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01 01:08

미스터 주 - 사라진 VIP 극장전 (신작)


작년 최악의 영화 중 하나로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꼽았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 영화를 보며 그 영화가 안 떠오를래야 안 떠오를 수가 없었다. 유치한 설정에, '웃기지도 못하는 코미디'라는 코미디 장르 영화가 받을 수 있는 최악의 평가까지도 동일. 그나마 이 영화가 그 영화보다 나은 거라면, 노골적인 신파의 힘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야할까. 그게 자랑이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포일러 주!


<에이스 벤츄라> 시리즈<닥터 두리틀>이 그랬던 것처럼, 동물과의 의사소통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코미디 영화. 여기저기서 표절문의가 날아들어오고 있지만, 관대한 마음으로 보자면 표절까지는 아니라는 게 내 생각. 이런 설정이 뭐 상표 등록 해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아주 기가 막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인 것도 또 아니잖나.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그런 상상 해보잖아. 동물이랑 말 통하면 어떨까-하고. 그러니까 그 설정을 그냥 낼름 주워다가 쓰는 건 별 문제가 안 된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에이스 벤츄라>와 <닥터 두리틀> 등의 영화를 통해 이미 우리가 볼대로 본 설정이니 그걸 21세기에 다시 만들려면 '재가공'의 노력은 좀 했어야지. 뻔하더라도 재밌게는 만들었어야지. 근데 영화가 그 부분에서 근무 태만이다.

동물혐오자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동물들과 협력해야만 하는 상황. 나는 이게 꽤 괜찮은 세부설정이라고 봤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동물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당장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들만 해도 지나가는 개에 벌벌 떤다. 그러니까, 동물혐오자가 동물과 소통하게 되면서 이른바 '소통의 힘'을 깨닫게 되고, 더불어 동물에 대한 그동안의 오해와 공포도 조금씩 휘발되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대승적 차원에서도 좋지 않았을까. 허나 영화는 이 동물혐오자 설정을 살리는 데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이성민이 성심성의껏 얼굴 찌푸리기는 하는데, 뭐 동물들과 주인공 사이에 별다른 소통도 없고 그냥 일방적인 공감 느낌.

다 떠나서 코미디로써 살인적이다. 웃기지도 못하는 코미디 영화들이 참가하는 메이저 리그가 있었다면, 아마 이 영화가 베이브 루스였을 것. 그것도 코미디 실점에 유치하기까지. 배정남이 연기한 캐릭터는 배우 개인의 노력을 떠나 그냥 화면에서 파버리고 싶을 정도의 개그 감각과 캐릭터성을 보여주고, 이성민이 <매트릭스> 패러디하며 슬로우모션으로 천하장사 소세지를 던지는 장면에서는 거의 내 뇌가 코마 상태에 이르렀다. 실 웃음이 나지도 않거니와 패러디라고 짜 내놓은 게 20세기 끝자락 1999년에 나왔던 유명 영화 베이스 패러디라니. 그나마 패러디는 양호한 게, 아예 그냥 가져온 묘사도 있다. <에이스 벤츄라> 1편의 핵심 사건은 돌고래 납치였다. 근데 이 영화는 팬더 납치임. 들것에 실어가는 것도 존똑.

그나마 기대했던 화려한 캐스팅의 동물 목소리 성우진. 주인공 셰퍼드인 알리를 연기한 신하균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니 성우 캐스팅들은 거의 다 주마간산 식이다. 그냥 출석 도장 찍고 바로 퇴장하는 느낌. 예고편과 포스터에서 홍보되던 유명한 이름들은 그저 카메오 정도로만 소비되고 만다. 아니, 그리고 아무리 코미디 영화에 명절용 가족 영화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의 사실성과 설득력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인간이랑 동물이랑 대화하는 영화인데 웬 사실성 타령?- 이라고 누군가가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하는 사실성은 그런 게 아니다. 인간이랑 동물이랑 말 통하는 판타지적 설정? 그거 좋아. 근데 그 판타지적 설정이 현실로 들어온 이후부터는 사실적인 설득력이 있어야지. 막말로, 이정은이 목소리 연기하는 고릴라. 걔는 왜 한국 지방 사투리 쓰는 건데? 동물원 관광 온 지방 관람객들이 말하는 거 어깨 너머로 듣고 배운 건가? 호랑이는 왜 김종국의 '한 남자'를 열창하는 거야? 얘는 그 노래 어떻게 아는데?

