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5 23:38

부부의 세계_SE01 연속극 대잔치


한국의 다른 막장 드라마들과 같이 불륜, 외도, 양다리 등을 다루면서도 이 드라마가 더 특별히 더 세게 느껴졌던 이유는 초반부의 존나 명확한 하이컨셉 딱 하나 때문이었다. '내 남편이 다른 여자를 끼고 있다'가 아니라, '내 남편이 다른 여자를 끼고 있는 걸 나 제외 모든 친구들이 다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들끼리 쉬쉬하며 놀기도 했다'라는 것. 실제로 방영 초기, 이 드라마를 이야기하는 주변 지인들의 대부분은 '다른 불륜 막장 드라마와는 달라!'라며 상기의 이유를 들었다. 충격적인 전개이긴 하지. 기존의 막장 드라마 보다 한 뼘 더 나간 거니까. 근데 존나 유감스럽게도, 그 특별한 한 방 이후 드라마는 여타의 평범한 막장 드라마들 계열로 추락하고 만다.

물론 단순 불륜 스토리로 자극적인 맛만 강강강강 때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제목답게 부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논하는 부분은 치하할만 하다. 불륜은 단순히 거짓말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며, 그로인해 깨진 사랑과 신뢰는 이혼을 남긴다. 그러나 무 자르듯 부부 관계라는 게 딱 잘라지는 것도 아니기에 이혼은 그저 당당하고 쿨한 자기 선언이 아니라 이미 할퀴어진 상처로 평생 고통받는 것이라는 드라마의 견해가 재미있기도 하다.

김희애는 언제나 그랬듯 우아한 연기로 보답하고, 장르물에서 폭발적인 캐릭터 연기를 주로 보여주던 박해준은 이 일견 평범해 보이는 드라마에 장르적인 기운을 불어넣는다. 따지고 보면 그냥 흔한 불륜 이야기임에도 드라마가 내내 위태롭게 느껴지는 건 필시 그의 이미지 덕분일 터. 기껏해보이는 폭력이라고 해봤자 아내 뺨 때리는 정도겠지- 싶었던 마음이 그의 캐스팅으로 매순간 긴장된다. 여기에 주조연진 연기 역시 크게 깔 것이 없음. 다만 주인공 부부의 아들을 연기한 전진서는 때때로 불안하게 느껴진다. 부모에게 반항할 때의 연기가 특히 그럼. 근데 또 웃긴 게 일상적으로 화목하게 지낼 때의 모습은 또 괜찮다는 거. 아무래도 전자의 감정과 상황들이 배우에게 잘 안 맞는 옷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전개도 속도감 있고, 조금 욕 먹을지언정 적당히 자극적인 묘사도 좋다. 다만 JTBC 드라마들 종특인지, 중반부부터 위태위태 하다가 결국 후반부에서 다 망쳐버리는 리듬. 가장 불만인 건 서브 플롯들이 흐지부지 된다는 거다. 게임으로 치면 메인 퀘스트는 어떻게든 다 깼는데, 정작 벌려놓은 서브 퀘스트들은 다 하다가 만 느낌. '이혼'과 '복수'로 점철된 주인공 부부의 스토리라인은 용두사미일지언정 어느 정도 정리되지만, 그 초목표를 위해 작당했던 중간 부분들이 죄다 통으로 썰려나간 것 같다. 포스 쩔게 입성한 여우회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로 끝맺음 난 건가? 이렇게 풍선에 바람 빠지듯 될 거면 대체 왜 들어간 거야? 민현서의 개인적 여정은 다 끝이 나지만, 그럼에도 서브 주인공 치고 너무 일찍 퇴장한 것만 같은 느낌. 설 선생과 지선우의 얄밉고도 날선 대립은 결말로 갈수록 선 선생 캐릭터의 붕괴와 함께 역시 흐지부지되고, 김 선생과 지선우의 로맨스는 맺어지는 것도 아니고 거절 당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마무리 된다. 이렇듯 모든 서브 플롯들이 죄다 바람에 날아감. 그러다보니 결국 열여섯 에피소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봤음에도 남는 게 크게 없다. 순간순간 즉흥적이고 시뻘건 재미는 있었지만, 거시적으로 봤을 때는 그냥 존나 단조로운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거거든. 

근데 시바 결말까지 그 모양이면 어떡하는 거냐고. 뜬금없는 타이밍에 뜬금없는 이유로 이 아들래미가 집을 나가는데, 그냥 드라마가 여기서 매듭을 지어버린다. 존나 큰 일 보고 뒤 안 닦은 모양새. 메시지는 뭔지 알겠다. '부부의 세계'라는 제목과 결부해, 부부의 세계가 오직 그 두 사람만의 세계는 아님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엔딩. 두 남녀가 헤어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와 연결된 자식 또한 모두 파괴될 수 있다는 것. 허나 메시지와는 별개로 그냥 존나 무책임한 엔딩인 거다. 가뜩이나 시원하게 해결되는 서브 플릇이 없는데 메인 플롯까지 이러고 앉아있으니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

고추가루 팍팍 뿌리듯 강렬한 전개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데, 정작 한 뼘 뒤로 물러나서 보면 지지부진해 보이는 작품. 김희애의 고혹적이고 우아한 자태만 돋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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