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8 22:27

나이트크롤러, 2015 대여점 (구작)


맨홀 뚜껑이나 철조망 등을 훔쳐 파는 생계형 도둑이지만, 그 야심 하나만큼은 대단한 루이스 블룸. 그런 그가 차기 유망 직종으로 점찍어 보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야간 사고 VJ다. 밤중에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 사고들을 직접 카메라로 촬영해 그 영상을 뉴스 방송국에 파는 일. 유혈을 동반한 자극적 사건일수록 영상이 더 비싼 값에 팔린다는 것을 알게된 루이스 블룸의 안 그래도 퀭한 눈이 어둡게 반짝인다. 

루이스 블룸은 희대의 악마다. 그냥 나쁜 놈이니 싸잡아 악마로 부르자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정말로 악마라면 갖춰야할 여러 덕목들을 두루두루 성실하게 갖추고 있는 인간이다. 모든 일의 기본이 되는 자신감과 계획성. 철두철미한 성격. 협박과 공갈에 능한 말주변과 순발력. 뭐든지 쉽게 배우는 학구열과 기술력, 카메라로 화면을 잡아내는 연출력. 정확한 목표와 그를 걸러내는 판단력과 인내심. 그리고 실천력. 이 정도면 악마 사관 학교에서 조교 일을 하고 있어도 모자른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악마로서 가장 훌륭한 그의 덕목은, 직업 윤리의 부재다. 아니, 그냥 도덕성의 부재. 그는 싸이코패스라기보다 소시오패스에 더 가깝다. 귀찮게 구는 경쟁자가 있으면 그의 자동차를 손봐 교통사고를 유발해 제거한다. 급여 인상을 주장하는 부하 직원? 적당히 구라쳐 총살형 시키면 그만인 거지. 야간 사고 VJ로서, 루이스 블룸은 최악의 직업 윤리를 가진 사내인 것이다. 사람을 다루는 법. 공정하게 경쟁하는 법. 돈보다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법. 그 모든 것들이 루이스 블룸의 사고에는 부재하다. 

문제는 그와 파트너 관계라 할 수 있을 방송국 KWLA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저 시청률만 올릴 수 있다면 사람이 몇이나 죽었든, 죽은 그들의 인권은 어떻든 무엇이든지 상관하지 않는 곳. 그렇게  KWLA는 방송국으로써의 직업 윤리를 어겼다. 그런 곳이 존재하기에 그 부스러기를 받아먹고 사는 루이스 블룸 같은 영세 악마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악마에게는 직업 윤리가 없는 것이 직업 윤리인 것일지도 모른다.

제이크 질렌할의 무던하고도 퀭한 연기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제이크 질렌할은 항상 선량한 느낌의 배우였는데 극장에서 이 영화 처음 봤을 때 그 모든 환상이 다 와장창하고 깨졌더랬지. 지금은... 르네 루소나 리즈 아메드 등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이 많지만 결국 제이크 질렌할의 무표정으로 남는 영화. 진짜 악마가 존재한다면 이런 표정을 하고 있을 것 같다. <헬보이>나 <스폰>에서 봤던 것처럼 한껏 인상 쓰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세상 모든 일에 초연한 현자이듯 구라치고 있을 것 같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20/03/28 23:45 # 답글

    모든 일의 기본이 되는 자신감과 계획성. 철두철미한 성격. 협박과 공갈에 능한 말주변과 순발력. 뭐든지 쉽게 배우는 학구열과 기술력, 카메라로 화면을 잡아내는 연출력. 정확한 목표와 그를 걸러내는 판단력과 인내심. 그리고 실천력....이 악마를 만드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 문단 내용이 뭔지 압니다. 악마가 이런 특성도 가지면 위험하다는 이야기지요... 근데 이게 뭔가 헷갈리네요;
  • CINEKOON 2020/03/30 17:23 #

    아, 물론 그런 점들이 악마가 되는 방법은 아니겠지요. 이미 악마인 사람이, 그런 점들을 가지면 절정무공의 악마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이었어요. 그리고 악마가 되는 기초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 시작은 직업윤리의 부재일 거라 생각했고요.

    의도는 달랐지만 로그온티어님 말씀대로 오해의 소지가 있을 뻔한 멘트였네요. 댓글로 바로잡아 주심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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