코미디 영화로써도 실패인데, 양념처럼 곁들여져 있는 액션과 악당들의 음모는 더 형편없다. 전세계적인 테러 조직이 대한민국에 침투해 기껏 한다는 일이 대통령 암살이나 63빌딩 테러 같은 게 아니라 팬더 납치...? 아무리 중국에서 보낸 외교인사 VIP라고는 하지만 동물을 납치한다고? 더 웃긴 건 이 테러 조직의 이름이다. 원어명은 잘 못 들어서 모르겠는데, 영화에서는 '외로운 늑대'로 나온다. 외로운 늑대...... 외로운 늑대라...... 시발 작명 센스하고는. 대체 누가 지은 네이밍이냐. 전세계적 테러 조직이라더니 단체로 중2병이라도 걸린 건지 뭔지. 아니, 다시 생각해봐도 웃기네. 외로운 늑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악당 두목도 이상한 연기로 거지발싸개 같은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더불어 주인공 콤비와 펼치는 액션 역시 그야말로 쩐다. 다른 의미로. 진짜 이렇게 형편없는 액션은 오랜만이었다. 특히 중후반부 악당들의 소굴에서 펼쳐지는 주인공과 악당 두목의 단독 매치. 연기하는 배우들이 다음 합을 기다리고 있는 게 훤히 보이고, 그 자체로 파괴력이나 속도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형편없음. 아니... 아무리 코미디 영화, 가족 영화로써의 타겟팅이 우선이었더라도 그래도 넣었으면 최소한의 것은 해줬어야지... 어떻게 이 정도 퀄리티로 내놓고 양념이라 우기는 거야...

세부적인 부분들의 설득력도 없음. 중후반부, 주인공 셰퍼드인 알리는 군견 훈련사에게 잡혀간다. 그렇게 안락사의 위기를 맞은 알리. 딱 죽기 직전에, 인간 주인공인 주태주의 손에 구출된다. 근데 명색이 군견 훈련사면 어쨌든 군인 아님? 군복 입고 있던데. 현역 부사관이 군견 안락사 시키려고 간 곳은 딱 봐도 군부대 내처럼 보이던데. 근데 제아무리 국정원 A급 요원이라고 해도 군부대 내에 멋대로 혈혈단신 들어가서 현역 부사관 뒷치기로 패고 나와도 되는 거임? 심지어 그 장면 당시에는 국정원 요원으로서도 제명된 이후였잖아. 그럼 그냥 민간인인데? 화룡점정은 그 이후다. 그 현역 부사관? 뒷통수 쳐맞고 실신했던 곳에서 테러 조직 외로운 늑대 멤버들에게 갈굼 당함. ......국제적 테러 조직이 군부대 내에 멋대로 들어와서 현역 부사관을 팬다고......?

주인공인 주태주, 정말 매력없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 주변 인물들을 보니 그나마 주태주는 정신 제대로 박힌 양반이었음. 배정남의 캐릭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꼴불견이고, 주태주의 딸 서연은 아무리 가정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어도 그렇지 자신의 친부 포함 어른들에게 하는 꼬라지가 전형적인 싸가지 비긴즈이며, 악당 두목이라고 서 있는 놈은 허세 찌질이, 그나마 중심을 잡아줄 것 같았던 김서형의 국정원 국장도 혼자 칠렐레 팔렐레. 이런 메이저 리그 속에서 어떻게 주태주를 의지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다른 인간 캐릭터들 백놈보다 셰퍼드 알리 한 마리가 훨씬 낫다. 아, 이건 그냥 덧붙이는 이야기인데 단역 연기 지도도 잘 안 된 것 같더라. 주인공들이 이야기 나누고 있을 때 그 후경으로 국정원 후배 요원들 다 잡히는데 표정 연기들이 하나같이 대환장 파티임.

두 시간 안 되는 런닝타임의 영화인데, 어째 20시간처럼 느껴지는 매직. 시간의 상대성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에 대한 증거가 필요하다면 반드시 이 영화를 첨부할 것. 시발, 아인슈타인이 옳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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