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 버그의 영화들이 이랬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의 영화들은 대부분 다 이랬지. 초반부터 결말까지 구리거나, 초반만 구리다가 점점 나아지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꽤 괜찮거나. <패트리어트 데이>나 <론 서바이버>처럼 괜찮은 영화를 만들다가도, <배틀쉽>이나 <웰컴 투 더 정글>처럼 처음부터 막판까지 이상한 영화들 역시 만들던 양반. 그럼에도 그가 한 영화를 용두사미로 끝낸 적은 별로 없었다. 아, 딱 한 번 있었지. <핸콕>. 그 영화는 기본 설정이랑 오프닝은 끗발나는데 뒤로 갈수록 망가져 갔으니. 이번 <스펜서 컨피덴셜>도 딱 그 꼴이다. 용두사미. 물론 용의 대가리라고 해서, 초반부가 엄청난 걸작의 스멜을 풍겨오던 건 또 아니었지만.
그러니까, 초반부가 그냥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라는 거다. 주인공의 성격이나 과거 등, 기본적으로 세운 셋업들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후에 밝혀질 흑막의 정체를 캐스팅을 통해 너무 드러내는 듯한 느낌도 좀 들었지만 그거야 뭐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에서 <식스센스>급 반전을 기대한 건 아니었으니. 마크 월버그와 윈스턴 듀크가 연기한 두 캐릭터가 룸메이트로 엮이는 부분까지도 나름 괜찮았음. 사실, 이 부분 보면서 '아, 이 영화가 좀 괜찮아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작중 직접 언급되는 것처럼 둘이 각각 배트맨과 로빈 역할 하면서 사립 탐정 놀이하면 재밌잖아. 내가 원체 그런 거 좋아하기도 하고.
근데 영화가 뒤로갈수록 막장인 듯한 느낌. 사건 해결은 후다닥이며, 너무 나이브한 결말. 그리고 무엇보다, 액션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투닥투닥대는 소규모의 대인 액션 몇 개가 전부인데, 존나 웃긴 게 전직 경찰에 교도소 생활까지 버텼던 주인공인데도 싸움은 졸라 못함. 솔직히 바 화장실에서 부패 경찰 몇 놈들이랑 붙었을 때 앗쌀하게 개바르고 손 툭툭 털 줄 알았지. 툭툭 털긴 개뿔, 그냥 지 턱주가리만 털털 털리더라. 여기에 클라이막스까지 그래버리니 할 말이 없다. 총격전은 동네 애들 BB탄 놀이만도 못한 것 같고, 체격으로 커버치려 하는 윈스턴 듀크의 맨몸 액션도 그런 게 있었냐는 듯 무심하게 지나가버림.
그리고 시발 악당이라는 새끼들이 존나 순해빠졌다. 명색이 주인공과 절친한 할아버지까지 인질로 잡아왔으면 그에 맞는 깡다구와 포스를 보여줘야지, 약속했던 장소에 주인공 아닌 주인공 여자친구가 나오자 카리스마로 짓이기기는 커녕 오히려 짓이김 당하더라. 경찰이나 특수요원 출신도 아닌 그냥 개린이집 원장에게 쫄고들 앉아있다니까. 이게 시방 뭣이여, 대체.
결말이 나이브하다고 했었는데, 진짜임. 대충 범인들이랑 영상 자료 묶어서 제출하니 기자가 알아서 언론화 시켜주고 뒷짐지고 서 있던 FBI는 그냥 꿀꺽 해버리며 모두가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결말. 아, 진짜 피터 버그 이 양반 왜 이러냐. <패트리어트 데이>의 꼼꼼한 연출력 내가 얼마나 재밌게 봤었는데. 이쯤되면 그냥 넷플릭스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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