정도 느낌이었다. 나쁘진 않은데 좋지도 않은. 코미디 영화로써 발랄하긴 한데 그렇다고 또 웃기지는 않은. 이제는 어느 정도 한 방이 필요한 시점 아닌가 싶다.
덧글
로그온티어 2020/02/28 02:33 # 답글
그러니까 실은 현실... 국회의원을 몰래 따라했던 거라면 정말 웃기잖아요.
CINEKOON 2020/03/03 18: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