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27 17:27

타이거 킹 - 무법지대_SE01 연속극 대잔치


미친자들로 가득찬 정글. 호랑이와 사자 같은 거대 고양잇과 맹수들을 키우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실상 하나만큼은 진짜 정글 못지 않다. 결국 마지막에 철창 신세 되는 것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은유.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이 모든 게 시나리오 작가가 직접 쓴 각본으로 촬영된 픽션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팀이 만든 진짜 다큐멘터리. 내가 보고 있는 영상이 순도 100%의 '진짜'라는 것에서 오는 충격과 공포. 

원 기획은, 작은 철창 안에 갇혀 일생을 보내는 고양잇과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탐사 고발 다큐멘터리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원래는 동물이 주인공이었다고. 근데 제작진도 찍다보니 안 거지, 여기 갇혀 있는 동물들보다 그 곳을 지배하는 인간들이 더 흥미롭다는 것을. 픽션 아닌 다큐멘터리임에도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각자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다 개성 넘친다. 자신에게 '타이거 킹'이라는 왕좌를 스스로 부여한 21세기의 최강 관심종자 조 이그조틱부터, 진짜 사기꾼인지 뭔지 모든 게 의뭉스럽기만 한 제프, 전 남편을 죽였든 안 죽였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마녀들을 일렬종대로 세워놓고 싹 다 뺨싸다구 갈길 수 있을 것만 같은 캐롤, 몽롱한 얼굴을 한채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묻어버렸던 조의 전 남편들, 팔을 잃고 다리를 잃었어도 오직 동물들을 위한 마음으로 조의 밑에서 버텼던 사육사들, 조가 반쯤 미쳐있던 것을 알았으면서도 기꺼이 그의 선거인단이 되어주었던 남자까지. 작가의 손에 의해 가상으로 쓰였어도 이 정도로 개성 넘치지는 못했을 것만 같은 캐릭터들. 근데 이 모든 인물들이 죄다 실존하는 '인간'들이라니 그게 제일 어이가 털리는 점이다.

왜 할리우드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가지고 영화화에 TV 시리즈화까지 욕심내고 있는지 알 것만 같은 구성이다. 상술했듯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드라마틱한데다, 만들라고 해도 못 만들 것 같은 은유와 직유들이 이야기에 넘쳐난다. 숫사자 마냥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고 그 아래 여성들을 일적으로나 성적으로 착취하는 닥터 엔틀. 동물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던 조가 알고보니 동물들을 무서워했다는 이야기, 그나마 조를 따르던 동물들이 조가 몰락함에 따라 그의 신발을 물고 늘어지는 위험천만한 모습들은 그 자체로 너무나 완벽한 은유들이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센 건, 철창 바깥에서 군림하던 타이거 킹이 결국 철창 신세지는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는 거.

다큐멘터리라는 매체를 보면서 항상 느끼는 건데, 정말이지 시간과 인내심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오랜 촬영 기간은 당연하거니와, 영화나 드라마는 '레디'와 '액션'의 순간이 있는데 다큐멘터리는 또 아니지않나. 매 순간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어떤 일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으니. 게다가 편집 과정은 또 어떻겠어. 그 모든 소스들을 하나하나 다 재검토한 뒤에나 편집에 들어갈 수 있는 건데.

그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정말 대단한 건, 대체 이런 소스를 어떻게 찍었고 또 구했을까-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는 것. 내셔널 지오그래픽 같은 곳에서 만드는 자연 다큐멘터리들도 대단하기야 하지. 하지만 그건 좀 다른 문제잖아. 힘든 건 매한가지지만 아프리카나 심해의 동물들을 촬영한다고 해서 그들이 '초상권 침해로 고소한다'고는 안 하잖아. 근데 이 다큐멘터리는 정말이지 어떻게 구했을까- 싶은 소스가 너무 많다. 조와 제프가 사무실에서 목소리 높여가며 싸우는 장면도 그렇고, 이 시리즈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인 조의 남편 자살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그 순간을 다큐멘터리용 카메라로 직접 촬영한 건 아니었고, CCTV 화면에 담긴 것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마저도 말이 안 되는 건 똑같잖아.

픽션을 가볍게 압도해버리는 다큐멘터리의 힘.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사람들. 한 번 보는 순간 후일담을 담은 스페셜 에피소드까지 정주행하게 되는 마법. <타이거 킹>은 몰입도 면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다.

덧글

  • GSHG 2020/05/07 01:18 # 삭제 답글

    이거 진짜 다큐멘터리인가요? 스토리만 보면 무슨 풍자범죄물 같은 느낌이라 긴가민가해서요;; 오피스처럼 페이크 다큐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조 엑소틱의 이야기를 따로 뗴어 극을 하나 새로 만든다는데, 그 작품에서 니콜라스케이지가 조엑소틱을 맡는다고 합니다.

    지미팰론이 이사실을 안건지, 영상으로 패러디하기도 했더군요;
  • CINEKOON 2020/05/16 14:12 #

    B급 영화 전전하며 눈깔 뒤집는 연기로 건재함을 과시하던 니콜라스 케이지의 조 이그조틱이라니. 상상만 해도 기가 막히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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