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나 어른들의 내면이 한 뼘씩 자라는 순간을 담았던 성장 영화의 달인 제이슨 라이트먼. 비교적 최근작이라 할 수 있을 <툴리>까지 보면, 그의 영화들은 항상 인물의 개인적인 상황과 그로인해 파생되는 딜레마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인 디 에어>는 좀 다르다. 여전히 한 인물에 대한 미시적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자본주의로 굴러가는 냉혹한 이 사회의 거시적 부분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건 아무래도 주인공의 직업과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주노>나 <툴리>의 주인공들은 임산부거나 양육에 지친 전업주부에서 끝났다. 직업적인 묘사가 아주 중요한 영화들은 아니었던 것. 반면 <인 디 에어>의 주인공 '라이언 빙햄'은 이름부터가 생소한 '해고 전문가'라는 직업의 소유자다. 겁쟁이 고용주와 회사 임원들을 대신해 클라이언트의 직원을 대신 해고해주는 사람. 직업부터가 이 모양이다보니 여러가지 사회적 딜레마들이 한꺼번에 딸려들어오는, 그래서 미시적인 동시에 거시적인 성장 드라마가 바로 <인 디 에어>다.
라이언 빙햄은 비록 중년이지만, 그래도 조지 클루니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연애하고 또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영화에서도 가볍게 다른 여자들 후리고 다니니 여기에 이견은 없을 터. 그러나 라이언 빙햄은 결혼에 생각이 없고, 심지어는 깊은 관계의 연애에도 별 관심이 없다. 심지어 그는 누나와 여동생을 비롯한 가족 관계에도 무심하다. 일의 특성상 미 전역을 날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일반 회사원처럼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 역시 전무. 나 아닌 타인과 맺어지고 교류 나누는 것. 그 모든 걸 다 셧다운 해버린 이 남자의 삶. 근데 심지어 직업도 다른 사람들 관계 끊는 일. 이 정도면 이 남자에게 있어 해고 전문가라는 직업은 천직일지도 모른다.
<새드 무비>에서 이별 통보 대신하고 다니던 차태현의 캐릭터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하여튼 이 해고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참 재미있다. 짧은 쇼트들을 이어붙인 몽타주 장면으로 주인공 캐릭터의 성격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이어 이 인물이 공항과 비행기 내에서 짓는 표정과 태도들로 영화에 재미가 적립된다. 그렇게 영화가 유머를 여유롭게 부리다가, 해고당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마치 다큐멘터리의 인터뷰이처럼 사실적으로 나오게 되면 사뭇 진지해진다. 극중 인물이 당했던 것처럼, 하다못해 연인 사이 이별통보도 문자 메시지로는 안 하는 법이다. 바람을 피웠든 거짓말 했든 이별 사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얼굴을 맞대고 해야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 간의 예의다. 하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럴진대, 제아무리 각종 서류와 계약서 종이 쪼가리들로 이어진 회사-직원 사이라하더라도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지막은 항상 얼굴을 맞대고 해야지. 그 뻘쭘함과 민망함이 싫다고 그걸 외주 맡겨? 자본주의는 진짜 차갑기만 하다.
빙햄은 동기부여가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무게를 줄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무게를 내려놓고, 등에 진 배낭 짐을 다 비워내라 말한다. 애초 라이언 빙햄의 삶이 그랬으니, 언행일치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참으로 솔직하고 올곧은 동기부여가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사회적 동물이고, 후반부 빙햄이 스스로 이야기하듯 누구나 기댈 곳이 필요한 것이다. 빙햄은 그를 뒤늦게 깨닫고 베라 파미가의 '알렉스'에게 뛰어가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과 관계 맺은 이후인 유부녀였을 뿐.
필요없는 척 했지만 알고보니 관계가 필요했던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 관계들이 툭하고 끊어지는 순간의 당사자들 표정을 오롯하게 잘 보여주는 영화. 알렉스가 유부녀인 거 알게 되었을 때와 바로 직후 비행기 타서 천만 마일 적립 기념으로 기장과 대화나눌 때의 조지 클루니 표정 진짜 명불허전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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