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5 21:08

미스틱 리버, 2003 대여점 (구작)


과거의 상흔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한 남자. 그리고 그런 그를 온전히 뼛속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던 한 남자. 여기에 이 모든 걸 그저 바라만 보는 또 한 남자. 피해자와 방관자들의 지독한 이야기.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최고작. 아니, 나는 진짜로 최고작이라고 생각해. <밀리언 달러 베이비><그랜 토리노>까지 삼각편대로 생각하면 진정한 역대 최강. 

과거 어린 시절에 늑대 같던 남자들에게 성적으로 학대받았던 데이브. 그런 데이브를, 지미는 그저 냅둔다. 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로서는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었는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랬던 지미가 데이브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것은 그가 그의 딸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잃어보지 않고는 피해자의 고통을 결코 알 수 없을 거라 말하는 이스트우드의 서늘한 충고. 그런 의미에서, 지미가 데이브의 옆에 앉아 엉엉 울게 되는 장면에서는 찡하다가도 서운하게 된다. 

영화가 미스테리를 던지는 방식이 흥미롭다. 많이 설명적이지 않으면서 무심한듯 시크하게, 말그대로 그냥 던지는 느낌. 데이브가 지미의 딸과 함께 있었던 술집에서의 몇 쇼트는 그자체로 그냥 미스테리가 된다. 의중을 알 수 없는 캐릭터를 진상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묶어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왜냐면, 그 뒤 미스테리는 모두 관객들이 알아서 만들어주거든. 내적으로 불안한 사람이 불온해보이는 사건과 간접적으로 엮여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심스럽잖나. 게다가 그 사람이 피투성이로 집에 돌아오기까지 했으니 관객 입장에서 이걸 어떻게 의심 안 할 수가 있겠어.

이후 미스테리를 밝혀나가는 것이 수사극으로써 기본적인 재미를 준다. 그러나 영화는 진범과 그의 동기마저도 무심한듯 시크하게 던지기만 할 뿐. 결국 영화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진범보다 데이브, 지미, 숀 세 남자의 이야기일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국으로 치달아가는 후반부의 교차편집은 졸라어썸. 예전에 이미 한 번 본적 있는 영화라 결말을 다 알고 있는데도 그 부분에서만큼은 벌떡 일어서게 되더라. 어릴 시절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지독할 뿐인 영화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존나 연출 잘한 영화였어.

팀 로빈스는 분명 장신의 배우지만, 그가 연기한 데이브는 한없이 작게만 보인다. 타인과 쉽게 공유할 수 없는 과거의 상흔을 가진 사람은 그토록 작기만 한 것이다. 반면 숀 펜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특유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끓으며 연기하고, 케빈 베이컨은 냉정하면서도 문득문득 친절한 눈빛을 잊지 않는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뒤를 봐주다니, 영화 외적으로 진짜 좋은 배우진이다. 

지미가 데이브를 묻은 미스틱 강처럼, 방관자들의 삶은 그렇게 조용히 흘러만 간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마지막 장면의 지미 일가는 진짜 죄다 패버리고 싶다. 사법처리는 못할지언정, 그 자신 스스로의 마음만은 지옥 불구덩이에 던져졌어야지. <밀양>의 그 새끼 떠오르네. 죄를 지어놓고 스스로 구원받아버린 그 새끼. 딸을 잃었다는 데에서는 안쓰럽지만, 그럼에도 지미는 그 새끼랑 별반 다를 거 없는 놈인 것이다. 

뱀발 - 죽음을 목전에 둔 데이브의 마지막 대사는 '살려줘'가 아닌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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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D U MISS ME ? : 그랜 토리노, 2008 2020-04-06 17:41:54 #

    ... 만 그 변화의 속도가 느릴 뿐'이라고 캐릭터가 살아 말하는 듯 하다. 이런 캐릭터를 사랑하지 않기란 어렵지. 특히 마지막 그의 선택까지 보고나면 더욱 더. &lt;미스틱 리버&gt;에서도 그랬듯, 이스트우드는 실제로 역지사지의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상대를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법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주인공인 코왈스키는 이 ... more

  • DID U MISS ME ? : 밀리언 달러 베이비, 2004 2020-04-06 19:33:26 #

    ... &lt;미스틱 리버&gt;, &lt;그랜 토리노&gt;에 이어 클린트 이스트우드 연출작들 중 삼대장이라고 할만 한 영화. 그러나 약간 미묘한 게, 좋은 영화인 건 분명하지만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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