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6 21:50

내 연애의 기억, 2014 대여점 (구작)


어째 포스터도 투박하고 조금 촌스러운 느낌인데, 놀라지 마시라. 영화 본편에 비하면 이 포스터는 모더니티의 정점에 서 있다. 세상에는 못 만든 영화들이 이미 즐비하지만, 그 영화들은 대개 촌스럽거나, 연출적 + 기술적으로 후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그냥 못 만든 게 아니라,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이미지와 설정들의 연속이다. 보는내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정신 세계를 의심했다. 영화의 딱 중간까지는.


내 스포의 기억!


후반부부터 엄청난 반전들이 자진모리 장단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물론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반전이라는 게 영화사적으로 대단히 희귀한 반전인 것은 아니다. 일단 스포부터 던지면, 영화가 후반부부터 본격 호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는 것. 그런데 이렇게 호러와 로맨틱 코미디를 조합했던 것이 이 영화뿐만은 아니었잖아. <달콤 살벌한 연인>이나 <오싹한 연애> 같은 영화들이 한국 영화사에도 이미 존재하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그 태도다. <달콤 살벌한 연인>과 <오싹한 연애>가 호러를 베이스로 깔고 그 위에 로맨틱 코미디의 달콤함, 잔재미를 뿌려놓은 영화였다면 <내 연애의 기억>은 그냥 서로 다른 그 두 장르를 있는 그대로 이어버린다. 중반부까지는 대놓고 로맨틱 코미디풍인데, 후반부는 웃음기 싹 빼고 그냥 본격 호러라는 거. 그 점에서 영화가 특이하고, 분명 못 만든 것 같은데도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후반부의 반전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영화라 그걸 먼저 이야기하긴 했는데, 사실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영화의 초중반부에 대해서다. 진짜 쌈마이의 절정이다. 최근 본 영화들 중 대놓고 B급을 지향했던 영화들보다도 더 쌈마이 했던 것 같음. 조명이나 편집 등의 기술적인 완성도도 부족한데, 그걸 넘어서버리는 연출의 괴이함이 존재한다. '왜 이렇게 못 만들었지?'가 아니라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거지?'에 가까움. 연기적인 측면 역시 결코 지지 않는데,  투톱 주연인 강예원과 송새벽은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그 둘 이외의 모든 배우들은 역시나 괴이하다. 설정도 이상하게 많이 때려박았음. 주인공의 남동생이 해병대 출신이라는 것은 왜 이리 강조하는 것이며, 그 특유의 이상한 표정 연기는 또 무엇인가. 진짜 이렇게 밖에 말할 수가 없어서 나도 답답한데,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다 괴이하다. 주인공들이 이동하는 동선을 타입랩스 몽타주 마냥 표현한 부분들도 그 특유의 효과음과 이상한 리듬 때문에 괴이하게 느껴지고,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시장에서 입맛을 다시며 곱창을 바라볼 때 도대체 왜 '곱창~ 곱창~ 곱창~' 음악이 울려퍼지는 건지도 당최 알 수가 없다. 진짜 이건 본 사람들만 안다.

존나 웃긴 건...... 그 모든 쌈마이한 느낌들이 내겐 제대로 취향 저격이었다는 것. 뭐, 나쁘게 보면 비웃으면서 보는 재미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아니면 그냥 그 쌈마이한 느낌 자체가 나랑 잘 맞았던 건지도 모르지. 하여튼 간에 분명 이상하게 만든 영화인 건 맞는데 그 모든 걸 다 깔깔 대며 볼 수 있었다는 거.

그리고 찾아오는 후반부의 반전. 어느 정도 예상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서스펜스 연출을 못한 건 아닌 것 같다. 주인공이 살인마로 의심되는 남자친구의 자동차에 타면서부터 벌어지는 일들은 괜시리 내 맘을 졸이게 했으니. 그리고 이어지는 이 영화 최고의 어퍼컷. 연쇄 살인마의 과거 사연을 정리해주는 애니메이션이 대단하다. 전반부 내내 영화의 퀄리티는 묘하게 개차반이었으면서, 정작 이 짧은 5분 남짓의 애니메이션 퀄리티는 극상. 으스스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식에서 기괴함까지 느껴져 영화가 갑자기 더욱 더 무서워진다. 게다가 여기에 이어서 진짜 잘한 것은...... 연쇄 살인마가 나오는 본격 호러물 임에도 연쇄 살인마를 씁쓸하고 불쌍한 존재로 각인 시켰다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이 영화에 젖어 있을 수 있었다.

이쯤 되니, 쌈마이한 전반부는 그 의도가 있었음이 명백 해진다. 일종의 페이크 아니었을까? '우리 이런 병신 같은 영화예요~'라고 안심해 무장해제 시켜놓고는 이어서 사정없이 명존쎄를 갈겨버리기 위해서. 전반부의 괴랄한 유머 감각과 후반부의 흥미진진한 씁쓸함이 계속 뒤엉켜 내 뇌 언저리에서 반복되고 있는 영화. 시발 지금 찾아보니 감독 차기작이 <도어락>이었구나. 왜 상업 영화 시장에서 그에게 본격 호러 영화를 맡겼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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