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5 23:56

블러드샷 극장전 (신작)


전개가 빠르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물론 빠르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또 아니겠지만, 지지부진 느리게 전개 뺄 바에는 차라리 빠른 게 낫다. 게다가 이 영화의 장르가 뭔가. 전체적으로는 결국 액션 영화고, 그 하위 장르로 따지면 수퍼히어로 영화 아닌가. 장르적인 컨벤션이 이미 확고하게 쌓여있는 이런 대중적인 장르에서는 애초 설명하고 말고 뭐 할 것도 별로 없으니 그냥 밀린 구몬 숙제 해치워버리듯 후루룩 해치워버리는 게 좋지.

근데 시발 빨라도 너무 빠르다. 보통 드라마도 아니고 영화라는 포맷에서 전개가 빠른 걸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딱 직전에 지지부진한 이야기와 설정들을 다 끝내버리는 것. 딱 거기까지다. 허나 이 영화는 그 상태 그대로 그냥 끝까지 달려 버린다. 뻔하고 전형적으로 보이는 부분들만 빠르게 달린 뒤에 액션이나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칠 지점에서는 페이스 조절을 조금 했어야지. 거기서부터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달리며 마라톤 완주하듯 했어야지. 지금 영화 버전은 너무 100m 단거리 경주 같다.

주인공 속여먹는 초반부가 빠른 건 좋은데 그 이후 주인공이 복수하러 직접 나서는 부분도 겁나 휘뚜루마뚜루. 몽타주 요약 몇 컷만에 복수의 대상을 찾고, 이후 펼쳐지는 지루한 난장 액션. 근데 이게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된다. 두번째 복수의 대상 찾는 것도 휘뚜루마뚜루. 이후 펼쳐지는 존나 짧고 지루한 액션. 과거 여자친구 찾아가는 클리셰와 이에 접붙인 추격전도 존나 빠르기만 하고, 심지어 결말부 최종흑막과 주인공이 맞붙는 장면은 어이가 털릴 정도로 허무하게 끝이 난다.

수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삼은 액션 영화임에도 그 액션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일단 주인공의 능력 자체가 별로 이색적이지 않다. 나노봇들로 이루어진 혈액을 수혈받아 초인적인 힘과 힐링팩터 능력을 부여받은 주인공. 이거 그냥 능력으로만 따지면 캡틴 아메리카울버린과 호환되는 버전인 건데, 그에 반해 액션은 너무 구리다. 자기만의 특색도 없고, 특유의 수퍼파워를 강조할 만한 구성을 짠 것도 아니다. 그냥 존나 진부하고, 존나 재미없다. 이건 그냥 노력을 안 한 거.

처음부터 끝까지 이용만 당하다가 주체적인 결심으로 판을 뒤집는 주인공 캐릭터 역시 진부하기 짝이 없는데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 역시 하나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어 어이가 털림. 생김새에 비해 존나 순진한 주인공을 등쳐먹는 반전형 엘리트 캐릭터가 하나 나오는데 그게 캐스팅이 또 가이 피어스야. 시발 이건 뭐 <사바하>의 유지태 캐스팅이랑 마찬가지인 경우잖아. 존나 뻔한 반전이긴 했어도 최소한 의심할 구석은 최소화해뒀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근데 가이 피어스는 누가 봐도 너무 악당이잖나. 가뜩이나 <아이언맨3>에서 비슷한 캐릭터 연기 했었는데. 가이 피어스 캐스팅 할 거였으면 악당으로 만들지를 말던가. 리메이크 되었던 <로보캅>에서 게리 올드만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여튼 여기에 주인공을 등쳐먹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미녀 캐릭터 또 하나 나오고, 탁월한 프로그래밍과 해커 능력으로 주인공을 서포트하는 존나 뻔한 해커 캐릭터 또 하나 나옴. 흑인인데, 농담 담당하는 것도 당연히 이 새끼. 그나마 마틴 로렌스크리스 터커 느낌의 나불대는 촉새 캐릭터가 아니라 차분한 농담꾼이었다는 점은 다행이었다고 본다.

그나저나 왜 굳이 주인공을 속여먹는 것으로 악당들이 합의한 걸까? 그런 신체 강화 기술이 있는 악당들이라면, 그냥 로보캅이나 터미네이터처럼 명령하는대로 듣고 움직이는 수동적 로봇 또는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게 더 빠르지 않았을까? 왜 굳이 주인공 속여먹는 고생을 사서 하는 거냐고. 아니면 그냥 주인공한테 솔직하게 말하며 임무 부여하던지. 어차피 군인 출신이었으니 복종 체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익숙했을 텐데. 더불어 그래도 주인공인데, 아무리 속았다한들 자신이 죽인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좀 반성하는 기미가 보였어야지 않냐. 따지고 보면 진짜로 자기 아내 죽인 사람들도 아니었고 자기랑 1도 관련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만...

일단 액션의 함량 자체가 굉장히 미달인 작품이고, 그야말로 장르적 쾌감이 0에 수렴하는 특이한 작품. 빈 디젤은 왜 <분노의 질주> 시리즈만 떠나면 이토록 무게감이 떨어지는 걸까. 존나 짱센 걸로만 밀어붙이는 영화 이제 그만 좀 찍었으면 좋겠다.

뱀발 - 어차피 누군가가 프로그램을 사용해 만든 가짜 기억인데, 왜 굳이 복수의 대상이 될 악당놈의 캐릭터를 춤꾼으로 설정 했던 걸까. 프로그래머 중에 어그로 악취미 가진 사람이라도 있는 걸까. 그냥 주인공을 더 빡치게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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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D U MISS ME ? : 위드아웃 리모스 2021-05-08 17:24:57 #

    ... 또 이렇게 썼다. 이거 너무 뻔한 캐스팅이잖아... &lt;사바하&gt;의 유지태 캐스팅 같은 거잖아, 이제... 이 양반은 &lt;아이언맨3&gt;에서도, &lt;블러드샷&gt;에서도 모두 이런 역할 했었잖아. 아닌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최종 흑막인 캐릭터 말야. 근데 이 영화는 그걸 또 갖다 썼다, 염치도 없지. 오히려 가이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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