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4 15:46

링컨, 2012 대여점 (구작)


고전적이고 일반적인 전기 영화였다면, 아마 링컨의 영웅적인 일대기만을 묘사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그게 가장 쉬운 길일 터이니 말이다. 가족들에게 온화하고, 부하들에게는 모범을 세우며, 전시 체제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대통령, 당시 짐승 취급 받았던 흑인들을 자유의 길로 이끈 영웅. 그런 식으로만 묘사했다면 영화는 훨씬 더 쉬웠을 것이고, 흥행적인 측면에서도 훨씬 더 유리했을 것이다. 자고로 사람들은 역사 속 영웅적인 모습을 띄었던 사람에게 더 공명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스필버그는 링컨을 단순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당시의 링컨이 대단한 결정을, 그로인해 대단한 업적을 이룩한 것은 맞지만 그 이면에 존재했던 그의 정치적인 타협. 노익장 스필버그는 링컨의 그 모습에 더 흥미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링컨을 주인공으로 한 전기 영화이지만, 영화는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일생을 모두 다 묘사하진 않는다. 이미 대통령이 된 시점에서, 남북 전쟁의 끝을 마주했을 무렵. 그리고 흑인 노예 해방이 주요 골자였던 개헌을 이루기 직전의 모습. 그 부분을 필사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영화는 정치판 스토리다. 하긴, 전기 영화인데 그 주인공이 대통령이니 당연히 정치 드라마가 되지. <에어 포스 원>이나 <피아노 치는 대통령>은 실존했던 대통령 그리는 영화들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도 깊게 논하는 영화다. 양비론자들은 '내 그럴 줄 알았어'라고 혀를 끌끌 찰만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영웅인 줄로만 알았던 이역만리 남의 나라 대통령이, 알고보니 인간적으로서나 정치인으로서나 그리 깨끗하지 만은 않았다고 이야기하는 영화니까.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영화가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철하다. 최악의 선택을 피하기 위해 차악의 결정을 하는 일. '진짜'로 가기 위해 '가짜'를 거쳐야만 하는 일. 그게 정치라는 것. 정치의 본질이 그러하니, 당신이 순수주의자라면 결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 그 사이에서 모든 책임을 지고 결정을 해야하는 단 한 사람.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또 곧센 링컨의 모습을 통해 스필버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흑인 노예 해방을 법제화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백인들과 마냥 평등하지 만은 않다는 의견을 피력해야하고, 또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적이 내민 평화 협정의 손길에 유보의 입장을 전해야만 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고, 설사 우리가 미국인이라 할지라도 이 복잡한 역사 속 정치 드라마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싶기는 하다. 정치 드라마라는 게 기본적으로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장르잖아. 스필버그는 그 복잡함을 설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때때로는 그냥 놔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구체적인 상황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하기 보다는, 간단하게 대전제와 딜레마만 던져놓고 그 안에서 갈등하는 한 인물을 통해 그 무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한 느낌.

좋은 배우들이 한 무더기로 나오는 영화지만 결국 DDL 이야기는 짧게나마 해야할 것 같다. 시바 난 또 관짝 뜯어내 부두술로 링컨 되살려 직접 데려온 줄 알았잖아. 그 뻣뻣하고 강대한 몸집과 수염, 흔들리지 않다가도 흔들리는 눈빛, 때로는 축 쳐진 어깨로 동정을 구하고 또 때로는 곧게 편 손가락으로 불같이 폭발하는. 말해뭐하나 싶은 이야기지만 정말이지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대단한 배우다. 스필버그랑 DDL이 쌍두마차로 달리는데 관객으로서 어떻게 집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 둘이 용산 전자상가에서 함께 사기를 쳤어도 나는 이미 카드를 긁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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