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4 21:14

라이트하우스, 2019 대여점 (구작)


나름 자가격리는 했는데 정작 그 안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에 실패해 다 좆망하는 내용의 영화.

윌렘 데포와 로버트 패틴슨의 괴물 같은 연기, 그리고 요상망측한 영화적 분위기로 작년 영화계에서 이목을 좀 끌었던 작품. 그러나 막상 본 영화는, 생각보다 그저 그랬다. 정방형의 1:1 화면비와 흑백 색보정, 그리고 정적이면서도 음울하고 또 불안한 촬영. 하여튼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성취는 어느정도 인정한다. 좁아터진 바위섬 위의 불온한 풍경을 분명 효과적으로 잡아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정작 무서운 장면 1도 없는 이 영화가 그토록 등골 서늘하게 느껴지는 거지.

허나 그 외의 부분들에서는 좀 공감을 못하겠다. 일단 종잡을 수가 없다. 이것은 러브크래프트가 구축한 크툴루 신화의 한자락을 인용해먹는 영화인가? 아니면 그냥 격리된 공간에서의 인간 군상과 그 정신 상태에 집중하는 영화인가? 그도 아니면, 살인을 저지른 등대지기와 그 밑에서 의심의 싹을 천천히 키워내는 남자의 대결을 보여주려는 영화인가? 그것도 아니면, 과거의 상흔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한 남자의 신분 세탁 영화인가? 솔직히 쥐뿔도 모르겠다. 미신에 민감한 바닷사람들의 관념을 끌어다가 으스스한 분위기의 오컬트로 재탄생 시키려는 시도는 분명 의미있다. 그러나 설정과 의도만 좋으면 뭐한가. 정확히 이게 뭐에 대한 이야기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고. 

종교적 레퍼런스와 문학적 레퍼런스가 곳곳에 베여있다. 하나님과 기도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하고, 트리톤 등 그리스 로마 신화의 요소들도 존재함. 문학적 요소로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 영화내외적으로 떠다니고, 인어 신화나 상술했던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 등도 연상된다. 근데 그것들이 그냥 널브려져 있으면 자연히 좋은 영화가 되는 거냐고. 내가 봤을 때는 아니올시다야. 그 모든 것들이 의미있게 맞물려 돌아가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야지. 존나 불안하게만 만들어놓고 영화가 수습을 별로 할 생각이 없어뵌다.

다시 말하지만 분위기는 끝장난다. 그렇지만 그걸 제대로 활용했느냐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작품. 그냥 존나 멋진 윌렘 데포 얼굴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을 뿐.

덧글

  • 로그온티어 2020/04/04 21:48 # 답글

    저는 군대에서 상사가 그냥 상사가 아닐 경우로 영화를 해석했습니다. 못난 상사지만 알고보니 높으신 분(여기서는 바다신에 비유) 연줄이 있는 사람이라서, 패틴슨이 불합리함에 하극상 좀 벌여보지만 결국 높으신 분의 진노에 인해 죽어버리는 이야기인 거죠. 사회비판 요소를 코스믹호러에 녹여낸 것입니다.

    이거 보면서, 군대에서 틀어주면 반응이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소위 '짬찌'들에겐 현재 상황이 상황이니 체감되는 공포로 다가올 거고, 말년병장에겐 미뤄지는 전역에서 엄청난 곶통을 느낄 테니까요. 그 현장을 지켜본다면 저는 정말 ... 일생에서 느껴본 적 없는 행복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 CINEKOON 2020/04/09 23:55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대한민국 남자 관객들이라면 군 시절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영화이기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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