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6 16:51

퍼펙트 센스, 2011 대여점 (구작)


가상의 전염병이 전세계를 강타한다.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명적인 증상. 전염되면 후각, 미각, 청각, 시각의 순서대로 감각을 잃게 되는 병. 그 와중에 이제 막 서로에게 빠진 두 사람, 수잔과 마이클. 이 둘의 사랑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2011년 개봉 당시에 극장에서 보고는 엄청나게 감명을 받았던 영화다. 당시 나는 20대 초반이었는데, 아마 대학생이자 사회초년생으로서 한창 감성적으로 무르익었을 때 봐서 더 확 와닿았던 것 같다. 갑자기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난 사춘기 시절보다 20대 초반이었을 때 더 감성적으로 돌풍 같았거든. 하여간에 시기적으로 이 영화와의 첫 만남이 꽤 괜찮았던 것 같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이번에 거의 10여년 만에 다시 본 거였거든? 근데 여전히 좋은 영화인 건 맞지만, 뭔가 추억 보정이 깨진 것 같더라고. 엄청난 영화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그냥 소소하게 좋은 영화 정도였음.

아이디어는 좋다. 누구나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우리의 '오감'을 하나씩 잃음으로써 오는 공포와 혼란.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통해 오감과 사랑을 구성적으로 엮어 보여주는 진풍경. 꽤 근사한 아이디어다. 근본적으로는 사랑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국 재난의 상황을 묘사하는 내용이기도 하기 때문에, 보는내내 이입해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만약 내 코가 더 이상 냄새를 맡을 수 없다면? 만약 내가 더 이상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이러한 상실감이 파도처럼 자꾸 밀려오는 영화이기에 보는 동안은 충분히 흥미로운 것.

문제는 이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사랑 이야기와 잘 엮이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다. 오감의 상실과 사랑 그 자체를 붙인 건 좋다. 하지만 주인공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잘 안 엮인다는 거야. 수잔과 마이클은 이미 재난의 첫번째 웨이브가 지난 뒤에서야 서로를 인지하고 만나게 된다. 이어서 서로에게 호감도 느끼고 데이트도 하는데, 여기에 자꾸 재난의 두번째, 세번째 웨이브가 몰아닥침. 그러다보니 둘의 이야기만 따로 떼서 정리해보면 결국 만났다-헤어졌다의 반복일 뿐인 거다. 재난의 아이디어는 새롭지만 그 근간이 되는 사랑 이야기는 구태의연하고 또 반복적인 것.

때문에 결국 이 획기적인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만든 영화구나-라는 감상으로 귀결. 여기서 영화가 좀 호감을 잃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서포트해줄 수 있는 탄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함께 병행해 개발했다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재난을 묘사하는 감각은 역시 좋고, 지금은 명감독 반열에 오르기 직전인 듯한 데이빗 멕킨지의 연출력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영원한 오비완 케노비 이완 맥그리거가 나오는데 뭘 더 바라겠어... 게다가 에바 그린도 나오는데. 연출과 연기적인 부분에서는 크게 불만이 없다. 그냥 각본과 기획에서 좀 덜컹거린 듯한 느낌임.

그나저나 영화 속 전염병 같은 게 진짜 존재한다면 일상도 파국이겠지만 여러 산업들도 줄초상이겠네. 후각 타격오는 순간 향수 업체들은 줄도산이고, 미각 타격오는 순간 요식업도. 그러고보니 우리네 삶이 정말로 오감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구나. 뜬금없는 결론

덧글

  • 인디라이터 2020/04/19 20:34 # 답글

    kt&g 상상마당에서 봤었는데 엔딩이 기억에 참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툭 끊어지는 듯한...
  • CINEKOON 2020/05/04 15:47 #

    갑자기 암전 때리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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