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구일수록 감투 쓰는 법이다. 보통의 비 자발적 아웃사이더들은 주류 그룹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기 마련이고, 반대로 주류 그룹의 구성원들은 직접 맡기 부담스럽거나 꼭 필요하지만 정작 본인 스스로는 하기 싫은 일들을 떠넘길 만한 호구가 필요한 법.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비극이 아닐지도 모른다. 결말까지 보고나면 더더욱 그렇지. 그건 양쪽 모두에게 다 해피 엔딩이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래서 그게 더 비극이 되는 거고.
똑같은 십팔청춘의 가출소녀이지만, 박화영은 그들 사이에서 '엄마'로 불린다. 이는 짐짓 화영이 그들 위에서 군림하기 때문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지만 실상은 그 반대. 애초 '엄마'라는 단어의 늬앙스는 '군림'과 거리가 멀지 않은가. 오래도록 이어져 내려온 가부장제 시스템 안에서, '아버지' 또는 '아빠'라는 단어는 보통 '군림'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머니'나 '엄마'는? 보통 '희생'과 '보살핌'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더 많지. 화영의 상황이 바로 그 경우다. 그녀의 친구들은 아니, 그녀의 동갑내기 가출소녀들은 화영을 엄마라고 부르며 은근히 하대한다. 가출소녀들은 화영에게 빨래를 시키고, 요리를 시키며, 결국엔 그들 스스로가 지은 죄에 대한 댓가를 화영에게 떠넘기기까지 한다. 문제는, 화영이 그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아,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화영은 빨래나 요리, 누명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 그 자체를 누리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심하게 말하면 거기에 중독되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고.
누구나 상대방에게 있어 의미있는 존재로 남고 싶어한다. 가족 사이든, 연인 사이든, 친구 사이든, 심지어는 직장 동료 사이에서도 그럴 수 있다. 사회 생활을 하는 동물로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런 욕구인 것이다. 문제는 상대방도 그러하느냐-인 거다. 물론 마음을 준만큼 받는다면 좋겠지. 그치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잖아. 그러니까, 최소한 상대도 나를 최소한의 진심으로 대하고 있느냐-가 중요해지는 것. 재밌는 건, 일종의 사회 고발 드라마로써 이 영화가 박화영을 무조건적인 피해자로만 그리고 있지는 않다는 점. 그녀의 과거는 영화 속에서 묘사되지 않는다. 간접적으로 유추 해볼 수는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제시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조커>처럼, '얘도 다 그런 사정이 있어서 결국 이렇게 된 거야!' 따위가 없다. 물론 실제로는 무슨 일이든 있었겠지. 근데 보여지지는 않으니까. 나는 가출소녀들이 화영을 무조건적으로 이용했다고만 보지는 않는다. 엄밀히 따지면 화영도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가출소녀들을 이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미정을 바라보는 화영의 표정만은 유독 마음에 남는다. 다른 가출소녀들은 그랬다 치자고. 하지만 미정에게는? 분명 화영은 미정에 대해서만큼은 달랐잖아.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더 오래 붙어 있었던 것도, 몇 년이 흐른 뒤 SNS를 통해 먼저 연락한 것도. 어쩌면, 미정에 대한 화영의 감정 하나만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시점처럼 뵈는 장면들이 교차 편집 되길래 나는 그게 또 과거 시점인 줄 알았지. 근데 다 보고 나니 결국 그것들이 현재 시점인 거였어. 답답한 화면 비율로 지옥 같던 과거의 순간들을 묘사하다가, 시네마틱한 영화적 비율로 옮겨가 화영의 지금을 보여주는 영화. 와이드한 비율로 잡힌 화영의 얼굴이 더 외로워 보이는 영화. 문제는 영화가 너무 답답하고 보는내내 빡쳐서 두 번은 못 볼 것 같음.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마더!> 처음 봤을 때 주인공의 손에 기관총을 들려주고 싶다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도 똑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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