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4 16:30

사냥의 시간 극장전 (신작)


넷플릭스로 공개 되기까지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참 많았던 작품. 촬영 자체도 꽤 오래 전에 끝났는데 여기에 잦은 재촬영과 재편집 루머, 제작진 내 불화설, 그리고 베를린 영화제 갈라 섹션 초청으로 빛을 좀 보나 싶었더니 코로나 19의 기세로 극장 개봉 취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공개될 거라는 계획 수정과 그에 따른 해외 배급사와 제작사 간의 마찰, 미뤄지는 공개일. 이거, 볼 수나 있는 건가- 싶었던 찰나에 드디어 공개된 바로 그 영화. 그 과정이 유독 험난했기 때문인지, 결국 영화는 더 큰 기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나도 이거 꽤 기대했던 영화였으니.


스포일러의 시간!


해도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는 삶은 결국 젊은이들을 한탕주의에 젖게 만든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 되뇌이지만, 그 한 탕을 성공해내지 못하는 이상 그 마지막은 그들에게도 그저 새로운 '마지막'으로 남을 뿐. 감독이 일찍이 밝혔듯, '헬반도', '헬조선' 등의 젊은 신조어에서 영감을 얻은 이 세계가 결국 말하려고 하는 그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다고? 이거 왜 이래, 젊은이들을 위한 나라도 없는데!

젊은이들은 그저 부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어렵게 번 돈으로 좋은 자동차를 사서 신나게 굴리고, 대궐 같은 저택에 살면서 예쁜 여자들을 꼬시고, 효과 2--%라는 마약을 사 맛보고 온갖 금은보화로 몸을 두르고 싶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훨씬 더 소박하다. 그냥 그 돈으로, 어디 가까운 외국에 나가 너는 어부가 되고 나는 농부가 되어 낚시도 하고 서핑도 하면서 사는 것. 깨끗해서 투명한 바다 앞에 내 몸 편히 뉘일 집 하나 구하는 것. 그러니까 그들은 단지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이었던 것이다. 하와이는 꿈도 못 꾸고 그저 하와이와 비슷한 저 언저리 어딘가로 떠나는 게 유일한 최대치의 꿈.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영화적인 첫인상은 꽤 좋은 편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하는 SF라길래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가상 세계 속에서 오만가지 것들을 다 해볼 수 있는 그런 세계관까지는 아니겠지만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눈요기거리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치는 충족시켜주어야 하는 게 맞지. 근데 영화가 그걸 꽤 잘 해낸 모양새다. 외계인 침공 같은 허무맹랑한 이유로 망한 세계가 아니라, 크고 잦은 경제 위기들 때문에 결국 디스토피아가 된 세계.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보이는 그 세계관이, 납득갈 정도의 비주얼 묘사로 힘을 얻는다. 비슷하게 대한민국의 근미래를 다루었던 <인랑>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더욱 더 두드러진다. '네온사인으로 점철된 무채색의 도시'라는 <블레이드 러너>로부터 기인한 비주얼 묘사는 <인랑>과 똑같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훨씬 더 설득력 있다. 난 아직도 <인랑>에서 거대한 고깔모자 쓰고 돌아다니던 택시들을 잊지 못해. 그거 하나로 근미래라 우겼던 그 영화를 잊지 못해. 근데 이 영화는 비교적 그걸 더 잘해냈다. 설득력 있는 과정으로 디스토피아가 된 세계가, 대한민국으로 로컬라이징이 잘 되어 있다는 점에서 큰 포인트를 얻는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프로덕션 디자인이랑 촬영, 조명 만큼은 기가 막히게 했다.

