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2 20:41

셔터 아일랜드, 2010 대여점 (구작)


내 기억으로는 개봉 직전에 데니스 루헤인의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고, 그 이후 극장에서 영화를 봤던 것으로 안다. 이미 원작을 다 읽고 극장에 간 상태였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이나 반전에 대해서 다 알고 있기는 했음. 하여튼 그 이후로 정말이지 오랜만에 다시 본 영화. 결론부터 말하면 다시 봐도 나는 불호임.


스포 아일랜드!


뻔하기는 해도 정말이지 죽여주는 컨셉이라고 할 수 밖에. 배를 타고도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외딴 섬. 그 곳에 숲으로 둘러싸인 흉악범 전용 정신병원이 있는데 거기서 한 여자가 탈출했다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탈출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네? 그래서 그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두 명의 연방보안관이 이 섬으로 들어온다네? 아참, 그리고 강풍을 동반한 태풍도 섬에 상륙한다지? 아니, 대체 어떻게 이런 이야기에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외딴 섬에 위치한 정신병원이라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소름이 끼치는데, 그곳에서 사라진 한 여자를 찾기 위한 수사극이라니. 이건 연출이랑 프로덕션 디자인만 잘 갖춰주면 안 먹힐래야 안 먹힐 수가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근데 난 이걸, 반전이 다 잡아먹었다고 생각한다. 원작 소설의 반전이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찌하겠느냐고? 뭔 상관이야, 소설에서도 구리다고 생각했으니 원작이든 영화든 그냥 둘 다 싸잡아 깔거임. 결국 그 반전을 정리하면, 이 모든 게 하나의 연극에 지나지 않았다- 정도가 된다. 주인공인 테디가 열렬히 차고 있던 방화범 래디스는 결국 본인의 또다른 자아였고, 테디 본인도 연방보안관이 아닌 그저 이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던 환자였을 뿐. 그러니까 이 수사극 전체가 그냥 다 정신병원의 연극치료였던 것.

실제 정신의학에서 특정 환자들의 상태를 호전 시키기 위해 연극 치료를 행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게 이 영화와 잘 붙었느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영화의 기본 컨셉이 갖고 있던 스릴감, 그리고 영화가 내내 묘사했던 고립감 이 모든 것들이 한 방에 다 날아가는 느낌이다. 존나 소름끼치고 으스스했던 그 분위기가 그냥 죄다 구라였다는 거잖아. 심지어 영화의 초반부 정신병원과 결말부 정신병원 이미지도 확 달라진다. 초반에는 일종의 마경처럼 묘사했는데, 반전 밝혀지고 결말부 되면 그냥 화사한 톤에 깨끗한 느낌임. 뭔가 비밀들을 한껏 숨기고 있는 것 같던 정신과 의사도 결국 그저 착한 사람 정도로 마무리되고 만다. 

나는 그게 너무 아쉬웠다. 설정도 좋고, 정신병원의 기분 나쁜 이미지도 잘 구현해냈으면서 그 근본이 되는 반전으로 모든 게 다 물거품 된 느낌이라서. 주제적은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스콜세지는 이 텍스트를 트라우마에 관한 것으로 만드려 했던 것 같은데, 이야기적으로만 본다면 잘 붙을 것 같지만 정작 지지부진하고 갈팡질팡한 편집 때문에 되려 영화의 몰입감을 해친다.

물론 유명한 소설을 리메이크해 영화를 만들면서 기존의 반전과 결말을 완전히 뒤바꿔버리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꿨다면 그건 그거대로 또 욕 먹었겠지. 그러니까 다시 고쳐 말해, 소설이든 영화든 영화의 중반부 분위기까지만 딱 내 스타일이다. 그냥 그 스타일대로 닭살 돋는 미스테리 스릴러 하나 따로 만들고 싶음.

덧글

  • 로그온티어 2020/03/22 21:18 # 답글

    저는 원작소설인 살인자들의 섬을 몰랐어요. 그냥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생각하고 보러갔었죠. 그리고 저도 실망한 케이스입니다. 솔직히 게을렀다고 생각해요. 정신병자의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 합리화를 표현했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그냥 치트키같은 느낌. '아슈발꿈' 같은 거 말입니다. 솔직히 그냥 뭐든 간에 좆나 미스터리하게 적어놓고, 알고보니 주인공이 미친거였습니다. 하고 끝마치면 되는 거잖아요? 만일 너무 설정을 늘어놔서 끝맺기 뭐하면, 주인공이 미쳐서 오락가락하는 거라고 쓰면 됩니다. 제 기억에, 게임계에는 이런 작품들이 너무 많았어요. 말하면 스포일러라 언급하기 뭐하지만

    아무튼... 게임쪽에서는 너무 흔한 이야기 였던 지라...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를 결말에서 들어버린 나는 너무나도 허무해서...

    노파심에 씁니다만, 반전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허나, 반전이라는 것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관객이 생각하는 고정관념의 실체에 도달하지 않으면 않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깨고 싶은 고정관념이 있고, 그 고정관념을 깨어서 얻어지는 게 무엇이냐를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죠. 동시에, 그 고정관념은 관객이 가지고 있는 거고, 관객 스스로도 자신의 착각에 놀라야 합니다. 허나, 이 영화는 관객과의 호흡이나 방향성 설계는 무시하고, 그냥... '주인공이 미쳤슴다 -_-' 식으로 끝나버리니까 허무한 거죠.

    적어도 [더 게임]처럼 이게 어디까지 진짜고 가짜인가라는 '긴가민가한 불안'을 그렸다면 나았겠지만, 그랬으면 또 [더 게임] 미만이 되어버릴 거고.... 하지만 그래도 디카프리오는 멋졌습니다. 당시 저는 [캐치 미 이프 유캔] 이후로 디카프리오의 행보가 업데이트 되지 않은 상황이라, 이때부터 어른의 진한 스킨향을 뿜어낼 줄 아는 아재배우라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었죠.
  • CINEKOON 2020/03/30 17:26 #

    맞아요, 저도 지금의 이 결말이 너무 치트키 스럽다는 생각 때문에 싫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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