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30 20:49

턱시도, 2002 대여점 (구작)


제임스 본드가 된 성룡이라고 해야할까. 어릴 때 극장에서 엄청 재밌게 봤던 영화. 근데 그게 또 2002년이면 벌써 18년 전이네. 시간 진짜 미쳤구나.

영화의 첫 씬이 인상적이다. 성룡 주연의 액션 영화인데도 첫 씬은 뜬금없이, 폭포. 위에서부터 아래로 힘차게 흘러내리는 두꺼운 물줄기. 예전부터 그런 걸 들었었지. 서양 사람들은 분수를, 동양 사람들은 폭포를 선호한다고.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고, 중력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 그저 흘러내릴 뿐인 폭포. 어쩌면 세상 순리대로 살아가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곧바로 그 폭포에 힘차게 오줌을 싸제끼는 사슴의 이미지. 순리대로 사는 것? 다 좆까라지.

성룡이 연기하는 지미가 그래 보인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오래도록 좋아해왔던 여자에게 고백 한 번 못해보고, 그저 좁디 좁은 택시 운전석에 앉아 하루하루를 보내던 사람. 그렇게 순리대로만 살던 그에게, 엄청난 능력을 가진 턱시도가 굴러들어온다. 주먹 싸움은 물론이고 라이플 조립은 기본, 심지어는 사교계의 댄스머신까지 될 수 있는 만능 수트. 시바 토니 스타크가 안 부럽네. 이 정도 수트면 순리대로 살던 평범한 삶 다 좆까라 하는 게 맞지.

다소 유치하지만 기본적인 재미가 있는 설정이다. 성룡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순둥미 넘치는 얼굴을 이용해 엄청난 일에 휘말린 평범한 소시민을 잘 연기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주위 지형지물과 소품을 활용하는 방식의 액션도 좋고. 하여튼 설정이든 성룡이든 다 좋다 이거다. 문제는 성룡 영화에서 기대하는 액션의 양이나 독창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 지형지물과 소품을 활용하는 것도 한 두 번 정도 밖에 없고, 다 쓸데없는 유아적 개그로 나머지를 때운다는 것. 그리고 턱시도 덕분에 거의 수퍼 솔져 급 파워를 갖게 된다는 설정이다보니, 뭔가 액션도 전체적으로 허무맹랑하고 쓸데없이 부앙부앙해 뭐랄까 착 감기는 맛이 덜하다.

악당 조직이 물을 비롯한 수자원을 이용하려 한다는 것도 왜 굳이 그런 설정을 했을까 싶다. 무조건적으로 나쁜 설정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의 현재 처지나 심경을 대비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더 있으면 어땠을까- 싶고. 뭐, 악당 조직의 계획이 갖는 비현실성 따위에 대해서는 접어두고 가지만 말이다. 이런 영화에서 최소한의 납득만 시킬 수 있으면 되지, 뭐. 아, 그리고 성룡이 연기한 지미의 캐릭터가 턱시도 입기 전에도 너무 잘 날아다니더라. 자동차 위고 밑이고 약삭 빠르게 잘 움직이던데, 턱시도 입기 전과 후 대비를 더 극명하게 나타내려 했다면 아예 몸 쓸 줄 모르는 인물로 그렸어야 했던 것 아닐까.

어쨌거나 그래도 그냥 귀여운 맛은 있는 영화. 성룡 영화치고 마지막 악당의 최후가 꽤 괴랄하고, 피터 스토메어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연기도 좀 귀여움. 제니퍼 러브 휴잇이야 그 당시가 전성기였고. 그리고 이 영화 아니면 언제 성룡이 섹스 머신 열창하는 걸 보겠나. 그냥 저냥 귀엽기는 한 영화인 것이다.

근데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제니퍼 러브 휴잇이랑 데이트하면서 끝나는 결말이면 누가 뭐래도 그냥 성룡이 승자인 거 아니야?

뱀발 - 딴 이야기지만 제이슨 아이삭스 좀만 더 젊었더라면 진짜 제임스 본드 역할 가능했을 것 같다. 이 양반은 성룡 영화에 나와서 혼자 이기적인 간지를 보여주고 앉았네. 솔직히 이 영화에 나오는지도 까먹고 있었는데.

덧글

  • 로그온티어 2020/03/30 21:15 # 답글

    악당 최후가 너무 그로테스크해서, 그것만 보면 일라이로스 PG13 등급 판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가 아닐까... 아님 킹스맨 프로토타입 버전이거나요.
  • CINEKOON 2020/03/31 01:54 #

    수백 수천 마리의 소금쟁이 유충들이 악당의 입으로 득달같이 달려들어 바스락 미이라로 만들어버릴 땐... 이게 성룡 영화가 맞나 싶은 생각이... 이 형은 <익스펜더블> 총으로 사람 죽이는 영화라 싫다 거절했다고 들었는데 파삭 말라죽는 건 괜찮나봐요
  • 로그온티어 2020/03/31 03:04 #

    총만 아니면 되는 거겠죠 XD
  • 포스21 2020/03/30 22:49 # 답글

    개인적으로 한번 보고 싶은데... 아직 못봤네요. 어디 케이블에서 안하려나요? ^^
  • CINEKOON 2020/03/31 01:54 #

    넷플릭스에 있습니다. 저도 그걸로 본 거라... 넷플릭스에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도 있다면 최고일텐데!
  • IOTA옹 2020/03/31 00:46 # 답글

    제니퍼 러브 휴잇의 미소는 너무 아름다운것이어요.(특히나 눈!)
    군대서 봤네요...
    담배물면 자동으로 불 땡겨주는게 웃겼는데 그걸 잘 써먹어 좋았네요.
    정식 슈트 악당에게 뺐기고 프로토 타입 슈트 발굴해 싸우는게 지금보니 아연맨1에서 아크리액터 뺐기고 성능 떨어지는 프로토타입으로 때워 싸우는것과 비스무리 하군요.
  • CINEKOON 2020/03/31 01:55 #

    프로토 타입 수트라기 보다는 제이슨 아이삭스가 새로 맞춰준 턱시도더라고요. 저도 예전 기억으로는 더 오래된 턱시도 입고 싸우는 것인 줄 알았었는데... 어쨌거나 성룡이 입고 싸운 턱시도가 더 최신 기종이니 성능도 더 좋겠죠? 아닌가... 제이슨 아이삭스가 선물한 건데 본인 것보다 더 좋은 기종으로 만들어줄리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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