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집 토토로>에 와서야, 하야오는 이전 작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천공의 성 라퓨타> 때보다는 뭔가 조금 달라진 인상이다. 이전의 두 작품들이 지구의 운명과 인류의 존속을 논하는 묵시록이거나 사멸한 고대 문명을 찾아 그것이 악당들의 손에 의해 잘못 사용될 것을 막는 등 뭔가 좀 비장하고 무거운 톤의 이야기들이었다면, <이웃집 토토로>는 제목 그대로 시골 마을에 사는 두 아이의 이웃이자 귀여운 숲의 주인을 다루는 비교적 가벼운 이야기다. 거시적인 세계에서 미시적인 세계로 좁혀들어온 느낌이랄까. 시골 마을 귀농기의 초반을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리틀 포레스트>나 <늑대아이>, <옥자> 등이 연상된다. 물론 실제로 영향을 받은 순서는 역순이었겠지만.
사실, 이후 나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작품에 비빌 만큼 압도적인 상상력을 발휘한 영화는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미지의 존재와 조우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스필버그의 <E.T>등을 비롯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한 이야기 아닌가. 그리고 그 미지의 존재들을 수식하는 설정이나 디자인 역시 재미있고 재치있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엄청난 게임 체인저가 되었다고 말하기까지는 어렵다고 본다. 그러니까 설정이나 이야기 자체의 재미로 보는 영화는 아닐 것. 그런 것들은 이전 작이나 이후 작들이 훨씬 낫지.
그럼에도 <이웃집 토토로>가 갖는 강점은, 관객들에게 명확한 키 이미지를 제시했다는 데에 있다. 어린 시절 처음 보았든, 아니면 다 큰 어른이 되어 처음 보았든 상관없이 결코 잊혀지지 않는 장면들이 존재하는 영화다. 이 영화를 재미없게 보거나 지루하게 볼 수는 있어도, 최소한 한 번 봤다면 비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서 우산을 쓴채 서 있는 토토로의 이미지를 결코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사에 있어서 길이 남을 어떤 한 이미지를 제시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이는 영화.
생각해보면, 결국 영화라는 것은 그런 이미지들이 오래도록 남기 위해 발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웃집 토토로>는 꽤 성공적인 영화인 것이다. 아직까지도 내게,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순수한 상상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 영화. 나도 고양이 버스 타고 늴리리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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