젊은 청년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돋보이는 세부적인 설정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결심은 다소 즉흥적이고, 대화는 모두 다 상대적이다. 자기들도 젊고 어린 주제에, 그 바로 아래 세대들이 벌인 은행강도를 떠벌리며 자신의 왕년과 비교한다. 집은 어수선하고 좁지만 패션에 민감한 나이인만큼 옷들만큼은 모두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여기에 감독의 전작인 <파수꾼>을 절로 떠올리게 만드는 그들 사이의 관계들. 인맥 자랑과 삥 뜯는 모습에서 '다 아직 어리구나'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게 된다. 더불어 도박장털이 계획 몽타주의 촬영이 굉장히 과시적이라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 그 촬영 자체가 자만심에 쩔어 있는 그 당시의 인물들 태도를 대변하는 것 같아 좋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전반부까지는 속도감 있게 몰아붙이면서, 후반부부터는 침몰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급격하게 무너진다. 조성하가 연기하는 총포상은 범죄 세계에 몸 담고 있으면서 거짓말을 너무 못한다. 아니, 그 앞에서 협박하고 있는 '한'이라는 인물이 워낙 무서운 인물이니 그럴 만도 하지 않냐고? 그럼 그 한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가를 잘 설명 했어야지. 그냥 총 들고 사람들 쏴죽이면 끝이냐? 영화 밖 현실 세계였다면 충분히 무서울 만한 인물이지만, 이건 장르 영화다. 그것도 딱 한 명으로 설정되어 있는 영화의 메인 빌런. 나는 총포상 앞에 앉아 협박하는 장면이 <바스터즈>의 오프닝에서 한스 란다가 보여주었던 기예까지는 못 되어도, 최소한 어느 정도는 그런 부분들을 해줬어야 한다고 본다. 근데 그런 거 아무 것도 없었음. 그냥 총들어 갈기고, 존댓말 따박따박 해가면서 폭탄 터뜨리고. 그건 그냥 총들어 무서운 놈이지 인물 자체에서 나오는 카리스마 때문에 미친놈처럼 느껴질 정도가 못 된다. 그리고 총은 누가 들어도 무서운 거임.

한은 분명 매력적인 포지션에 놓인 인물이지만, 상술했듯 그 카리스마와 공포감이 생각보다 너무 떨어진다. 움직이는 동기도 추상적으로만 이해될 뿐. 그냥 사냥꾼의 감각이 있는 악당 정도? 쇼맨십과 계획, 추적, 사격술에 능한데 자신에게 살려달라 빌지 않고 그냥 죽음에 순응하는 사냥감을 만나 흥미를 느낀다? 이것도 그냥 딱 거기까지일 뿐. 더불어 박해수 역시 좋은 배우지만, 어쩔 수 없게도 그 무게감이 너무 떨어진다. 건너 듣기로는 이 역할이 이병헌에게 가장 먼저 제안 되었고, 그 역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 최종 고사 했다고 들었음. 꼭 이병헌이 아니었더라도, 최소한 그 급의 스타 캐스팅이 필요했던 역할 아니었을까. 물리적 분량이 그리 크지 않음에도 등장하는 모든 순간마다 공포와 살기를 뿜어내야하는 인물이거늘, 박해수는 너무 순박하고 사람 좋게 생겼다.

사라진 떡밥이 너무 많다. 외장하드로 얽혀있는 VIP들은 장르적 컨벤션으로 볼 때 정재계의 거물급 주요 인사들로 추측되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던져지기만 할 뿐 구체적으로 수습되진 않는다. 조성하가 1인 2역으로 연기한 총포상 형제의 이야기는 뭔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스럽고, 심지어 한은 동생의 복수를 다짐하고 있을 게 뻔한 총포상 형네 가게로 굳이 가서 무기를 산다. 죽음에 대한 암시가 있기는 해도 역시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는 않는 상수와 기훈의 스토리아크도 답답할 뿐. 아니, 그래서 기훈의 가족은 어떻게 된 건데? 그냥 유추해서 때려맞추라는 이야기야 뭐야. 준석은 왜 하필 자전거에 그리 집착하는데? 돌아가진 어머니가 자전거 파는 일을 하셨었으니까? 왜 장호는 계속 기훈의 옷을 훔쳐 입어? 기훈의 집 마당에 있는 우물은 또 어떤 의미야? 존나 던져놓기만 하고 이게 다 맥거핀인 건지 뭔지 관객들에게 그냥 때려 맞추라고만 강요한다. 존나 무책임한 연출이 아닐 수 없다.

