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 전에 <작은 아씨들> 본 뒤 최근에 <미드소마>도 본의 아니게 다시 보고, 또 <리틀 드러머 걸>로 막타를 쳤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에서 플로렌스 퓨 봤을 때 뭔가 반갑더라, 혼자. 요 며칠 새에 얼굴을 너무 자주 보니까 거의 친구 사이인 줄.
성장 드라마에 스포츠 드라마로써, 영화가 별다르게 새로운 건 없다. 새로운 세상으로 알을 깨치고 떠나가려는 주인공과 그녀를 사이에 두고 이런 저런 갈등을 쌓아가는 가족들. 그리고 결국 새 세상을 향해 가족들을 떠났지만,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외롭게 지내며 스스로의 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서사. 따지고보면 정말로 별 것 없지. 그러나 그 중심에 플로렌스 퓨가 있고, 축구나 농구, 심지어는 스포츠 레슬링도 아닌 WWE로 대표되는 프로 레슬링을 그녀가 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주는 활력이 대단하다. 진짜 별 거 없는 이야기고 새로울 것 하나 없는데도, 그냥 배우가 리드미컬하게 끌고 가는 것 하나만으로 굴러가는 영화인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크나큰 단점 하나. 주인공의 오빠인 잭 로던의 캐릭터가 존나 개망나니로 나온다는 거. 물론 개망나니가 한 명 나온다고 해서 영화가 무조건 좆 같아지는 건 아니지. 아예 싸이코패스 악당이 주인공인 영화도 있는데, 뭐. 근데 이 캐릭터는 심경 변화가 너무 갑작스럽고 앞뒤 없다. 물론 필생에 걸쳐 갈구하던 자리를 본인이 아닌 동생이 얻어냈으니, 어린 마음에 동생에 대해서 질투도 날 법하다. 허나 얘는 좀 도가 지나치다. 당장 먹여살릴 아내와 자식이 있는데도 내내 딴생각이며, 처음에는 응원해주는 것처럼 보이더니 나중에는 동생의 전화도 무시. 한 명의 캐릭터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좋지만, 그라데이션으로 그 질투와 분노가 서서히 끓어오르는 게 아니라 무슨 전원 버튼 켜듯이 한 순간에 딸깍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
다른 종목들과는 다르게, 프로 레슬링은 스포츠로써의 속성과 쇼 엔터테인먼트로써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특이 케이스다. 그렇다면 이왕 스포츠 레슬링도 아닌 프로 레슬링의 세계를 다루는 김에, 이 스포츠만이 가지는 낭만성을 좀 더 강조하는 방식이였으면 어땠을까. 실화를 베이스로 한 영화이니 종목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겠지만, 지금 전개대로라면 그 자리에 축구를 넣든 농구를 넣든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물론 특정 스포츠를 다루는 영화들이 모두 그 종목의 낭만성을 설파할 필요는 없겠지만, <더 레슬러>에서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보여주었던 것의 좀 더 대중적인 느낌을 이 영화가 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런 거 안 한 게 좀 아쉬움.
플로렌스 퓨만 보고 선택한 영화였는데 역시 연기는 잘한다. 따로 언급할 부분이 없을 정도다. 닉 프로스트는 왜 이렇게 살이 더 많이 찐 느낌이지? 빈스 본은 언제나 반갑고. 그나저나 포스터에는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는 드웨인 존슨. 정작 그의 등장은 고작 10여분이 채 안 된다. 근데 시발 등장할 때마다 존재감 존나 무겁고 존나 반갑네. 이런 게 스타 파워인 건가.
덧글
로그온티어 2020/03/28 21:54 # 답글
그나저나, 닉프로스트의 맛의 진가를 보고 싶다면, 아파야 사는 남자 추천합니다.
한편으로 절친이었던 사이먼페그는 요즘 연기 변신하더군요.
http://www.youtube.com/watch?v=TX08_SVH1Hs
영업하는 거 아닙니다. 그냥...
CINEKOON 2020/03/30 17:24 #
로그온티어 2020/03/30 17:57 #
여기서 루퍼스 그린트는 진짜 최고. 찌질한 회사원 연기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해리포터 볼 때는 그저 그렇게만 보았는데, 아파야 사는 남자 시즌1보다 입덕할 뻔 했어요.
nenga 2020/03/29 05:18 # 답글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지만
이건 영화외적인 요소이고
영화내에서는 잘 보여주지 못한듯 합니다
CINEKOON 2020/03/30 1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