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1 14:15

로건 럭키, 2018 대여점 (구작)


<오션스 일레븐>은 핸섬하고 젠틀한 하이스트 무비였다. 도둑들일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품위를 잃지 않았으며, 경거망동 하지 않았다. 여기에 캐스팅도 노골적이었잖아.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게다가 거기는 도둑질 당하는 사람도 앤디 가르시아였으니 더 할 말이 없겠다. 반면 <로건 럭키>는 <오션스 일레븐>의 적절한 변주이면서도 명확한 안티테제로써 존재한다. 멋지고 우아하기는 커녕 실수투성이에 텁텁한 행실만을 보여주는 주인공들. 그들은 태생부터 운도 지지리 없는 형제들이었으며 형은 다리를 절뚝이고, 동생은 한 쪽 손을 잃었다. 그들은 건축 노동자였고, 바텐더였다. 채닝 테이텀과 아담 드라이버는 분명 멋진 배우들이지만, 그럼에도 조지 클루니나 브래드 피트 과의 느낌은 아니지않나. 하여튼 <로건 럭키>는 그런 영화다. 블루 칼라 하이스트 무비로써 <오션스 일레븐>과 대척점에 있는. 근데 감독이 <오션스 일레븐> 연출했던 인간이라 더 웃김.


스포일러 럭키!


근데 좀 웃기는 말이지만, 하이스트 무비에서 우리가 으레 기대하는 것들을 명확히 보여주지는 않는 영화다. 범죄 계획의 전체적인 얼개나 세부적인 묘사 모두 흥미롭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보는 데에는 즐겁지만, <오션스 일레븐>과 그 이후 시리즈들이 보여주었던 기상천외함은 좀 덜한 느낌. 계획의 성공 여부를 전달하는 반전 타이밍도 훤히 예상되고, 무엇보다 그 반전의 트릭 자체가 별로 와닿지가 않는다. 물론 쓰레기봉투에 돈 담아 버리는 것 자체는 분명 효과적인 트릭이었으나 그게 영화적으로 재미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말.

그래서 하이스트 장르물로써 보기에는 좀 감흥이 떨어지는 점이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영화가 좋았던 건 뭐냐면...... 그냥 주인공의 동기가 참 좋더라. 이혼하느라 딸의 주 양육권도 빼앗긴 주인공. 그 주인공이 딸을 대하는 장면마다 묘하게 짠해지는 부분이 있다. 주인공인 지미가 그 대단한 범죄 계획을 마무리하고 찾은 것은 한 잔의 맥주도 아니고 스트립 클럽도 아니었다. 그가 일평생 최초로 무언가 대단한 일을 성공 해낸 뒤 찾은 곳은 다름 아닌 딸아이의 장기자랑 대회였다. 가장 앞자리에 앉은 것도 아니고, 그냥 객석의 가장 끄트머리에 서서 딸아이를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원래 리한나의 노래를 부르기로 했던 딸아이는 그런 아버지를 발견한 뒤, 아버지가 평소 가장 좋아하던 노래로 자랑할 장기를 바꾼다. 대단히 잘 부르는 건 아니었지만, 아버지와 눈을 맞춰가며 그 노래를 부르는 딸의 모습으로 이 범죄 계획이 마무리 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면서도 괜히 기분 좋기도 했다.

채닝 테이텀과 아담 드라이버는 나쁘지 않다. 영화의 중심을 나름대로 잘 잡아준다. 그럼에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다니엘 크레이그일 것이다. 언제나 멋진 수트 차림으로 애스턴 마틴을 몰며 세상을 구하던 자가, 이렇게 허당 양아치 같은 모습으로 자빠져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괜시리 키득거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이스트 영화로써의 매력을 컵케이크에 비유한다면, 그 컵케이크 자체가 대단히 맛있는 건 아니었다. 근데, 그 끝에 올려진 빨간 체리의 달달한 풍미가 꽤 괜찮더라. 어느 지점에 기대를 두고 보느냐에 따라 그 감상이 달라질 것 같은 영화. 그나저나 스티브 소더버그가 참 대단하기는 하네. 성실하기로 충무로에 이준익이 있다면, 할리우드에는 스티브 소더버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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