총기 액션의 디자인이나 사운드는 좋다. 그러나 그 액션들로 가는 순서에도 역시 현실성이 없다. 겁나게 쫓기고 있는 상태인데 병원에서 여유롭게 1박을 한다? 또 겁나게 쫓기고 있는 상황인데 안전가옥에 들어가 낮잠을 때린다? 심지어 두 명 중 다른 한 명은 안전가옥 안에 들어가 있지도 않는다! 그냥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어! 그리고 전화 한 통만 때리면 바로 오는 밀수선인데, 왜 진작 안 때렸어? 병원에서 출발할 때쯤 전화했으면 도착하자마자 바로 탈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요즘 누가 피자헛이나 도미노 피자에 자동차 타고 그냥 가냐? 미리 전화해서 메뉴 골라 주문 시켜놓고 도착할 때쯤 피자 나오면 받아가지. 시발 하다못해 생사가 걸렸는데.

대사들도 너무 도식적이고 구리다. 때로는 너무 직접적이고. 그러다보니 종종 유치하게 느껴지는 것도 흠. 그나마 안재홍과 최우식, 박정민은 안정적이고 현실적으로 대사를 치지만 이상하게도 이제훈만큼은 연기가 붕 뜬다. 나머지 배우들은 그냥 그 캐릭터로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제훈 만큼은 이제훈이라는 배우가 나와 연기하고 있는 느낌.

사실 제일 큰 문제는 바로 결말이다. 묵은지 영화 주제에 내년에 바로 속편이라도 낼 수 있는 건지, 결말이 겁나게 무책임함. 다른 건 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결말 만큼은 이랬으면 안 됐다. 그렇게 많은 총알을 맞고도 한이 살아 있다고? 근데 준석은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기훈과 상수를 찾기 위해? 한에게 복수하려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영화가 끝난다고? 참나, 누가 보면 진짜 이미 속편 찍고 있는 줄 알겠네.

중반부까지는 꽤 괜찮았던 영화가, 결국 그 이후부터 완전히 무너진 모양새. 처음에는 넷플릭스에서라도 공개되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먼저였는데, 어째 생각하면 할수록 넷플릭스가 호구 잡힌 것만 같아 기분이 이상하다. 그 돈이면 그냥 빨리 <킹덤> 시즌 3에 투자 했어야지. 

뱀발 - <블레이드 러너>가 1982년 작품이다. 근데 2020년까지도 그 영향력이 막강하니, 이건 대체 얼마나 세월을 앞서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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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씬에서 크리스 햄스워스의 밀리터리 간지는 그냥 쩔고. 그래서 더 아쉬운 것이 후반부 들어 영화의 액션 함량이 미달 수치로 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lt;사냥의 시간&gt;처럼 확 무너지는 정도는 아니고, 다소 뻔함에도 안정적으로 가기는 한다. 허나 전반부에서 보여주었던 액션의 질적 완성도에 비하면 후반부 액션이 좀 떨 ... more

덧글

  • 우물쭈물하지않으리 2020/04/25 01:54 # 답글

    저도 재촬영 재편집 얘기듣고 망삘이구나 하면서도 파수꾼 가락이 있으니 기대륵 햇는데 ㅋㅋㅋㅋㅋㅋㄴ 꾸역꾸역 2시간14분을 보고 나니 내가 왜 이토록 이 영화를 기다렸나...하는 후회....... 코로나때매 손해를 봤다 생각햇는데 코로나때문에 수혜를 입었네요 영화가... 극장 걸엇음 폭망각 휴...
  • CINEKOON 2020/05/04 15:47 #

    파수꾼 가락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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